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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입장에 서면 나도 좋은 아버지”
봉은사‘좋은 아버지 교실’참가자에 들어보니…
직장에서 피곤한 하루를 보내고 집에 돌아온 아버지. 가족의 따뜻한 환대를 기대했지만 아이들은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에 빠져 관심조차 없다. 아이들과 말 한마디라도 나눠보려고 하면 “알지도 못하면서 왜 참견이냐” “나한테 관심이라도 있느냐”며 방문을 닫아버리기 일쑤다. 그리 낯설지 않은 이 시대 아버지의 자화상이다. 가정의 ‘외딴 섬’으로 남겨진 아버지들을 구출해 낼 해결책은 없을까?

서울 봉은사(주지 원혜)가 6월 9일~7월 7일 매주 금요일 개최한 <좋은 아버지 교실>에는 30여 명이 참가해 늦은 밤까지 강의를 들었다.


서울 봉은사(주지 원혜)가 6월 9일부터 7월 7일까지 개최한 ‘좋은 아버지 교실’은 가정에서 아버지의 역할을 살피고 자녀와의 관계를 되돌아보는 프로그램이었다. 30여 명의 아버지들이 바쁜 시간을 쪼개 5주간의 수업에 동참했다. ‘좋은 아버지 되는 일’이 그렇게 절박했을까? 아버지 교실에 참가하게 된 이유와 변화 과정을 들어봤다.

“제가 ‘나쁜 아버지’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하지만 좋은 아빠가 되는 방법 또한 몰랐죠. 자녀가 중2, 고2인데 아이들이 자랄수록 상황별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도 방법을 모르니 아이들을 권위적으로 대하기도 했습니다.” (유정용, 46, 서울 노원구)

“저희 세대는 ‘아버지가 되는 법’ 같은 건 배울 기회도 없었고, 배울 필요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제대로 아빠 노릇을 하는지도 모른 채 아이들은 훌쩍 커버렸어요. 늦었지만 아이들과 좀 더 가까운 아빠가 되고 싶었습니다.” (한경만, 56, 서울 성동구)

‘좋은 아버지’가 되겠다는 굳은 결심으로 참가했든, 부인과 자녀에게 등이 떠밀려 참가했든 강의가 진행될수록 참가자들은 ‘연대의식’으로 똘똘 뭉친다. 세계 최장의 노동시간과 밤늦게까지 귀가하지 못하게 하는 회식문화, 엄한 아버지를 강요하는 가부장적 분위기 등을 탓하며 서로를 위로해보지만 결국 문제는 자신에게 있음을 알게 된다. 자신이 변해야 가족도 변하는 것이다.
“아이들이 원하는 건 돈이나 장난감이 아닌 아빠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좋은 아버지 되기’의 핵심은 아이들의 말을 잘 들어주고, 자신의 이야기를 잘 전달하는데 있다. 강의를 맡은 정명애 강사(한국지역사회교육협의회 부모교육 수석강사)는 ‘잘 듣는 법’으로는 ‘침묵의 대화’를, ‘잘 말하는 법’으로는 ‘나 메시지’와 ‘행동 언어’를 제시했다.

‘침묵의 대화’는 아이의 말을 자르지 말고 끝까지 들어줌으로써 아이 스스로 계속 이야기를 풀어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아이의 말이 어눌하고 논리에 맞지 않더라고 끝까지 경청하고 나서 자신의 의견을 얘기한다.

좋은 아버지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자녀와의 대화법에 대한 강의를 듣는 참가자들의 모습이 진지하기만 하다.


아이의 잘못을 지적하거나 야단을 칠 때도 “인터넷 좀 그만해라” “너 혼날래” 같은 ‘너 메시지(You message)’ 대신 “아빠는 네가 인터넷을 너무 많이 하는 것 같아 걱정이다”는 식의 ‘나 메시지(I message)’를 사용한다. 또 “너는 왜 그 모양이냐” 같은 아이의 존재감을 뒤흔드는 말 대신 “네가 화장실 불을 안 껐구나”처럼 잘못된 행동을 구체적으로 짚어줌으로써 아이 스스로 자신의 행동을 생각해볼 수 있도록 한다.

대화법 이론은 간단하지만 배운 것을 실천하기는 쉽지 않은 일. 때문에 수업을 시작할 때면 꼭 지난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을 일주일간 잘 실천했는지를 ‘점검’한다. 쏟아지는 아버지들의 체험담.

“중학교 2학년 된 아이에게 템플스테이에 한 번 가보라고 했더니 무작정 싫다고 하더군요. 예전 같으면 혼내고 윽박질러서라도 가라고 했겠지만, 지난 수업 내용을 떠올리며 아이를 설득했습니다. 제가 어릴 때 절에 가서 느꼈던 좋은 감정과 추억들을 들려주었더니 아이가 조금씩 절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대학 졸업 후 취직 준비를 하는 아이가 매일 늦게 들어오고 방에 들어가면 문을 잠가 버립니다. 그래서 지난주에는 제가 먼저 아이 방문을 두드렸습니다. 아이에게 ‘지금이 네게 얼마나 힘든 시기인줄 안다. 나는 너를 이해한다’고 말해줬습니다. 비록 당장 눈에 띄는 변화는 없었지만 무척 놀라는 눈치였습니다.”

처음엔 자녀에게 다정스럽게 말을 건네는 것이 쑥스럽지만 한두 번 횟수가 늘수록 대화법에 익숙해지게 된다. 처음엔 “하던 대로 하시라”며 어색해하던 자녀도 곧 아버지의 변화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이 정명애 강사의 조언이다.

취직 준비 중인 자녀를 둔 황진호(60, 서울 송파구)씨는 “대화법을 배울수록 아버지 교육의 필요성을 많이 느낀다”며 “자녀가 어렸을 때 이런 내용을 알고 있었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정씨는 “불자들은 자녀문제를 ‘수행’의 일환으로 생각한다면 대화법을 실천하기가 한결 쉽다”며 “아버지 교육이 1회성으로 끝나지 않도록 참가자들끼리 모임을 갖고 정보를 교류한다면 더욱 좋은 아버지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자녀와의 올바른 대화법>

▷ 침묵의 대화

부모와 대화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은 어쩌다 한번 입을 열어도 대개 자기주장이나 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 보통의 부모는 답답한 나머지 아이의 말을 중간에 끊고 일방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만 하기 일쑤다. 이렇게 되면 아이는 더 이상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지 못하게 된다. 아이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고, 눈을 마주치거나 고개를 끄덕이는 등 맞장구를 치며 아이의 말을 경청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만일 다른 일을 하면서 무심하게 대화하거나 대꾸를 하지 않으면 아이 입장에서는 부모가 자신을 거부한다고 느껴 마음의 문을 더 닫는다.


▷ ‘너 메시지’와 ‘나 메시지’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방법에는 ‘너’의 행동을 비판하고 평가하는 ‘너 메시지(you-message)’와 나의 기분과 감정을 설명하는 ‘나 메시지(I-message)’가 있다.

흔히 부모는 “너 왜 그렇게 버릇이 없어” “하는 일이 왜 그 모양이냐”는 식으로 아이의 행동을 꾸짖게 된다. 이 같은 ‘너 메시지’는 상대방의 행동을 직접적으로 비판하고 자신의 감정을 노골적으로 표출하는 방법이다. 이러한 대화법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존심을 상하게 하고 저항감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대신 “네가 그렇게 얘기하니 아빠는 무척 섭섭하다”는 식의 ‘나 메시지’는 화자(話者)의 심리상태와 감정을 표현함으로서 자신의 행동이 상대방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생각해 볼 수 있게 만드는 대화법이다. ‘나 메시지’의 핵심은 상대방의 행동을 비난 없이 묘사하고, 상대의 행동이 자신에게 미치는 구체적인 영향과 감정을 전달하는 데 있다. 또한 “네가 하는 게 다 그렇지”나 “너 때문에 못살아” 등의 아이의 존재를 무시하는 발언도 삼가야 한다.

여수령 기자 | snoopy@buddhapia.com
2006-07-12 오전 10: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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