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의제(衣制)가 통일된 대만 스님 입장에서는 한국에서 온 스님들에게서 스님으로서의 위의를 느끼지 못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스님은 “편리만을 따른다면 재가자의 옷과 다를 바가 없다”며 “법의는 검소하고 청정한 불성의 존재를 드러내는 상징이면서 수행자의 위의를 드러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례2> 조계종 총무원 호법부 상임감찰 모 스님은 “지난 5월 기본교육기관인 모 종립대학 구내에서 사미의제를 하지 않는 5명의 예비승을 적발했지만 아직도 교육원의 사후처분이 내려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종단에서는 상시적으로 사미의제를 단속하고 있지만 사후처리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이유다. 너비 10cm 갈색 동정과 소매깃을 달아 정식 스님들과 구분해 놓은 사미의제를 준수하지 않으면 4급 승가고시 응시자격이 1년 유예되는 무거운 징계가 내려진다.
당시 적발된 이들은 “출가자는 모두가 평등한데 법의에 차별을 두는 것은 부당하다”며 항의했다. 그러나 상임감찰 스님은 “사미는 정식 스님이 아닌 예비승이기 때문에 의제를 단속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훈계했다.
■ 왜 의제통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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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수서동 전국비구니회관내 ‘승가법의원(원장 수현)’에서는 지금 조계종의 통일 가사불사가 한창이다. 조계종의 상징인 삼보륜 문양을 새겨 넣을 뿐만 아니라 스님 개개인의 법계별 조수를 맞추고 승려번호와 법명까지 새겨 종단에서 직접 제작 지급키로 한 것이다. 1962년 통합종단 출범 후 보조스님의 괴색가사를 ‘조계종의 가사’로 정한지 45년 만의 일이다.
의제실무위원 무관 스님(해인총림 율원장)은 “부처님 재세당시는 승가의 규모가 크지 않아 ‘좌차(座次)’를 정하는데 문제가 없었지만, 오늘날 현전승가는 의제를 명확히 갖추지 않으면 위계와 승단의 질서가 지켜지기 어렵게 됐다”며 의제통일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부처님께서 법의를 제정한 이유를 <행사초자지기(行事抄資持記)>에서는 ‘△추위나 더위를 막고 △치부를 가려서 참괴심(慙愧心)을 없애며 △마을에 나가 걸식하고 △자선을 행하며 △위의(威儀)가 청정하기 위함’ 이라고 정의했다.
본래 비구는 다 쓰고 버린 헝겊조각을 모아서 만든 ‘분소의’를 입어야 하며 값비싼 천의 사용은 금했다. 무엇보다 출가자와 재가자를 구분하고 탐심을 버려 소욕지족의 생활을 통해 수행에 몰두하게 하려는 뜻이 담겨 있다.
오늘날 조계종 스님들의 승복은 어떤가? 승가의 규모가 커지고 탁발보다는 보시에 의해 승가가 운영되면서 가사와 승복을 지어 보시하려는 재가신도도 늘어났다. 조계종은 ‘의제법’과 ‘사미·사미니 등의 의제에 관한 시행령’ 등을 통해 의제를 종법령으로 정해놓고 있다.
그러나 의제법에 대해 정확히 아는 스님이 드물고, 사미의제는 정착단계라고 하지만 사중 밖에서는 잘 지켜지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스님에 따라 각양각색의 가사와 장삼 등을 수하고 다녀 소속감과 일체감, 승가 위계질서 및 수행자의 위의를 해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 안지키는 원인은?
승가의제 통일이 구성원의 소속감과 일체감을 조성하고 위계질서를 확립, 수행자의 위의를 드러내는 중요한 일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많은 이들이 공감하면서도 현실적으로 시행은 되지 않았다.
의제통일을 더디게 하는 장애요소는 △통일되지 않은 규정 및 착용 원칙 △가격 및 유통구조 △비합리적 제작공정 △고급화 선호 △일부의 권위주의적 사고 △관리·감독할만한 행정체계 부실 등 ‘산 너머 산’이다.
조계종이 종단 차원에서 의제위원회를 구성해 의제통일에 나선 1996년부터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의제통일은 말처럼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최근까지 수시로 열리는 의제실무회의는 각종 복식과 형태, 착용법을 규정하고 있지만 실제 제방에서 이렇게 정해진 원칙을 정확히 아는 스님은 드물다.
2004년 승복천의 색상과 소재 등이 정해졌지만 회의결과에 대한 홍보나 교육이 없었고 강제성도 없어, 제도와 현실이 따로따로인 셈이다.
법의를 물건처럼 사고파는 시중 승복점의 유통구조도 의제통일이 지체되는데 한몫하고 있다. 승복 유통의 관리체계가 허술해 간혹 스님이 아닌 재가자나 무속인의 착용으로 불교의 사회적 이미지를 실추 시키는 사례도 없지 않다.
가격 또한 재료에 따라 수십만 원에서 수백만 원대에 이르러 청빈한 출가자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어졌다는 지적도 계속되고 있다.
관행적으로 각자의 취향이나 편의에 따라 개별적으로 승복점에 의뢰해 제작해오면서 이들 영세업체가 임의적으로 생산한 승복은 색상이나 모양, 옷감의 소재 등이 천태만상이 됐다.
법의 전반에 대한 전통제작기법 전수를 위한 종단차원의 지침서 제작과 보급을 서둘러야 한다.
의제실무위원인 명수 스님은 “의제는 무엇보다 승가의 위의를 살리는데 중점을 두고 스님들이 입기에 편리하도록 기능성, 제작의 편의성, 가격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며 “승가복식 전반에 원칙 수립이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총무원의 총무부 호법부 등을 통한 감독도 한계가 있는 만큼, 의제에 맞춰 법의를 입지 않는다고 해서 어떤 불이익이나 제재를 가하기 쉽지 않은 종단의 행정체계도 문제다.
최소한 종단의 의무교육을 받아야하는 행자·기본교육기간 동안이라도 지속적인 교육과 지도를 통해 종단의 의제를 몸에 익게 해야 한다.
의제를 바꾼다는 것은 단지 수행자의 겉모습만 바꾸는 게 아니다. 승가의제의 통일은 전통을 유지하면서 현실에도 부합시켜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조계종의 가사통일 불사가 전반적인 의제통일의 통로가 될지 주목된다.
■의제개혁 노력 어떻게 해왔나
2002년 조계종 법계위원회는 불학연구소를 통해 승복에 대한 연구를 본격화하면서 유통구조와 소재 등에 대한 문제의식들을 부상시켰다. 조계종은 가사뿐만 아니라 스님의 몸에 걸치는 모든 것을 ‘의제(衣制)’의 범주에 넣고 장삼 바지저고리 속옷 모자 신발 바랑에 대한 기준과 원칙을 정하고 있다.
조계종 의제실무위원장 종진 스님(해인총림 율주)은 “종단 스님들의 가사가 통일되지 못한 것에 대해 우려가 크다”며 “종단의 정체성과 특색을 살려 만든 삼보륜 가사보급이 마무리되면 장기적으로 장삼 두루마기 동방 적삼 바지까지 통일하기위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계종이 의제법을 처음 제정한 것은 통합종단이 출범한 1962년. 그러나 의제가 각양각색이자 67년 12월에 열린 중앙종회에서 의제위원회를 구성해 법의를 통일하기 위한 방안을 연구하기로 결의했다. 여기에는 청담 자운 대의 일타 성철 스님이 위원으로 참여했다.
조계종은 72년에도 의제개혁을 시도했다. 72년 12월 열린 종단 중진회의에서 의제개혁을 결의했다. 73년 3월에는 성철 자운 영암 스님을 비롯한 30여명이 참여하는 의제(개혁)연구위원회를 구성했다. 하지만 의제 개혁은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81년 일타 스님은 비구승과 사미승 구분을 위한 사미의제 시행방안을 담은 의제법 수정안을 제시했다.
93년 3월에 열린 제도개혁위원회에서는 출가자 위계질서 확립 차원에서 승가 복식(服飾)을 구분하기 위한 ‘성직자 의제법’을 중앙종회에 제출하기도 했다.
96년 당시 총무원장 월주 스님은 종단 개혁 일환으로 의제개혁의 의지를 천명한다. 그해 8월 조계종 의제위원회는 행자복과 사미·사미니 복에 대한 규정을 마련했고, 현재 이 제도는 정착 단계에 접어들었다.
이어 조계종은 2002년 7월 승복 통일 등을 위해 지금의 법계위원회 산하에 의제실무연구회(위원장 종진)가 발족돼 활동하고 있다. 남동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