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웅보전에서는 영단을 향해 신도들이 하나된 목소리로 간절하게 기도를 올리고 있다. 영단에 모셔진 위패 중에는 독일 월드컵 코리아팀의 대표선수 박지성의 할아버지도 포함돼 있다.
지난 봄 할아버지의 별세소식을 들은 박지성 선수는 영국 프리미어리그가 진행되는 와중임에도 귀국하는 즉시 할아버지가 모셔진 용주사를 찾아 슬픔을 견디며 인사를 올렸다.
2002 한일월드컵으로 뜬 유명세를 타고 일본 교토 퍼플상가와 네덜란드 PSV 에인트호벤을 거쳐 영국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자리 잡은 후 첫 걸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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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맛비가 오락가락하던 7월 6일, 꽉 짜여진 일정을 쪼개 ‘한국의 자랑’ 박지성 선수가 아버지 박성종씨와 어머니 장명자씨, 소속 에이전트 매니저와 함께 다시 용주사를 찾았다.
박 선수가 부모님과 함께 모습을 드러내자 신도들의 반가운 함성이 한꺼번에 터졌다. 청바지와 캐주얼한 셔츠를 입은 박지성 선수는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15도 내려보기’를 유지하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조용한 가운데 뿜어져 나오는 특유의 카리스마는 어쩌지 못했다.
극성 아줌마 팬들을 피해 용주사 주지 정호 스님이 있는 염화실로 자리를 옮긴 박 선수는 가지런히 손을 모아 합장인사를 했다. 조부 상때 기도를 올려준 스님이기에 낯이 익다는 표정이다.
평소 말이 별로 없는 주지스님도 박 선수가 못내 기특한 듯 흐뭇한 표정으로 불명부터 묻는다.
“불명이 5개나 있는데 잘 기억이 안 나네요.”
잠시 대답을 머뭇거리던 박지성 선수가 이렇게 말하고는 쑥스러운 듯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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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있던 아버지 박성종씨가 아들을 거들었다.
“종국이하고 영표하고 지성이를 교회에 데리고 가려고 무진 애를 쓰나봐요. 주지스님께서 마음 다잡도록 한 말씀 해주세요.”
“오늘 박지성 선수에게 ‘만(卍)’자 목걸이를 선물로 준비했습니다. ‘만’자는 그 기운이 시방세계로 뻗어 온 우주법계를 두루 감싼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목걸이를 걸고 불교의 참뜻을 늘 가슴에 품길 바랍니다. 그리고 ‘만’자처럼 한국 뿐만 아니라 세계를 주름잡는 선수가 되기를 바랍니다.”
짧지만 의미 있는 법문을 들은 박지성 선수는 용주사의 상징 효행기념관 법당으로 자리를 옮겨 20여 선방 스님들과 만났다.
평소에는 활구참선에 몰두하는 스님들이지만, 박지성 선수를 격려하기 위해 잠시 짬을 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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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성 선수는 이번 방문에 독일월드컵에서 스위스와의 경기때 입었던 유니폼과 독일월드컵 공인구 팀 가이스트 사인볼을 가져왔다.
스님들에게 늘 받기만 하다가 용주사에 뭔가 줄 수 있어 기쁘다는 박지성 선수의 대중공양인 셈이다.
아버지로부터 스님들도 축구를 좋아한다는 얘기를 들은 박지성 선수는 대한축구협회 공인구에 직접 사인한 공 30개를 용주사에 선물했다.
효행기념관에는 ‘박지성 선수 독일월드컵 법회’라는 플래카드와 스님들이 박지성 선수를 반갑게 맞았다.
법회가 진행되는 동안 부처님을 향해 합장한 박지성 선수. 흐트러지지 않은 ‘15도 내려보기’ 자세는 겸손하면서 당당하다. 이국땅 영국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겁 없는 동양인’으로 자리 잡은 그의 강인한 내면이 엿보인다. 그는 부처님 앞에서 무엇을 기원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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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회가 끝나자 수많은 질문이 이어졌다. 그러나 스케줄이 바쁜 박 선수는, 박수를 받으며 짧은 용주사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총총 떠나갔다. 한 신도가 자긍심이 가득한 말로 아쉬움을 달랬다.
“박지성 선수를 절에서 보니 너무 뿌듯하네. 이래서 젊은 불자 키워야 한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