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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같은 사안에 대한 판결이 재판관이 바뀌면 달라지는데 있다. ‘법리적 해석의 차이’가 아니고 재판관의 이념이나 철학에 의해 다수가 납득할 수 없는 쪽으로 뒤집힌다면 법에 대한 불신을 초래하지 않겠는가.
안마사로 생계를 꾸려온 시각장애인이 아파트에서 투신자살 했다, 어떤 이는 온몸에 시너를 끼얹으며 분신을 시도하고, 강물에 투신하고, 고속도로에서, 광화문에서, 복지부청사 앞에서 시위가 있었다. 현재도 마포대교에서 시각장애인들의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5월 25일, 헌법재판소가 시각장애인에게만 안마사가 될 수 있도록 한 현행법이 위헌이라고 판결했기 때문이다. 모든 국민의 직업선택의 자유를 보호한 것이므로 공정한 판결이 아니라고는 할 수 없다. 과연 공정한 판결일까? 헌법재판소 재판들이 7 : 1로 위헌 결정을 내렸으니 맞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이 법은 불과 3년 전에 합헌 결정을 받은 바 있다. 위헌 결정이 제대로 된 것이라면 그때는 공정한 판결이 아니었다는 말이 된다. 위헌 판결이 공정하다고 생각하자니 개운치 않다.
문제가 된 안마사업이 비장애인들에게는 선택가능한 수 만 가지 직업중의 하나일 뿐이지만 시각장애인들에게는 유일하다시피 한 생업이다. 그 최소의 생존수단을 두고 비장애인들과 경쟁하도록 한 것인데, 같은 조건에서 행해지는 시각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경쟁은 그 자체로 공정하지 않다. 2003년 합헌 결정을 내렸던 재판관들은 직업선택의 자유를 무시했을까? 아닐 것이다. 달리 선택할 직업이 없는 시각장애인들의 생존권을 보호하기 위한 아름다운 판결이었다고 생각된다.
안마를 생업으로 하는 시각장애인들은 위헌 판결 이전부터 생존에 위협을 느낀다고 호소했었다. 무허가 안마업소, 무자격 안마사가 합법적 안마업소보다 10배 이상 많아지면서 현실적으로 경쟁력이 없는 시각장애인들은 고사(枯死)직전이라며 불법영업에 대한 강력한 단속을 촉구했다. 이번의 위헌 결정으로 법적 울타리마저 잃어버린 시각장애인들의 생존을 위한 투쟁을 보면서, 대안마련도 없이 불쑥 위헌 결정을 내린 재판관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독점적 안마사업권’이 위헌이라 하더라도 유예기간을 두어 제도적 대안을 마련한 뒤였다면 시각장애인들이 투신자살을 하고 고속도로에서 시위를 벌이다 연행되는 불행한 사태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은 대립되는 두 가치관의 절충이 아니라 두 가치관 모두를 만족시키는 지혜다. 사회적 약자도 법 앞에서 평등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들의 생계와 관련된 사안이라면 법을 초월하는 사회적 미덕을 이끌어 내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시각장애인에게 특혜를 주는 나라는 우리나라만이 아니다. 자동판매기 운영권의 일부를 시각장애인에게 독점적으로 부여하는 캐나다, 연방정부의 건물이나 소유지에 속한 자동판매기카페테리아 등의 운영권을 주는 미국, 복권판매권을 주는 스페인 등 외국의 사례를 검토하여 사회적 약자인 시각장애인들이 자립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일이 위헌 결정보다 우선되었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