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장면 세 그릇을 주문했다.
종업원이 주방을 향해 소리친다.
“자장면 셋이요, 하나는 고기 빼고~.”
우리가 흔히 들었던 이 유머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한 부부가 있다. 일명 ‘스님자장면’을 만드는 장기철(48) 신순식(45)씨 부부다.
대구에서 경산 자인을 지나 69번 지방도로를 타고 청도 금천면 방면으로 가다보면 동곡리라는 작은 마을 입구에서 용천휴게소를 만나게 된다.
다소 외지다는 흠이 있지만 맑은 개울을 건너 푸른 자연 속에 위치한 이곳에 그들의 보금자리 ‘강남반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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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만드는 자장면은 어떤 것이기에 이름이 ‘스님자장면’일까?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스님들이 부담없이 먹을 수 있도록 재료와 맛에 신경을 써서 만들기 때문이다. ‘스님자장면’은 돼지고기 대신 표고, 목이, 양송이, 새송이, 팽이버섯 등 다섯 가지 버섯을 넣어 자장을 만들고, 파 마늘 등 자극성 있는 오신채는 사용하지 않는다. 기름도 올리브유나 콩기름 등 식물성만 쓴다.
“비록 잘 살지는 못하지만 마음만큼은 부자”라는 장씨 부부. 6월 13일, 인근 사찰 비구니스님들이 자장면을 먹으러 온다는 기별을 받고 공양 준비에 한창이다.
오후 4시, 20명의 스님들이 들어서자 장씨 부부의 움직임은 더욱 빨라졌다. 면을 빠르게 삶아 자장과 같이 내고 김치와 풋고추 된장을 곁들였다.
가격은? 스님자장면 한 그릇에 보통 4500원. 남다른 재료를 쓰지만 시중의 가격과 차이가 없다. 그런데 수행하는 스님께 다 받을 수가 없어 오늘은 파격적으로 값을 내려 불렀다. 스님들이 왜 이리 싸냐고 물어도 “받을 것 다 받았다”며 손사래를 친다. 가끔 스님들이 더 많은 값을 쳐 줄 때도 있고, 장씨 부부가 사찰을 찾으면 시주할 때도 있으니 ‘부처님 계산법’으로는 다 맞았다는 설명이다.
장씨 부부의 한결같은 태도와 진실한 마음가짐은 자장면의 깔끔하고 담백한 맛과 어우러져 스님들 뿐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인기다. 게다가 요즘은 해물과 자극적인 재료를 뺀 ‘스님짬뽕’과 약초와 버섯으로 국물 맛을 낸 ‘스님냉면’, 고기대신 버섯을 튀겨 만든 ‘스님탕수이’ 등 메뉴도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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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음식에 한하여 ‘배달’은 상식이지만 ‘출장’은 흔치 않은 일. 장씨 부부는 전국의 사찰에서 쇄도하는 요청을 거절할 수 없어 출장도 나간다.
아무리 멀어도 사찰에서 요청만 하면 어디든 달려갈 준비가 돼 있는 강남반점이다. 그래서 반점 한 켠에 놓인 화이트보드에는 사찰출장요리계획이 빼곡히 적혀있다. 전날 기본재료를 준비하고 새벽에 출발하는데 아무리 멀어도 오전 11시 스님들의 공양시간을 어겨본 적이 없다.
스님을 위한 특별한 자장면은 1991년 4월 장씨 부부가 동곡리에서 강남반점을 처음 열 때 평소 인연 있는 스님들에게 공양을 대접하기 위해 만들기 시작하면서 비롯됐다. 그러나 스님자장면이 알려진 것은 유홍준 문화재청장 때문. 1993년, 유홍준 청장이 영남대 교수로 재직할 당시 스님들이 자장면을 먹는 것을 보고 저서 <나의문화유산답사기>에 소개하면서 알려졌다.
“아이는 내가 낳았는데 이름은 다른 사람이 지어준 셈 입니다” 장기철씨는 애써 호탕한 우음을 짓지만 내심 ‘스님자장면’이라는 이름이 마음에 안 든다. 혹 스님들에게 누를 끼칠까 저어돼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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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철씨가 스님들을 지극히 공양하는 것은 단순히 직업 때문일까? 뭔가 별난 인연이 있을 것 같다.
“스님에게 돈을 빌려 썼습니다.”
장기철씨는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스물여섯쯤 때였다. 장씨는 버스터미널 뒤쪽의 논을 사서 포장마차를 운영할 생각으로, 어떤 스님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했다. 그것도 터미널에서 겨우 서너 번 마주쳤을 뿐인 스님에게.
“왜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 수행자가 속인과 돈거래를 한다는 것이 정말 어려운 일인데 말입니다. 큰 기대는 안했는데 스님은 ‘강가에 논을 사서 다 떠내려 보내느니 젊은 사람에게 빌려줘 뜯기는 것이 낫겠다’며 두 말 없이 빌려줬습니다.”
장기철씨는 스님에게 고개숙여 감사했고, 스님의 큰마음을 가늠할 길이 없어 놀랐다. 이후 스님과의 인연은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그렇다고 스님이 특별한 요구를 한 적도 없다.
장기철씨는 깊은 산중에는 공양 한 끼 해결하기조차 힘겨운 선방이 있다는 것을 잘 알기에 일년에 두어 번 깊은 산중 선방을 찾아다니며 스님들께 무료공양을 올린다. 대신 시주가 많이 들어오는 큰 사찰에서는 자장면 값을 다 쳐서 받으니 특별할 것도 없다. 오히려 여러 산사를 찾아다니고 스님을 만나면서 많은 것을 보고 배우고 있으니 더 감사할 뿐이다.
장씨는 늘 기도하며 마음을 닦는 불자가 못돼서 스스로를 ‘돌팔이 불자’라고 말한다.
이제 돌팔이 불자생활을 청산할 때가 된 듯 장기철씨는 시간이 나는 대로 교리공부에 매진해 포교사고시에 도전해 볼 생각이다.
물 맑고 산 푸른 청도에서 산사의 출장요리를 서두르는 장씨 부부의 꿈은, 두 아들 결혼만 치르면 절에 들어가 수행하는 스님께 공양 올리며 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