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3.22 (음)
> 종합 > 사람들 > 도반의향기
캠퍼스서 만난 ‘특별한 父子’
[도반의향기]태기준 거사와 원영군
# 아버지

전주에 거주하는 태기준(51)거사는 요즘 아들 원영이와 함께 대학생활에 푹 빠져있다. 언제나 그러하듯 대학 캠퍼스는 젊음 정열 낭만으로 넘쳐난다. 학교정문 옆 소나무밭 아래에서 오가는 학생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젊은 친구들이 뿜어내는 에너지에 동화되곤 한다. 벤치에 앉아 지그시 눈을 감으면 ‘이뭐꼬’ 파장이 지구 넘어 우주까지 퍼진다.



태 거사가 30년 만에 또다시 캠퍼스 생활을 하는 것은 아들 덕분이다.

맏아들 원영이는 우석대학교 보건복지 심리학과 06학번 새내기이다. 의학용어로 근이영양증 환자이다. 영양분이 근육으로 전달되지 못해 서서히 몸 팔 다리 등을 움직이지 못하게 된다. 아직 병의 원인은 물론 치료법이 발견되지 않아 병의 진전을 최소화하는데 주력할 뿐이다.

“원영이가 초등학교 입학할 무렵에 발병했습니다. 의사 설명에 하늘이 무너지는 듯 했습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있는지 원망도 많이 했습니다.”

그 후 원영이와 태 거사는 한 몸이 되었다. 등 하교는 물론 한시도 원영이 곁을 떠날 수 없었다. 하루하루가 비극이었다.
고통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네 살 터울인 둘째 아들이 입학할 때가 되자 행동이 이상했다. 형과 같은 병세가 나타났다. 아들 둘이 모두 고약한 병에 걸린 것이었다.

이때 우연히 전북불교대학과 인연이 맺어졌다. 불교 강의를 들을 때마다 엉켜버린 삶의 실타래가 풀리는 듯했다. 새벽마다 불교대학 법당에서 예불과 기도를 했다. 이때 시작한 새벽예불은 장소를 달리해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다.

어느해 여름, 정혜사가 시민선방을 개설했다. 화두를 알고, 꼬이지 않던 다리로 결가부좌를 할 때쯤 되자 팔만사천 번뇌가 그림으로 그려졌다. 문제가 보이면 해결방법도 보이기 마련.
얼굴이 펴졌다. 미소가 끊이지 않고 세상이 긍정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에 종교가 달랐던 아이들 엄마도 스스로 불교대학에 입학했다.



“이것이 불법이구나 하는 환희심이 났습니다. 뭔가를 해야겠다는 강한 의욕도 생겼습니다.”

그것은 포교였다. 인연 있는 이에게 불법을 전하자는 것이었다. 부처님을 만나 지옥 같은 생활에서 벗어났는데 혼자만 만끽한다는 것이 죄스럽기조차 했다.

법사과를 졸업하고 전법사가 됐다. 먼저 군법당을 찾았다. 지금도 매주 일요일이면 군법사가 없는 법당을 찾아 법문도 하고 준비해간 음식으로 법담을 나눈다.

매월 음력 18일 지장재일이면 불교대학 학인들과 함께 군경묘지를 찾는다. 젊은 나이에 나라를 위해 산화한 영가들의 극락왕생을 위해 <금강경>을 독송하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상가(喪家)에서 찾으면 하던 일을 멈추고 영가를 위한 경전을 독송한다.



4년 전, 원영이가 다니는 중학교 옆 상가에 ‘전북불교 거마평 포교원’을 개설했다. 아이들의 원력이었는지 주불로 약사여래 부처님을 모시게 됐다. 청소년들에게 참선을 알리고 싶었다. 초창기엔 원영이 친구들이 와서 참선을 했다. 그러나 세상은 진학공부에 밀려 아이들이 참선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아쉽게도 포교당은 주로 태 거사 수행도량이 되곤 한다.


# 아들

원영이의 학교생활은 여느 학생과 다름없다. 아버지가 학교에 바래다주면 전동휠체어에 의지해 캠퍼스를 종횡무진 한다.

수업이 없을때는 동아리 ‘장애인복지 연합회’가 펼치는 장애학우들의 복지향상을 위해 힘쓰고있다.



원영이가 수업을 받는 동안 아버지는 교실 밖 소나무 밭에서 참선을 한다. 마음을 찾는 큰 학문(大學)을 하기에 아버지도 대학생이라고 자부한다. 항상 당당한 아버지가 좋다.

“아버지가 가르쳐 준 공부가 있어요. 몸을 움직이지 못하니 입으로 항상 ‘관세음보살’을 외우라는 것이에요. 처음엔 별생각이 없었는데 늘상 아버지가 물어요. ‘관세음보살’을 놓지 않았냐고요.”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 계속된 아버지의 점검으로 ‘관세음보살’이 끊이지 않게 되자 친구들의 따돌림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잠잘 때 몸을 움직이지 못해 가위에 눌릴 때가 많은데 관세음보살을 염하면 말을 할 수 있게 된다. 아버지를 부르고, 아버지가 몸을 돌려 눕혀주면서 ‘관세음보살을 염하고 있냐’며 묻는다.



원영이가 하는 관음정근은 특이하다. 마음에 ‘관세음보살’을 큼직하게 써놓고, 마음으로 글씨를 보면서 읽는 것이다. 친구와 말하면서도, 꿈속에서도 보고 읽는다. 믿기지 않겠지만 어느 때는 하루종일 놓치지 않는다.

“아버지가 그러세요. 어디에서 병이 왔는가를 알려고 하면 할수록 구정물이 일어나고, 그 물을 자기가 마시게 된다고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병은 이미 왔거든요. 다만 이 순간이 중요해요. 저는 꿈을 준비하는 대학생이고 이 행복을 만끽할 거예요.”
전주/글=이준엽 기자 사진=고영배 기자 |
2006-06-10 오후 6:04:00
 
한마디
닉네임  
보안문자   보안문자입력   
  (보안문자를 입력하셔야 댓글 입력이 가능합니다.)  
내용입력
  0Byte / 200Byte (한글100자, 영문 200자)  

 
   
   
   
2024. 4.30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원통스님관세음보살보문품16하
 
   
 
오감으로 체험하는 꽃 작품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