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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6월과 월드컵
[불자세상보기]월드컵 열풍에 대해
노귀남 교수.
결전(!)의 날에 내게도 승전을 기원하는 문자메시지가 배달되었다. 뒤풀이로는 중국에서 축하 메일이 2통이 날아왔다.

그럼에도, 나는 ‘토고와 경기에서 져도 좋다고 생각했다. 온 국민이 축구에 희망을 걸었을 나라…’라고 답장 문자를 보냈다. 사활이 걸린 듯이 응원열기가 신록 짙은 유월의 거리를 붉게 물들이고 있는데, 무슨 망발? 어디 가서 그런 말 하지 말라고 한 친구가 충고를 해준다.

방송이 온통 도배를 하고, 스포츠 황금산업에 젊은이들의 순수한 열정이 도매금으로 넘어가고 있는 것이 안타까운지, 다른 한 친구는 ‘아 다시 달맞이꽃 피누나/ 공 하나에 미처 버린 조국이여!/ 환장할 시인이여!’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다.

누구든 한마디 거들고 있으니, 월드컵 마술에 걸린 것 같다. 캄보디아의 텝 봉 스님은 경기를 조용히 명상하듯이 봐야 하며, 스님이 흥분하면 파계한 것이라 하셨단다. 수행 차원의 말씀이지만, 표면 현상을 다스려서 깨달음이 올까. 또는 스님이 붉은 악마 옷을 입고 응원한다고 풀죽은 서민경제의 기가 살까.

가만히 보면, 모두 잘살려고 하는 일인 것 같은데, 우리가 제대로 가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잘살고자 하는 욕망, 애국적 물결을 모독하는 것이 아니라, 끝없이 부추기고 있는 경쟁과 경쟁심의 모순을 외면하고, 도리어 미화하고 있는 것 아닌지 염려를 한다.

잘 사는 일과 잘사는 것은 다른 문제일 수 있는데, 왜 잘살고 있는 나라가 더 이기려고 불을 켜는가. 명예와 영광과 당당한 승리를 위해 책정했을 상금, 16강 진출 시 1인당 1억, 8강 2억, 4강 3억, 우승은 5억 원, 이런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경제적 파급효과를 환산하면 ‘물경 115억 원의 상금’도 너무 적겠다.

그런데 작은 일에 눈이 어두우면 큰 것을 잃는다는 말이 있다. 선의의 경쟁은 좋은 것이라고 하지만, 자꾸 경쟁하다보면 좋고, 옳고, 맞고…. 선호와 시비와 분별을 낳는다. 그러다가 선택의 폭과 관계를 좁혀, 무한히 열려있는 자연과 진리의 길에서 멀어진다.

요새 유행하는 ‘비호감’이란 한마디로 딱 끊어버리는, 젊은이들의 취사선택 방법이 얼마나 무자비할 수 있는가. 경쟁, 선악, 시비 논법으로 따지는 일이 극도로 피로해져, 이제 머리가 고도의 직관을 요구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만….

안타깝게도 직관은 편견에서 나오지 않는다. 널리 성찰하는 데서 나온다. 토고와 경기를 하면, 토고의 문화도 보면 좋을 터. 다짜고짜 이겨야 한다는 한마디로 배경과 역사를 묵살한다. 토고 특집방송이라도 내놨더라면, 우리는 분명 새로운 눈을 얻었을 것이다.

새로운 인식에 따라 역사는 바꿀 수도 있다.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가 서구 열강의 식민지 정책이 낳았던 군사 독재와 정치적 탄압, 부패와 가난이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처로 남아 있듯이, 그런 종류의 모순이 우리 분단 속에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6·15의 정신으로 화해와 협력의 시대로 나아가고자 하는 마당에 6·25전쟁의 상처는 어떻게 치유해야 할까. 민족통일대축전에 참가한 안경호 북측 대표단장의 ‘전쟁’ 발언처럼 감당 안 되는 이북을 ‘비호감이야’ 하고 무시할 수도 없고….

원한과 모순이 깊지만, 승자와 패자, 호감과 비호감, 이런 경쟁과 이분법의 논리를 뛰어넘는 눈이 절실한 시점이다. 고통이 크기에 드러나는 문제와 아픔과 못남을 배척하지 않고, 새로운 관계로 포용하면서 살펴본다면, 거기에 눈물이 있고, 해원과 인간애의 아름다움이 살아나리라.

노귀남 | 북한대학원대학교 연구교수
2006-06-20 오전 9: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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