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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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원이 음미하던 차향기 그대로…
봉선사, '다경향실' 맥 이은 무료다실 열어
경기도 남양주시 운악산 봉선사. 근대 불경(佛經) 한글화를 이끈 운허 스님(1892~1980)과 한국근대문학사의 선구적 작가였던 춘원 이광수(1892~1950)의 차 인연이 서린 이곳에 무료 다실이 문을 열어 차향을 이어가고 있다.

봉선사를 찾은 6월 13일. 사찰 초입에 세워진 ‘춘원 이광수 기념비’가 먼저 객(客)을 맞이한다. 1975년 건립된 이 기념비에는 춘원과 운허 스님의 인연이 새겨져 있다.

봉선사 입구에 세워진 춘원 이광수 기념비. 춘원은 친일변절자로 낙인찍히자 봉선사에서 5년간 머물며 지친 심신을 달랬다.


1917년 장편소설 <무정(無情)>을 발표하며 근대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던 춘원. 1919년 일본 도쿄 유학생의 ‘2ㆍ8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후 임시정부 설립 활동에 참가하는 등 독립운동에 앞장섰지만, 결국 친일로 발길을 돌리고 만다.

해방 후 친일 변절자로 낙인찍히고 문필권에서조차 소외된 그는 지친 심신을 달래준 곳을 찾아 나섰다. 그때 춘원을 받아 준 곳이 바로 봉선사다. 당시 봉선사에는 춘원의 육촌 동생 운허 스님이 있었기 때문이다. 운허 스님은 춘원에게 ‘다경향실(茶經香室)’이라 이름 지은 방을 내어주었고, 춘원은 5년 동안 이곳에 머물며 차와 불교 인연을 맺었다.

춘원이 5년간 머물던 다경향실은 한국전쟁 당시 소실되고 1978년 다경실이란 이름의 건물이 세워졌다. 현재 조실 스님의 거처로 사용된다


춘원이 남긴 다시(茶詩)에는 조용한 산사에서 차 한 잔을 우려 마시며 느꼈을 그의 회환과 고뇌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화로에 불 붙어라 차 그릇도 닦았으라/ 바위샘 길어다가 차 달일 물 끓일 때다/ 산중에 외로이 있으니 차맛인가 하노라.”

한국전쟁 기간 무너진 다경향실은 이후 1978년 애월재(愛月齋)가 있던 자리에 ‘다경실’이란 이름으로 다시 지어졌고, 이후 역대 조실 스님의 거처로 사용되고 있다. 현재 다경실 뜰 앞에 세워진 ‘다경향실’ 지석에서만 느낄 수 있던 운허 스님과 춘원의 차 인연은 봉선사 다실로 옮겨왔다.

춘원의 육촌 동생이었던 운허 스님은 차를 마시며 경전을 읽는다는 뜻의 다경향실이란 이름의 거처를 내어주었다. 봉선사 한켠에 세워진 지석에 다경향실 글씨가 뚜렷하다.


6월 1일 문을 연 다실은 봉선사를 찾는 사람 누구나에게 열린 공간이다. 드넓은 연밭이 내려다보이는 다실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차호에는 햇차가 담겨 있고 다실 곳곳에는 물이 끓고 있다. 다구를 다룰 줄 안다면 직접 차를 우려 마시고 그렇지 않다면 다실을 지키는 사람에게 부탁해도 좋다. 다구를 정리하고 뜨거운 물을 준비해 놓는 사람들은 요일을 정해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봉선사 다도반 회원들이다. 다실에서 제공되는 차 역시 회원들과 다도반 지도법사 혜종 스님의 보시로 마련 된 것.

다도반 지도를 맡고 있는 김미려 다예랑 회장은 “아직 다실 이름도 정해지지 않았고 표지판도 제대로 세워지지 않았지만 벌써부터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말한다. 주말에는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다.

지난 6월 1일 문을 연 봉선사 무료 다실에서는 드넓은 연밭을 바라보며 차를 우려마실 수 있다.


봉선사 교무국장 도암 스님은 “절을 찾는 사람 누구나 편히 몸과 마음을 쉬어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다실을 마련했다”며 “앞으로 다실을 지역주민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활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곳에서 주말 다도 강좌 등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도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봉선사를 찾는 사람이라면 부담 없이 차 한 잔 마실 수 있는 다실을 찾아볼 일이다.

남양주 봉선사/글=여수령 기자 사진=고영배 기자 | snoopy@buddhapia.com
2006-06-15 오전 9: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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