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모 종단으로 출가한 A 스님은 승적이 없는 상태에서 미리 사찰을 하나 구입해 종단에 등록시킨 후 승려증을 받았다. 행자생활을 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종단이 주관하는 승려로서의 소양교육도 받지 않았다. A 스님이 정식 승려증을 받는데 걸린 시간은 고작 이틀이었다.
일부 종단의 수계체계와 종도관리 시스템의 허점이 사회적 물의로까지 번지고 있다. 6월 6일 MBC-TV PD수첩을 통해 보도된 경기도 일산 황룡사 혜안 스님의 경우도 행자과정을 거치지 않았으며 소속 종단이 설치한 계단에서 계를 받은 적도 없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본지가 한국불교종단협의회 소속 28개 종단의 수계 체계와 종도관리 상황을 전화 조사한 결과 대다수 종단이 “종단차원의 수계식을 실시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22개 종단이 “정규적인 행자교육원을 갖추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종단차원의 수계식’이 율장과 승가의 기본 개념을 이해시키는 교육도 하지 않은채 계만 받는다는 해석을 가능케 한다.
본지의 전화 조사에서 종단협 가입 종단 가운데 ‘군소종단’으로 지칭되는 20여 종단은 행자교육원이 없었다. 이들 종단으로 출가하는 사람들은 각 사찰에서 은사 스님에게 개별 교육을 받은 후 종단이 2~3일 일정으로 개최하는 연수교육을 통해 계를 받고 스님이 되는 것이다. 심지어 모 종단에서는 수계조차 1:1 로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PD수첩의 보도에 따르면 황룡사 주지 혜안 스님도 행자교육을 거치지 않고 태고종 봉원사의 모 스님에게 계를 받았다.
이 같은 편법 수계는 종도관리 시스템에 상당한 허점이 있음을 드러내는 단서다. 특히 군소종단들은 종단의 중앙기구와 지역 기구들 간 유기적인 관계가 설정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
군소종단 소속의 한 스님은 “종단 행정력이 각 지역의 개별 사찰로 이어지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며 “따지고 보면 분담금만 내면 중앙 기구와 업무적으로 연관되는 일이 거의 없다”고 털어놓았다. 중앙 기구에 명의를 등록하고 승려증을 받은 이후에는 각자의 사찰운영에 대해 중앙기구에서 관여할 일이 없다는 뜻이다.
종단 중앙 기구의 종도관리 시스템 부재는 사찰의 ‘무속화’ 등 비불교적 운영을 방치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불자 이정선 씨(54·서울 성동구 행당동)는 “법당에 부처님을 모셔 놓아 처음에는 사찰인줄 알고 집 근처 암자에 나갔는데 매일 굿을 하고 신도들에게 점을 보라고 요구했다. 나중에 주지가 정식 승려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며 주변에도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본지 조사에서는 대부분의 종단이 ‘호법 기능(감찰기능)’에도 몹시 소홀한 것으로 파악됐다.
종단협 소속 28개 종단 중 호법부의 기능을 가지고 있는 종단은 조계종, 태고종, 천태종, 진각종, 관음종, 총지종, 열반종 등 20곳.
그러나 대다수 종단이 직제상 호법부를 둔 것일 뿐 감찰 기능을 거의 못하고 있다. 실제 10여 종단은 지난해 종단 내 감찰부나 규정부에서 종도들은 조사한 사례가 한 건도 없다고 밝혔다. 일붕선교종의 한 관계자는 “대다수 군소 종단들이 재정과 인력 부족으로 호법부의 기능이 약화된 게 사실”이라며 “설사 문제가 발생해 징계하면 즉시 다른 종단으로 승적을 옮겨 버리기 때문에 사실상 통제나 감시 기능이 어렵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소속 사찰의 수가 종단의 위상과도 관련이 있기 때문에 탈종을 염려해 감찰기능을 포기하는 셈이다.
군소종단들의 정체성 확립과 행자교육 종도관리 시스템 구축 등은 시급히 필요한 문제지만, 쉽게 해결될 문제도 아니라는 게 종단 관계자들의 입장이다. 종단의 규모에 따라 현실적인 여건이 뒷받침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불교학자들도 “정체성이 각기 다른 종단들이 연합 구도를 통해 해결할 수도 없어 뚜렷한 대안을 찾기 쉽지 않다”고 진단하고 있다.
그러나 본지 조사에서 모든 종단이 수계체계와 종도관리 시스템 구축에 대한 종단적 논의는 시급한 과제라는데 인식을 같이 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군소종단 소속 스님들의 탁발 무속행위 등 ‘비행’을 규제할 방안을 종단협 차원에서 모색해야 한다는 의견도 한결 같았다.
태고종 사회부장 법현 스님은 “2년 전에도 비행승려를 단속하기 위해 종단협 차원에서 연합감찰제를 만들자고 결의한 적도 있으며, 올 초 정기이사회에서도 이와 같은 내용에 공조하는 종단의 스님들이 많다”며 “종단협이 협의체 기구이기 때문에 규제나 감시에 어려움은 있지만 각 종단들이 힘을 모아 유기적인 정보 교류를 한다면 각 종단 종도들의 효율적인 관리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