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시대’로 통한 지 오래다. 지구가 하나의 마을로 표현될 만큼 이전보다 훨씬 다양한 문화를 접하고 공동의 공감대를 형성한다. 그 중심에 교류가 있다. 이같은 시대적 흐름에서 한국불교도 예외일 수는 없다. 한국불교는 세계화의 흐름을 타고 1950년대부터 종단을 중심으로 국제교류를 진행해왔다.
그러나 최근 한국불교의 국제 교류는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인다. 외형과 선언적 의미가 강했던 예전의 교류와는 달리 실리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무게중심도 종단에서 단위사찰이나 불교단체로 이동하고, (우리가) 가진 것은 베풀고 (우리에게) 없는 것은 배워오는 형태로 진화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배우는 교류’로 방향 전환
실천불교전국승가회(공동의장 성관·효림)는 5월 16일부터 20일까지 일본 사찰과 주요 시설을 견학했다. 혼보쿠지(本福寺), 카츠오지(勝尾寺), 나리타지(成田寺), 히가시혼간지(東本願寺), 신쇼지(新勝寺), 다마레이엔(多磨靈園), 신고베 허브가든 등을 둘러본 이 견학은 실천불교승가회가 올해 주요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사찰경영에 관한 연구’의 해답을 얻기 위해서 였다.
실천불교승가회는 일본 견학을 통해 사찰의 문화적 기능을 확대하고 신도중심의 공간운영,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이루는 불사 추진 등 일본 사찰의 특징을 배운 점을 성과로 꼽았다. 아울러 일본사찰과의 지속적인 교류를 통해 양측이 갖고 있는 노하우를 공유하기로 했다.
실천불교승가회 견학단으로 참가했던 조계종 중앙종회의원 토진 스님(수국사 주지)에게 일본 견학은 갈증을 풀어준 경험이었다. 단순히 사찰과 성지를 순례한 이전의 외국행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뿌듯함이었다.
토진 스님은 “보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지 못한 것이 아쉬울 만큼 성공적이었다”며 “사찰을 운영해야 하는 스님으로서 해야할 일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템플스테이를 주관하고 있는 한국불교문화사업단도 같은 기간 타이완 카오슝 불광산사를 방문했다. 지난해 일본사찰 템플스테이 체험에 이은 두 번째. 불광산사의 템플스테이를 직접 체험하고 운영과 관리 시스템을 배우기 위한 자리였다.
두 번의 체험에서 주목할 점은 참가자수다. 일본사찰 체험 당시 참가자는 38명이었지만, 이번 타이완 불광산사 체험은 68명으로 크게 늘었다. 지난해 체험이 템플스테이를 운영하는데 큰 보탬이 됐다는 당시 참가자들의 입소문 때문이었다.
한국불교문화사업단 사무국장 성효 스님은 “우리나라 사찰들이 갖고 있는 템플스테이에 대한 노하우도 불광산사측에 전하기 위해 그들을 초청해 놓은 상태”라며“서로에 대한 이해와 협력를 바탕으로 교류를 가진다면 상생의 교류가 될 것”이라고 조언한다.
◇형식보다 내용 중시
현재 한국불교의 국제교류는 변화의 중심에 놓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일불교문화교류대회, 한중일불교교류대회, 세계불교도우의회, 세계불교도연맹 등 그동안의 교류가 종단이 주도해 대규모로 대표단을 파견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면, 이제는 사찰 또는 불교단체 단위의 교류가 주류를 이루고, 형식 보다는 내용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는 것. 이는 실용주의를 중시하는 세계화의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이와 함께 성과는 적으면서 지나치게 소모적인 교류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도 일고 있다. ‘작으면서도 효과 있는’ 교류가 늘어나는 시대적 흐름에서 흘러나오는 자성론이다.
조계종 중앙종회의원 일문 스님(파주 보광사 주지)은 “그동안 한국불교는 국제교류에 있어서 지나치게 외형적이고 소모적인 경향이 강했다”며 “이제는 작은 것 하나라도 배우고 얻을 수 있는 교류가 되도록 방향을 전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한다.
작은 규모의 교류 중에서도 왜곡된 형태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남방불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국내 사찰들이 경쟁적으로 남방권 스님들을 초청해 법회를 여는 현상이 대표적이다.
그동안 접해보지 못한 불교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킬 수는 있어도 그 이상의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일부 사찰에서는 신도 늘리기 또는 수입 확대를 노리고 사찰의 특성과는 관계없이 국제교류를 오용하고 있다.
또한 국내 사찰과 불교권 개발도상국 사찰과의 교류가 급속히 늘어나면서 일부 사찰의 퍼주기식 지원과 국내 사찰끼리의 지나친 경쟁이 문제를 양산하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남이 하니까 나도 한다’는 식이거나,큰그림을 갖고 교류를 가지지 못한 탓이다. 이에따라 사찰간 교류를 위한 교육과 안내, 지도 등을 종합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교류센터’를 종단내에 설치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되고 있다.
◇불교NGO 제3세계 구호 ‘모범’
제3세계에 대한 구호활동과 개발도상국 가운데 불교권국가에 대한 후원활동은 국제교류의 큰 줄기 가운데 하나다.
한국JTS가 인도에 개원한 초등학교 수자타아카데미를 시작으로 경제정의실천불교시민연합, 지구촌공생회, JGO, 실천불교전국승가회 등 불교단체들이 제3세계로 눈을 돌리면서, 구호활동은 이제 교류의 한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가장 먼저 해외로 진출한 JTS는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인도네시아, 미얀마 등 재난지역에서 긴급구호활동을 펼치고 있고, JGO는 스리랑카와 네팔에 직업훈련센터와 유치원, 의료센터를 각각 운영하고 있다.
지구촌공생회도 라오스와 캄보디아, 미얀마, 베트남, 인도, 몽골 등지에 초등학교와 유치원, 직업훈련센터 등을 건립하거나 공동우물을 개발하는 사업을 추진 중이다. 이 외에도 경제정의실천불교시민연합와 실천불교전국승가회는 네팔과 캄보디아에 각각 직업훈련센터 비하니바스티(아침을 여는 작은 마을)와 유치원, 초등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이들 단체의 활동은 해외 사찰과의 교류를 모색하고 있는 사찰들에게 본받아야 할 해외 진출 모델로 꼽힌다. 한국불교의 이미지를 선양하면서도 포교의 효과를 거둘 수 있어 새로운 교류방식에 대한 힌트를 주고 있는 셈이다.
불모지와 다름없는 베트남 진출을 모색하고 있는 옥천 대성사(주지 혜철)의 교류방식은 눈여겨볼만하다. 베트남과의 교류가 양쪽에 이익을 주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선남선녀 인연 맺어주기’ 사업을 벌이고 있는 대성사는 베트남 분원 건립과 ‘선남선녀 만남’을 확대해 한국 총각과 베트남 처녀를 맺어주는데 중점을 두고 진출계획을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대성사는, 베트남 여성을 상품으로 취급하는 등의 부작용을 해결하는 NGO 활동으로 방향을 바꿨다. 베트남 여성들의 인권을 보호하고 매매가 아닌 올바른 결혼문화를 세우기로 한 것.
이에 따라 대성사는 지난 3월 베트남 현지에 여성상담소를 개설하고 2명의 직원을 채용했다. 여성상담소는 여성인권과 결혼, 신행에 대한 종합적인 상담활동을 벌여 현지인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다. 결국 대성사는 베트남과의 교류로 ‘선남선녀 인연 맺어주기’ 사업에 탄력을 받고 있고, 베트남 현지에서는 여성인권 보호와 함께 한국불교를 알리는 포교성과를 거두는 일거삼득의 효과를 거두고 있는 셈이다.
수원포교당 주지 성관 스님은 “경제적으로 낙후된 불교권 국가들은 과거 우리나라가 그랬던 것처럼 빈민 구제와 교육을 앞세워 진출한 기독교국가들의 문화 말살에 무방비하게 노출돼 있다”며 “사찰간 왕래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돕는 교류방식도 중요하지만, 이보다 해당국가에 직접 진출해 교육·육아사업을 벌이는 교류방식이 효과적일 수 있다”고 충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