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선사를 찾은 6월 13일. 사찰 초입에 세워진 ‘춘원 이광수 기념비’가 먼저 객(客)을 맞이한다. 1975년 건립된 이 기념비에는 춘원과 운허 스님의 인연이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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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장편소설 <무정(無情)>을 발표하며 근대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던 춘원. 1919년 일본 도쿄 유학생의 ‘2ㆍ8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후 임시정부 설립 활동에 참가하는 등 독립운동에 앞장섰지만, 결국 친일로 발길을 돌리고 만다.
해방 후 친일 변절자로 낙인찍히고 문필권에서조차 소외된 그는 지친 심신을 달래준 곳을 찾아 나섰다. 그때 춘원을 받아 준 곳이 바로 봉선사다. 당시 봉선사에는 춘원의 육촌 동생 운허 스님이 있었기 때문이다. 운허 스님은 춘원에게 ‘다경향실(茶經香室)’이라 이름 지은 방을 내어주었고, 춘원은 5년 동안 이곳에 머물며 차와 불교 인연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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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원이 남긴 다시(茶詩)에는 조용한 산사에서 차 한 잔을 우려 마시며 느꼈을 그의 회환과 고뇌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화로에 불 붙어라 차 그릇도 닦았으라/ 바위샘 길어다가 차 달일 물 끓일 때다/ 산중에 외로이 있으니 차맛인가 하노라.”
한국전쟁 기간 무너진 다경향실은 이후 1978년 애월재(愛月齋)가 있던 자리에 ‘다경실’이란 이름으로 다시 지어졌고, 이후 역대 조실 스님의 거처로 사용되고 있다. 현재 다경실 뜰 앞에 세워진 ‘다경향실’ 지석에서만 느낄 수 있던 운허 스님과 춘원의 차 인연은 봉선사 다실로 옮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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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일 문을 연 다실은 봉선사를 찾는 사람 누구나에게 열린 공간이다. 드넓은 연밭이 내려다보이는 다실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차호에는 햇차가 담겨 있고 다실 곳곳에는 물이 끓고 있다. 다구를 다룰 줄 안다면 직접 차를 우려 마시고 그렇지 않다면 다실을 지키는 사람에게 부탁해도 좋다. 다구를 정리하고 뜨거운 물을 준비해 놓는 사람들은 요일을 정해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봉선사 다도반 회원들이다. 다실에서 제공되는 차 역시 회원들과 다도반 지도법사 혜종 스님의 보시로 마련 된 것.
다도반 지도를 맡고 있는 김미려 다예랑 회장은 “아직 다실 이름도 정해지지 않았고 표지판도 제대로 세워지지 않았지만 벌써부터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말한다. 주말에는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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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선사 교무국장 도암 스님은 “절을 찾는 사람 누구나 편히 몸과 마음을 쉬어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다실을 마련했다”며 “앞으로 다실을 지역주민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활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곳에서 주말 다도 강좌 등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도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봉선사를 찾는 사람이라면 부담 없이 차 한 잔 마실 수 있는 다실을 찾아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