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청이 5월 25일 발표한 2005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전체인구의 10%를 넘었다. 우리나라도 이미 고령화 사회에 접어든 것이다. 이와 같은 변화에 직면해 정부는 국가와 사회가 중증질환을 겪는 노인을 수발하겠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노인수발보험제도를 2008년 7월부터 시행하겠다고 발표했으며 사회, 종교단체들 역시 노인을 위한 대책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노인수발보험제도 실시를 앞두고 불교계는 시설건립, 재원마련, 전문인력 양성 등에서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 노인수발, 사회에서 책임진다
6월 7일, 정부는 ‘제1차 저출산ㆍ고령사회 기본계획’ 시안을 발표하는 등 본격적으로 저출산ㆍ고령화 대책 마련에 나섰다. 이 기본계획의 뚜껑을 열어보면 고령사회를 대비한 중심방안에 노인수발보험제도가 자리 잡고 있다. 노인수발보험제도에 대해 복지전문가들은 벌써부터 ‘노인복지에 지각변동을 일으킬 법안’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노인수발보험제도는 올해 2월 16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돼 국회에 제출된 법안으로, 수발보험에 가입한 65세 이상 노인 또는 64세 이하의 치매ㆍ뇌혈관성 질환 등의 중증 질환을 앓고 있는 노인을 대상으로 한다. 이들이 가정수발, 목욕수발, 간호수발 및 주ㆍ야간 보호수발, 단기보호수발 등을 저렴한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정부와 사회가 공동 부담함으로써 그동안 노인수발을 가정의 영역에서 해결해야 했던 가족들의 어깨도 한결 가벼워 질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타종교계는 벌써부터 이러한 노인수발보험제도를 의식해 노인요양시설 건립, 수발전문가 양성, 호스피스 교육 등을 체계적으로 준비하고 있다.
반면, 불교계는 그간 노인을 위한 별도의 포교·복지에 노력을 기울여 오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 결과 전통적으로 고령자 신도가 많다고 하지만 불교는 몇 년 째 신도 수에서 제자리걸음을 하는 등 ‘노심잡기’에 실패한 것으로 드러났다. 인구주택총조사 종교분야 분석결과, 10년간 60대 이상의 종교별 인구 증가율 추이에서 불교계는 50.6% 성장에 그친 반면 개신교는 57.3%, 가톨릭은 162.3% 증가한 것이 그 증거다. 조계종 사회복지재단 최종환 부장은 “가톨릭이 가파른 상승세를 나타낸 것은 복지를 통한 선교에 성공했기 때문”이라며 “앞으로는 노인수발보험제도 대상자를 위한 각 종교계의 참여에 따라 종교 파워도 달라질 것”이라고 단언했다.
# 불교계 시설 늘어나는 추세
현재 조계종을 비롯한 태고종, 천태종, 진각종 등 주요종단 노인요양시설 보유현황은 신도 수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그나마 현재 노인요양시설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곳은 조계종으로, 조계종사회복지재단 산하 신안노인전문요양원 1곳과 조계종 소속 사찰ㆍ신도가 운영하는 노인요양시설 17여 곳을 보유하고 있다.
진각종은 진각사회복지재단 산하 서울시립중랑노인전문요양원, 서울시립노인요양원, 대구보은노인요양원, 인천덕화노인요양원 등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각 종단은 정부의 시책을 타고 노인요양시설 수를 앞 다투어 늘려가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가 2008년부터 실행할 노인수발보험제도를 앞두고 노인요양시설 확충을 위해 종교시설에 노인요양시설을 건립할 경우 소규모 시설 설립 시 국고보조와 시, 군비를 합쳐 많게는 10억 이상, 그룹홈 설립 시 2억여 원을 지원해주겠다고 밝히자 이에 탄력 받은 불교계가 노인요양시설 건립에 앞장서고 있는 것이다.
가장 눈에 띄는 종단은 조계종이다. 조계종은 지난 2003년부터 국고보조금 지원을 확정 받아 교구본사별로 요양시설 건립을 추진해왔다.
조계종 제3교구본사 신흥사가 지난 2005년 춘천반야실비노인요양원을 교구본사 최초로 건립했으며 제16교구 고운사가 올해 안에 건물완공을 목표로 실비노인요양시설을 짓고 있다. 또 불국사와 월정사, 은해사도 기초설계를 마무리하고 건축업체를 입찰하고 있는 등 약 10여 개의 교구본사가 노인요양시설 건립계획을 세우고 있다.
조계종은 노인복지시설 건립계획이 일정부분 성과를 거두면 시설을 탄력적으로 활용해 종단 승려노후복지 실현에도 일조할 것으로 기대하는 등 벌써부터 기대감을 드러내고 있다.
조계종의 뒤를 바짝 쫓고 있는 곳은 천태종이다. 천태종 역시 올해 말까지 노인요양시설 건립이 가능한 부지를 선정해 각 지역사찰이 지원토록 해 노인요양시설을 늘려나갈 계획을 세우고 있다.
진각종은 올해 서울시립중랑노인전문요양원을 개원한데 이어 8월과 10월 각각 대구서구노인전문요양원과 포항위덕노인요양원을 개원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대규모 노인요양시설에 이어 소규모 복지시설 건립도 활발하다. 사회복지법인 불국토는 노인그룹홈 1개와 노인다기능시설 2개소에 대한 국고보조금 지원을 확정 받았다. 또 사회복지법인 ‘늘기쁜마음’도 부산지역 다기능시설 1개소 지원을 확정 받은 상태다. 사회복지법인 인덕원은 올해 12월 준공을 목표로 7월부터 노인 그룹홈을 착공하고 정부로부터 6억을 지원받아 지역밀착형 요양시설을 건립할 계획이다.
# “모범사례 공유했으면”
그렇다면 과연 이와 같이 추진되고 있는 노인요양시설 건립계획에 문제는 없는가?
불교계의 갑작스러운 활발한 건립에 대한 우려의 시선도 적지 않다.
일단 조계종이 추진하고 있는 교구본사별 노인요양시설 설립과 관련해서 살펴보면, 이들 추진 사찰 중 이미 2003년부터 국가보조금 지원확정을 받았음에도 아직까지 기공조차 못하는 등 잡음이 들리고 있다. 시군 지자체가 포기해 건립계획 자체가 무산되거나 다른 사찰로 이양된 경우도 있다. 노인요양시설 건립에 필요한 국가보조금을 국비 50%, 도비 25%, 시군비 25%로 나누는 현행 복지정책에 시군 지자체가 부담을 느끼고 건립을 포기한 곳들이 있기
때문이다.
현재 추진되고 있는 교구본사별 노인요양시설 건립이 매끄럽게 추진되기 위해서는 각 교구본사별 재정확보 방안이 절실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시급한 것은 이들 교구본사별로 추진 중인 노인요양시설 사업을 하나로 묶어 추진할 수 있는 전담기구를 마련하는 일이다.
조계종사회복지재단의 경우 각 교구본사, 특히 법인시설을 보유하는 교구본사의 운영관리감독 권한이 없기 때문에 현장에서 차질을 빚어도 이를 도울 길이 없다. 현재 무료노인요양시설을 건립 중인 A사의 경우 “각 교구본사들이 요양시설 건립 시 참고할 수 있도록 모범사례 등을 공유했으면 한다”며 현장의 애로점을 털어놓기도 했다.
# 이용자가 시설 선택…경쟁 불가피
조계종 불교사회복지연구소 임해영 연구원은 “정작 불교계 내부를 들여다보면 노인수발보험제도에 대한 관심에 비해 정부의 제도화 방향이나 방침을 적극 모니터링하고 취합해 정보를 제공하는 작업은 미진하다”고 지적했다.
앞으로 노인수발보험제도가 운영되면, 국가가 요양시설 입소를 결정하던 과거와 달리 이용자가 이용시설을 선택할 수 있게 됨에 따라 노인요양시설간의 경쟁이 불가피해지기 때문이다.
비도심 지역에 위치한 노인요양시설의 경우 입소 정원이 미달된 곳이 상당히 많으며 운영상 어려움에 직면한 시설들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 불교계 노인요양시설 역시,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지역 노인요양시설들과 경쟁을 벌이다 운영상의 어려움에 처할 우려가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노인복지와 관계된 정부정책을 긴밀히 수집하고 불교복지의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기구가 마련돼야 한다. 노인복지사업에 관심 있는 사찰, 기관에 주의를 환기하고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는 통합관리시스템 구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사회복지법인 인덕원 이사장 성운 스님은 “노인요양시설이 원활히 운영되기 위해서는 노인인구가 많은 거점지역을 종단에서 파악하고 지역별로 적절한 안배를 하는 등의 종단적 지원과 각 지역사찰의 해당 지역별 대응책이 요구된다”고 피력했다.
# 양질의 서비스 제공이 관건
노인수발보험제도가 시행되면, 이에 따른 노인수발서비스 전문종사자 등도 절대적으로 필요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이에 대한 불교계의 준비는 상대적으로 미흡해, 인적 재원 마련이 시급하다. 또 종단 내에서 현재 활동 중인 불교계 간병자원봉사 교육프로그램에 대한 질적, 양적인 재고도 필요하다.
현재 조계종은 동국대 불교대학원이 호스피스 교육을, 사단법인 천수천안이 자원봉사자를 대상으로 치매도우미 양성교육을 진행하고 있지만 타종교에 비해 호스피스 인력이 부족한 상태다.
또 천태종의 경우, 자체적으로 호스피스 전문봉사단 육성을 위해 매년 4차례 니르바나 자원봉사단 교육을 실시해 1400여 명의 기본교육 수료자를 배출해냈으나 노인수발보험제도와 관련한 준비는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최근 진각복지재단이 노인수발보험제도 준비를 위해 법인직영의 진각간병인양성센터 설치를 준비하고 있는 것은 좋은 모범이 될 수 있다.
진각복지재단은 시설 종사자의 서비스 질을 높이기 위해 자체 교육시스템을 개발, 장기적으로는 산하 노인요양시설 종사자 전부를 파견업체 용역인이 아닌 재단 소속 간병인으로 대체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일정 시간만 수료하면 자격증을 받을 수 있는 민간단체와 차별을 꾀하기 위해, 현장실습을 중심으로 60시간 이상 수료해야 자격증을 발급받을 수 있도록 커리큘럼을 구성해 빠르면 내달부터 교육에 들어간다.
단순한 수발사 양성에 그치는 것보다 수발계획을 작성하고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등과 서비스 조정 역할을 할 수 있는 전문 캐어매니저(Care Manager) 양성기관을 설립하는 것도 중요하다.
동국대 사회복지학과 김용택 교수는 “불교계 민간단체나 기관이 중증 치매, 중풍환자를 위한 전문적 수발교육을 통해 전문인력을 배출할 수 있는 기관을 만들고 불교케어 자격증을 신설하는 등의 인재양성 대응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