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살된 딸을 기르는 주부 은현정씨(29ㆍ서울 중구)는 불자다. 아기를 낳기 전에는 바쁘더라도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사찰에 가곤 했다.
그런데 아기를 낳으면서부터 사찰에 나가는 일을 포기했다. 이유는 단 하나, 법회를 보는동안 딸이 마음껏 놀 수 있는 시설이 사찰안에 없어서다.
은씨와 같은 처지의 젊은 엄마불자들이 많다. 도심 대형사찰과 포교당 대부분, 2~5세 유아를 맡기고 마음 편하게 신행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모처럼 법당을 찾아도, 행여 아이들이 보채거나 울까 염려돼 108배를 하거나 정근에 몰두할 수 없다. 잠이 든 아기를 좌복 위에 눕혀 놓고 조심스럽게 기도를 할 때면, 아이 때문에 남에게 방해가 되지 않을까 무척 신경이 쓰인다는 엄마들도 많다.
은현정씨 역시 그렇게 조바심 치다가 개운치 않은 마음으로 돌아오기를 몇 번 반복한 끝에 차라리 신행생활을 한동안 쉬어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은씨는 “짧은 시간만이라도 마음 편하게 신행활동을 할 수 있도록 사찰 한 구석에 탁아소나 놀이방이 마련돼 있으면 좋겠다”고 호소한다.
일산 신도시에 사는 새댁 김현자씨(32) 사정도 비슷하다. 김씨는 “요즘은 감자탕 집이나 패밀리 레스토랑에 가도 아기를 맡길 수 있는 놀이방이 마련돼 있고,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도 아기 기저귀를 갈 수 있는 공간과 수유방이 따로 있지만 사찰에는 그런 시설이 없어 아기와 함께 사찰 가기가 몹시 불편하고 눈치도 보인다”며 “아이가 부처님 계신 곳에서 마음껏 뛰어놀고, 나도 신행생활을 통해 위안을 얻고 싶은데 그것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불교계가 최근 저출산ㆍ고령화 대책과 관련해 많은 공약들을 내놓고는 있지만, 정작 여성불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방안을 제시하는 경우는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일선 사찰의 작은 관심과 배려가 부족해 포교는커녕 기존의 불자들조차 절에 가기를 꺼리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타종교계는 어떨까. 개신교계는 지난 1월부터 중ㆍ대형교회 중심으로 범기독교 차원의 ‘교회 울타리 낮추기’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 운동의 핵심은 바로 ‘젊은 엄마들 마음잡기.’
서울 여의도순복음교회를 비롯해 전국의 150개 교회들은 교회 내 유휴공간을 이용해 영유아를 위한 보육시설을 개설하고 있다.
광화문 종교교회의 경우 인근에 보육시설을 마련하고 운영위원회를 두는 것은 물론, 영유아 자녀들을 교회에 맡기고 직장으로 출근하는 부모들을 위해 교회 주차장까지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정부는 6월 20일 ‘2010년까지 국공립 보육시설을 30%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영유아보육은 우리사회에서 더 이상 가정 내의 문제가 아니다. 타종교계 역시 저출산이 교회 성장의 정체와 사회적 선교역량 감소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인식하기에 앞장서서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안들을 내놓고 있다.
지역주민들을 위한 공간마련에 염두에 두고 최근 방과후 교실을 사찰내 마련한 서울 금장사 주지 본각 스님은 “교회 내 영유아보육시설에 다니는 아이들은 자라면서 교회 부설 어린이집과 방과후 공부방으로 연결돼 자연스럽게 기독교인이 되기 때문에 이는 하나의 선교전략”이라며 “사찰에서도 하루 빨리 영유아 및 아동 보육시설을 마련하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총지종이 운영하는 자성학교는 불교계 보육시설 양성방안을 수립할 때 참고할 수 있는 좋은 사례다. 총지종은 강남 총지사를 비롯해 전국 34개 사찰 법당 옆에 ‘자성학교’라는 명칭의 놀이방을 운영하고 있다.
부모들이 일요법회에 참석하는 동안, 젖먹이부터 초등학교 저학년 아동까지 다양한 연령대 아이들은 3평 남짓한 공간에서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자유롭게 놀며 부모를 기다린다. 총지종의 자성학교는 일요법회가 열리는 시간 동안에만 잠시 운영되며 초등학교 저학년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보육과 놀이가 가능한 공간을 마련하고 전담자를 따로 두어 호응을 얻고 있는 것.
젊은 엄마들을 위한 시설 서비스가 없이는 저출산 시대에 새싹 포교도 메마를 수밖에 없다. 하루바삐 인식전환과 관련 종책의 수립으로 이어져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