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3.2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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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자 마음 느껴질때 행복"
[도반의 향기]한국 고전·선시 영역하는 이안 헤이트
이안 헤이트(Ian Haight). 39살의 그는 분명 미국인이다. 그러나 그의 내면에 숨쉬고 있는 것들은 국적을 분간키 어렵다. 한국인이냐 미국인이냐는 문제되지 않는다. 그가 한국에 산 기간은 15년 남짓이지만 한국 사람보다 더 한국적인 정서에 매료돼 있기 때문이다.

헤이트씨는, 조선시대를 살다간 천재적인 여류시인 허난설헌의 시세계를 이해하고 초의 선사의 시를 즐겨 읽는 몇 안 되는 외국인이다.

그는 “성철 스님의 시나 말씀은 그 어떤 시보다 더 훌륭한 시”라고 감탄하기도 한다.

헤이트씨는 부산외국어대 국제통상지역원 교수로 영어를 가르치며 한국의 고전문학을 영어로 번역하는 번역가다.
우리 고전문학을 제대로 영어로 번역하는 외국인은 드물다. 그만큼 외국인으로서 한국의 고전작품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 대부분의 외국인들이 아예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로 어려워하는 분야다.

헤이트씨는 몇 년 전 지인의 소개로, 허난설헌이 두 아이를 잃고 지은 시를 처음 대하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뜻을 정확하게 이해할 순 없었지만 그 여인의 감정이 시어(詩語)에서 고스란히 되살아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미국의 미시간대학에서 영문학과 시를 전공하고 어린시절 시인을 꿈꾸기도 했던 그였기에 허난설헌과의 인연으로 알게 된 한국의 고전문학은 그를 사로잡았다. 그의 내면이 요동쳤다. 그렇게 고전문학 번역 작업은 시작됐다.

그에게 번역은 소통의 다른 이름이다. 우리나라의 고전문학은 단순히 이국(異國)의 문학이 아니라 그것을 쓴 인간의 마음과 교류하고 소통할 수 있는 길이 돼 주었다. 그는 그 길을 따라 걸으며 글을 쓴 저자의 내면을 느끼려했고 그것을 현대를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해주고 싶었다. 한국에서 살다간 사람들의 느낌과 정서는 그를 통해 미국을 비롯한 영어권의 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전해진다. 시공(時空)을 뛰어넘는 연결고리를 만드는 일에 무한한 기쁨과 보람을 느꼈다.

헤이트씨가 번역에서 최우선으로 여기는 것은 그 작품을 썼던 사람의 느낌을 제대로 이해하는 일이다.
평소 번역 작업을 지켜보며 자료 수집 등을 돕고 있는 한국인 부인 황정선(39)씨는 완벽을 기하는 그의 번역 작업 때문에 애를 먹는 장본인이다.

“뭐든 대충하는 게 없어요. 초의 스님에 대한 시를 번역할 때는 녹차에 대한 자료조사부터 시작했어요. 아는 사람한테 묻고 또 물어 자료 조사를 한 후 초의 스님의 발자취를 따라 여행하는 것도 빼놓지 않아요. 그래서 우리 가족은 여행을 많이 다녔어요. 허난설헌의 묘에도 갔고 묘비도 번역해 보고 그랬죠.”

영어번역에 쏟는 그의 열정에는 공동작업을 하고 있는 허태영씨(전직 수학교사)도 두 손을 든다. 헤이트씨를 ‘진지한 번역가’라고 평한 허씨는 “헤이트씨는 자기 스스로 번역에 대한 철저한 검증을 거칠 뿐 아니라 미국인 친구들에게 몇 번이고 보여주고 읽게 해서 의견을 참조하고 다시 다듬기를 반복한다”고 했다. 영어로 통역을 해주면 그것을 토대로 초역을 하던 처음과는 달리, 요즘은 한문에 토만 달아줘도 스스로 번역을 할 정도로 한문에 대한 이해도 깊어졌다. 좀 더 완벽한 번역을 하려는 헤이트씨의 노력이 가져온 결과다.

게다가 캘리포니아주립대학에서 영문학 석사학위를 받고 시창작 전문 고다르대학원까지 마친 그의 문학적 감수성과 실력은 번역에서 유감없이 발휘됐다.

“시를 썼던 사람의 느낌을 최대한 이해하고 그 사람이 표현하고자 원했던 것을 나타내는 것이 번역을 하는 사람의 예의”라고 강조하는 헤이트씨.

그는, 한국문학번역원(Korea Literature Translation Institute)과 대산문화재단이 우수한 번역가에게 지원하는 번역 지원금을 받아 초의 선사의 ‘동다송’과 허균의 시 200수를 영역하기도 했다. 특히 그가 번역한 초의선사의 시는 여러 차례에 걸친 검토 작업을 끝내고 현재 미국에서 출판을 앞두고 있다. 한국의 선화, 그림들과 함께 초의 선사의 시가 미국인들의 내면을 울리게 될 날이 머지 않았다.

가장 좋아하는 시인을 묻는 질문에 ‘성철 스님’을 꼽기도 했을 정도로 헤이트는 깨달음의 세계를 시로 표현한 선시에 관심이 많다. 성철 스님의 시에서 말이 아닌 느낌과 이미지를 본다는 헤이트씨는 어린시절 아버지가 어머니 몰래 그의 눈길 닿는 곳에 두었던 불교 서적에서 그는 ‘깨달음’이라는 단어를 처음 알았고 ‘깨달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한동안 참다운 스승을 만나지 못해 방황도 겪었지만 이제는 그의 수행 또한 번역처럼 자연스런 일상이 됐다.

그의 집을 찾았을 때, 그는 금식(禁食) 중이었다. 보름날을 전후해 한달에 두번 금식을 한다고 했다. 스스로 우주 에너지와 하나 되는 느낌을 충만하게 느끼기 위해 정한 규칙이며 철저하게 지킨다.

또 그는 채식주의자다. 그를 따라 그의 세 아이들도 다섯살까지는 자연스럽게 채식을 한다. 다섯살 이후는 스스로의 판단에 의해 채식이 아닌 다른 음식을 먹기도 하지만 집에는 들고 오지 못한다.

하루 세 번 2~3시간가량 명상을 하는 그는 아이들과 아내에게 인연과 업보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하며 깨달음을 향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세 아이들 하늘이(Henry.11), 푸름이(Brennan), 햇님이(Henna) 이름도 모두 스님이 지었을 정도로 한국의 스님들과 교류하며 살고 있는 헤이트씨가 무의자(無衣子) 진각 국사의 시를 통해 고려시대를 살다간 스님과의 대화를 나누는 것은 결코 별스럽지도 않은 ‘자연스런’ 일이다.

요즘 헤이트씨는 무의자 진각 국사의 선시에 푹 빠져있다. 번역을 통해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는 일이 행복하다는 이안 헤이트. “시를 읽고 번역하는 일이 행복합니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을 즐기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 조금 더 원작자의 마음을 잘 담아낸 번역이 나올 것이고 스스로의 마음을 알아가는 수행을 즐겨하면 깨달음도 선물처럼 찾아오겠지요”라고 말했다
글=천미희 기자 ·사진=박재완 기자 |
2006-06-20 오전 9: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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