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3.21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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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산 '불기둥' 잠재워라
[시방세계]해인사, 단오날 소금단지 묻는 까닭은?
5월 31일, 음력 5월 5일 단오날이다. 단오날 법보종찰 해인사(주지 현응)는 이른 새벽부터 분주하다.

매년 단오날 해인사 강원스님들은 축구대회를 통해 화합을 도모하고, 신도들은 가야산 중봉 마애불에서 사시 공양을 올린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전통의례중 하나는 해인사 남쪽에 솟아 있는 매화산(埋火山) 정상 남산제일봉에 소금단지를 묻는 일이다.

해인사 남쪽 매화산 정상 남산제일봉에 소금단지를 묻기 전 의식을 하고 있다. 해인사 선방스님 약사암 선방스님 등 5개 산내사암 100여명의 스님이 모여 5방에 소금단지를 묻었다.


해인사의 성보를 화재와 각종 천재지변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선원스님을 중심으로 이어져 온 이 행사는 산내암자의 스님들까지 모두 동참하는 연중행사다.

새벽 6시 30분, 행사는 대적광전 앞에서부터 시작됐다. 매화산 정상에 소금단지를 묻기 전에 먼저 경내에 소금을 묻는 의식을 진행한다. 사중 소임자 스님과 종무소 직원들은 모두 나와 부처님 전에 삼귀의를 올리고 반야심경을 봉독한 후 대적광전 앞 축대에 만들어진 지름 10cm정도의 구멍에 소금을 넣었다.

해인사 대적광전 앞에 소금을 묻고 물을 붓고 있다.


총무국장 혜근 스님이 먼저 소금 한바가지를 넣고, 기획국장 만우 스님과 교무국장 포교국장 스님이 차례로 소금을 넣었다. 삼보를 외호하겠다는 다짐과 함께 화재를 비롯한 천재지변으로부터 해인사의 성보가 보호되길 발원하는 의미를 담은 스님들의 손길이 엄숙하다. 소금이 구멍에 가득차자 물을 부었다. 소금이 바로 녹기 시작해 소금물이 됐다.

“소금물은 바로 바닷물을 의미하지요. 바닷물로 해인사 화재를 막으려는 선조들의 염원과 지혜가 담겨있습니다.” 혜근 스님은 소금을 넣고 물을 붓는 이유를 설명했다. 스님은 “소금단지를 묻는 의식 때문인지는 몰라도 의식이 행해진 이후 화재가 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소금 구멍은 해인사 경내 대적광전 앞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종무소 앞에 위치한 우화당 쪽에는 절구통 구멍만큼이나 큰 구덩이를 가진 돌덩이가 있다. 이것도 소금 구멍이다. 스님들은 이곳에도 돌아가면서 소금을 가득 채우고 물을 부었다.

소금단지를 묻고 지신밟기하듯 땅을 밟는 약수암 입승 지현 스님.


해인사에는 이런 소금구멍을 가진 큰 돌덩이가 산내암자 곳곳에 산재해 있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땅에 묻히는 등 많이 사라지기도 했지만 여전히 경내 곳곳에는 소금구멍을 가진 많은 돌덩이를 볼 수 있다.

스님과 종무직원들이 경내 곳곳의 소금구멍에 소금을 묻는 동안 선원스님들은 매화산에 오를 차비를 한다. 매화산 정상에 소금단지를 묻는 것은 선원스님들의 몫이다. 오전 8시 선원장 선각 스님을 비롯한 선원스님들이 가야산을 마주한 매화산 입구에 들어섰다. 약수암 원당암 등 산내암자 스님들도 동참해 100여명이 넘는 스님들이 매화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매화산을 묻을 ‘매(埋)’ 불 ‘화(火)’자 매화산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불의 산이라 불기운을 잠재우러 가는 것이지요. 또, 많은 수행자가 양(陽)의 기운이 충만할 때 산을 오르면서 땅을 밟아 불기운을 누른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우리 수행자에게는 가만히 앉아 좌선만 하다가 올라가니 체력단련도 되고 좋습니다.”

매화산 정상에 소금단지를 묻는 해인사 선원장 선각 스님.


선원장 선각 스님의 설명이다. 스님은 “이렇게 모든 대중 스님들이 매화산에 올라 성보의 평안과 안전을 발원하는 것은 수행에도 중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남산 제일봉의 고도는 해발 1,010m. ‘불기운을 묻는다’는 의미 말고도 기암괴석들이 마치 매화꽃이 만개한 것 같다 하여 매화산(梅花山)으로 불리고, 천 개의 불상이 능선을 뒤덮고 있는 모습과 같다하여 천불산(千佛山)이라고도 불린다. 스님들의 산행은 1시간 남짓 이어졌다. 물이 흐르듯 구름이 흐르듯 매화산을 거슬러 올라가는 스님들의 발걸음이 거침없다. 하늘이 가까워오자 스님들은 주위를 살피며 자연과 교감을 나누기도 하고 헉헉거리며 오르는 재가자에게 쑥떡과 앵두를 나눠 주기도 한다. 단오절에 먹는 절기음식들이다.

오전 9시, 하늘과 맞닿은 남산제일봉에 올라 선 스님들은 가야산을 향해 합장하고, 삼귀의를 올리며 온 마음으로 발원했다. 사중이 무사하고, 평안하며, 성보가 화재나 천재지변으로 훼손되는 일이 없기를 염원했다.

해인사 일주문을 30m쯤 지나면 왼쪽에 위치한 소금구멍바위.


선원장 선각 스님, 한주 동각 스님, 약수암 입승 지현 스님 등이 소금이 가득 채워진 직경 약 15cm정도 되는 소금단지에 물을 붓고 뚜껑을 덮은 뒤 중앙과 동서남북 5개 방향에 정성스럽게 묻고 땅을 꼭꼭 밟았다. 그리고 소금 한 줌씩을 한지로 싼 꾸러미도 5개 방향의 바위사이에 끼워 놓았다. 이것으로 의식은 모두 끝났다.

이날 해인사가 경내 곳곳과 남산 제일봉에 묻은 소금은 양은 총 30kg. 3포대 양의 이 소금은 스님들의 정진력과 성보를 외호하려는 원력을 머금고 매화산의 불기운을 잠재우며 푸르게 출렁거릴 것이다.



■언제부터 소금을 묻었을까?
<가야산 해인사지>에는 ‘1695년부터 1871년 사이 무려 7차례나 불이 났다’는 기록이 있다. 해인사 율원장 무관 스님은 “이때 장경판전까지 모두 잃을 뻔했기 때문에 대책을 강구하던 중 해인사 대적광전을 마주보고 있는 매화산 남산제일봉의 불타오르는 산세 때문에 화기가 절로 날아들어 화재가 잦다는 풍수설에 따라 대적광전의 방향을 바꾸고, 매화산 남산제일봉에 소금단지를 묻게 됐다”고 설명했다.

또, “단오인 음력 5월 5일에 의식을 거행하는 것은 홀수가 겹쳐 양기가 왕성하고 첫여름이 시작되는 절기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스님은 “순조 18년 1818년에 경상도 관찰사며 추사 김정희의 부친인 김노경에 의해 해인사가 오늘과 같은 가람배치를 갖게 됐다”며, “1970년 대적광전 수리 때 발견된 가야산 해인사 중건 상량문을 통해 이 사실이 밝혀졌다”고 덧붙였다. 상량문은 31세의 추사 김정희가 쓴 것으로 국보급 문화재적 가치를 지니는 것으로 현재 해인사 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소금단지를 묻는 까닭은 소금이 바닷물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소금은 바닷물의 성질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물질이기 때문에 바닷물로 불을 끈다는 의미다.


합천 해인사/글=배지선 기자 사진=고영배 기자 |
2006-06-03 오후 10: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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