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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경기 보되 흥분해선 안 돼…"
캄보디아ㆍ태국 승가, '시청' 조건부 허용
승속 불문한 한국의 월드컵 열기와 대조
독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월드컵 축구 대회에 온 세계가 열광하고 있다. 언론에서는 “지진 피해를 입은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 지역에서도 월드컵 축구를 시청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며 ‘분위기 띄우기’에 나선다.

4년 전의 열기가 아직까지도 식지 않고 있는 우리 국민들의 월드컵 축구에 대한 관심과 열정은 그 어느 나라 사람들보다도 높다. 대회 개막 훨씬 전부터 여러 방송사들은 ‘뉴스’를 독일 현지에서 생방송으로 진행하면서까지 ‘월드컵 분위기 띄우기’에 나섰다.

언론의 표현을 따르면 “4년 전 선보였던 우리의 길거리 응원은 이제 전 세계적인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고 한다. 이번에는 대도시의 광장과 경기장뿐만 아니라 중소도시나 농어촌에서도 대형 스크린을 설치하고 합동 응원을 펼친다. 아마 이런 분위기에 동참하지 않는 지방자치단체장은 ‘주민 소환’이라도 당할 것 같다.

많은 사람들에게 ‘탈속(脫俗)’의 이미지가 심어져있는 스님들도 이런 세속의 열기를 어쩌지 못한다. 최대 종단인 조계종의 총무원장 스님이 빨간 응원복을 입고 북한산을 오르며 “대~한민국!”을 외치는 장면이 공영 방송의 중요 시간대 뉴스에 나오고, 도심의 주요 사찰들에서도 ‘응원 법회’를 연다. “성인도 시대의 흐름에 따른다(聖人從時俗)”는 옛말이 틀리지 않음이 확인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가운데서도 차분함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곳이 있다. “까다롭다”고 여겨질 정도로 ‘철저한 계율 준수’를 요구하는 남방 상좌부 승단에서는 이번 월드컵 축구대회를 맞이하여서 ‘규율’을 정해 시행하면서 ‘차분함’을 강조하고 있다.

6월 7일 중국의 신후아(新華)통신이 인용한 ‘캄보디아 데일리(The Cambodia Daily)’ 기사에 따르면, 캄보디아 승단에서 ‘감정의 자제’를 전제조건으로 스님들에게 월드컵 경기 중계방송을 시청할 수 있게 허락하였다.

수도 프놈펜의 교구장 소임을 맡고 있는 농 응에(Non Nget) 스님은 ‘중계방송 시청 허용’의 조건을 분명하게 강조하였다. “스님들이 중계방송을 시청할 수 있지만, 조용하게 보아야 한다. 화난 얼굴로 소리를 질러대거나 기분이 들떠서 환호하는 것은 길거리 아이들이나 하는 짓이다. 사찰 안에서 크게 웃거나 소리를 질러대는 일은 부처님께서 정해주신 계율 규정을 어기는 것이다. 혹시 경기 결과를 놓고 내기를 하는 스님이 있으면 절에서 쫓아낼 것이다.”

우리에게는 ‘보수적’이라고 느껴지는 농 응에 스님의 이런 조치가 캄보디아의 일부 스님들에게는 오히려 ‘세속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것 같다. 몇몇 주지 스님들은 “농 응에 스님의 제안을 따르지 않겠다”고 하면서 경기 시청을 불허하였다. 이 스님들은 “스포츠 경기를 관람하는 스님들이 감정을 억제하기 힘들다.”며, 스님들에게 월드컵 경기 시청을 허용하는 일은 “계율 규정에 대한 도전”이라고까지 한다.

‘보수적’인 노스님들뿐만이 아니다. “TV는 오직 뉴스를 보거나 교육용으로만 활용해야지 오락용 도구가 될 수 없다”며 ‘허용 여부’와 상관없이 세속의 열광적인 분위기를 거부하는 젊은 스님들도 많이 있다는 보도로 보아 세상 사람들이 모두 ‘평정심’을 잃지는 않은 모양이다.

‘승가법(僧伽法)’에 따라 스님들의 일상을 정부에서 철저하게 통제하는 태국에서도 정부 차원에서 캄보디아에서와 같은 조치를 취한 것으로 전해진다. ‘연합뉴스’의 6월 14일자 보도에 따르면, 태국 종교성에서는 “스님들이 사찰 내에서 월드컵 경기를 시청하되, 시끄럽게 소리를 지르거나 경기 결과를 놓고 내기를 거는 행위를 금지하고, 만약 승려들의 부적절한 행위가 적발되면 해당 사찰 주지는 물론이고 교구장 스님에게도 책임을 묻겠다.”고 발표하였다.

이런 전제 조건을 내걸지 않으면 캄보디아나 태국 승단에서도 스님들이 요란스럽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이런 규제 조치가 나왔을 수도 있다.

스님들이 빨간 응원복을 입고 “대~한민국!”을 외쳐대고 심지어 목탁 반주(伴奏)까지 하는 우리나라와 ‘묵언을 조건으로 시청을 허용’한 태국과 캄보디아를 단순 비교하여, ‘어느 쪽이 옳다, 그르다’ 단정할 수 없다. 하지만 온 세상을 휩싸고 있는 ‘열기’를 식혀주는 곳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계율이 아직 살아있구나! 신선하다’는 느낌을 갖게 되니 나로서는 캄보디아와 태국 스님들에게 기대를 갖게 된다.

이병두 | 자유기고가
2006-06-16 오전 10:36:00
 
한마디
어떻게 감히 최상승 간화선의 전통을 잇는 대~한 불교를 기껏 소승불교에 빗대 비교하려들다니 무엄하도다!! 그쪽불교는 아직도 계율이라는 뗏목에 집착하는 거고, 우리 대~한불교는 개울을 건넜으면 뗏목을 버리라는 부처님 말씀에서도 보듯 계율은 오직 방편일 뿐이지 집착의 대상이 아니며 심지어 깨닫고 나서는 계율 따위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자재(?)하라고 하지 않으셨던가?
(2006-06-19 오전 10:09:46)
90
이도 저도 없으면서 젤인줄 아는 착각은 어디서 시작된 걸까???
(2006-06-18 오후 11:24:12)
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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