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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의 중심 광주에서도 심장격인 금남로. 이곳에 자리한 원각사(주지 도제)가 도심 포교 100년을 앞두고 6월 13일 중창불사 회향법회를 봉행했다.
대웅전 낙성식을 겸한 이날 법회에는 송광사 방장 보성 스님과 각 사암 스님, 박광태 광주시장, 유태명 동구청장 등 지역 기관장, 중창불사에 동참한 불자, 시민 등 300여명이 동참했다.
이 자리에서 보성 스님은 법어를 통해 “빛나는 고을 광주(光州)에 찬란한 금당이 들어섰다”고 증명하고 “법을 전하고 듣는 이 모두가 무위진인으로 거듭나는 진정한 원각의 도량이 되기 바란다”고 기원했다.
지난 2002년부터 시작된 원각사 중창불사는 대웅전(40평), 원각루(70평), 요사채(20평) 건립과 극락전(12평), 솟을문(15평) 복원 등으로 가람을 일신했다.
도심 빌딩 숲 사이에 전통 사찰의 웅장한 위용을 드러낸 대웅전은 전면 5칸 측면 3칸, 외7포 내5포 팔작지붕으로 근래 보기드문 수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대웅전에 이용된 목자재는 서울 조계사에 불교역사문화기념관이 들어서면서 해체된 덕왕전을 옮겨온 것으로 도심포교의 정신을 잇고 있다. 내부는 포교당의 기능을 살리기 위해 불단을 우측으로 배치해 넓은 공간을 확보했고, 부처님 제세당시 제자들의 구법정진을 상징해 1250불을 부조로 새겨 장엄했다.
이에 앞서 2년 전 건립된 원각루는 2층 누각으로, 원각사 일주문, 불교회관 등 다목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또한 옛 법당(극락전)과 일주문 역할을 해오던 솟을문을 복원해 원각사의 뿌리를 잊지 않도록 했다.
송광사 광주분원 원각사는 1914년 민가의 재실을 옮겨 도심포교당으로 창건됐다. 12평 작은 법당으로 출범한 당시는 백용성, 한용운 스님 등 선지식들이 저자거리에 나와 포교에 혼신을 다하던 때였다.
전남도청, 광주시청 등 관공서와 대형상가를 끼고 있는 원각사도 자연스럽게 근, 현대 호남불교의 중심이 되어왔다.
원각사 법당에서는 구산 스님을 비롯해 전국의 선지식이 사자후를 토했고, 수많은 불자들이 부처님 법을 만났다. 청년회에서 배출한 불자만 3000여명에 이르고 있어 원각사는 가히 ‘불자양성 사관학교’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1980년 5.18 광주민주항쟁 때는 시민군 보호와 대학생불교연합회, 청년불자들의 민주화 시위활동 거점역할을 했다. 이로 인해 계엄군이 법당 안에 최루탄을 쏘아대던 민주화 성지이기도 하다.
현재 원각사에는 어린이회, 중고 학생회, 청년회, 신도회에서 보현원각봉사단, 합창단, 경전반, 문화교실반 등 각종 신행단체가 활동하고 있으며 월 100여회에 이르는 법회와 강좌가 열리고 있다. (062)223-3168
"교육ㆍ신행의 새바람 불 것" 원각사 주지 도제 스님 인터뷰
광주 원각사 주지 도제 스님이 주장하는 도심포교당의 역할론이다. 4년 전 원각사 주지로 부임한 스님은 새벽부터 철야정진에 이르기까지 포교 전방에 나섰고, 한편으로는 도량불사에 전념했다. 중창불사를 통해 도심에 나온 이가 쉽게 법당으로 발길을 돌릴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또한 올곧은 교육과 신행활동으로 실천하는 불자 양성에 힘쓰고있다. 1차 중창불사를 마친 도제 스님은 “광주 금남로에 아시아문화수도 전당이 들어서게 되면 원각사는 세계적인 불교문화 중심이 될 것이다”며 “세계를 향한 포교를 위해 2차 불사를 구상중이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