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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1일 천태종 총본산 단양 구인사 관성당. 천태종이 주최하고 나누며 하나되기 운동본부가 주관한 ‘제1회 새터민 템플스테이’에서 새터민 대표 김영광씨(27ㆍ가명)가 입재식에서 발원문을 낭독했다.
주최측 대표로 나선 사회부장 무원 스님도 법문을 통해 “새터민 여러분들이 남한 사회에 안정적으로 정착하기까지는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갈등과 같은 어려움들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을 것”이라며 “이를 극복해 나가는 의지와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올바른 종교적 신념과 정성스런 기도가 큰 힘이 될 것”이라고 행사 개최 취지를 설명했다.
이번 행사 참가자들은 주로 중국과 몽고 등을 거쳐 탈북한 남자 새터민 25명. 이들은 현재 통일부 산하 탈북자 정착지원기관인 하나원에서 3개월 동안 교육을 받고 있던중 천태종의 요청으로 이번 행사에 참석하게 됐다. 참가자 대부분은 중국에 피신하고 있을 때 목사님들의 도움을 많이 받아서인지 개신교 신자가 대부분이었다.
입재식이 끝난 뒤 새터민들은 구인사 경내 법당을 무원 스님의 안내로 둘러보고, 소백산 기슭에 있는 천태종 중창조인 상월원각 대조사의 묘(적멸궁)를 참배했다. 이어 하산길에는 그네뛰기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저녁 공양전의 일정이 그동안 쌓인 피로를 풀고 사찰의 경내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는 오리엔테이션이었다면 저녁 공양 후에는 예불의식, 관음정근, 다도체험 등 본격적인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저녁 예불에 앞서 지도 스님의 합장과 절 시범을 지켜보는 새터민들의 눈빛이 자못 진지해 보였다. 처음 찾은 사찰에서의 행동양식들이 신기한 모양이다.
저녁 예불을 알리는 종소리가 은은하게 경내에 울려 퍼지자 모두 대웅전에 모였다. 부처님 앞에 선 스님들을 따라 새터민들은 절을 올렸다. 예불 순서와 독경 등 모든 것이 낯설어 얼굴에는 긴장된 표정이 역력했지만 집전하는 스님의 일거수일투족을 옆에서 가끔씩 힐끔 쳐다보며 ‘오분향예불문’과 ‘반야바라밀타심경’을 모두 열심히 따라했다.
이어 관음정근이 진행됐다. 이를 따라해 본 새터민 김지태(54 ㆍ 가명)씨는 “스님은 아무 생각말고 정근 하며 마음속의 망상을 떨쳐버리라고 합디다. 그런데 그럴수록 자꾸 더 다른 생각들이 생겨나고 마음이 어지러워져 결국 실패 했죠. 하지만 마음이 차분해져 좋습네다.”
고향이 함경북도 회령이라는 김성근(35ㆍ가명)씨는 “북한에 있을 때는 평양에만 사찰이 있는 걸로 교육받아 사찰 근처에는 한번도 가볼 엄두를 못냈었다”며 “숲이 푸르른 산속의 사찰에 오니 그동안 힘들었던 마음이 싹 달아나는 것 같다”고 즐거워했다.
참가자들은 처음 방문한 사찰과 불교의 수행법이 낯설고 어려웠지만 기분은 좋다고 이구동성으로 답했다.
이날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관문사 다도회 어머니 회원들이 시범을 보인 다도문화체험. 찻상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 앉은 다도회원들과 새터민들은 차를 마시면서 다담을 나눴다.
네번이나 탈북하다 잡혀 갖은 고초를 당한끝에 간신히 지난해에 성공했다는 현동일씨(27ㆍ가명)는 “중국에서 숨어지낼 때 중국차는 많이 마셔봤지만 남한차는 처음”이라며 “차 마시는 것도 하나의 도이며 예법인지 몰랐으며 다소 불편하지만 분위기가 엄숙하고 고요해 차를 마시면서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꼈다”고 신기해 했다.
고향이 함경북도 회령이라는 김성근(35ㆍ가명)씨는 “북한에 있을 때는 평양에만 사찰이 있는 걸로 교육받아 사찰 근처에는 한번도 가볼 엄두를 못냈었다”며 “숲이 푸르른 산속의 사찰에 오니 그동안 힘들었던 마음이 싹 달아나는 것 같다”고 즐거워했다.
이튿날 아침 예불을 끝마친 참가단들은 오전 8시 회향식을 마치고 온달동굴 등 인근 관광지 견학을 위해 구인사를 떠났다.
무원 스님은 회향식에서 “남한에 살면서 삶이 힘들고 고달플 때 언제든지 절에 찾아 오세요. 절에 무언가를 배우러 온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편안한 분위기에서 마음을 온전히 비우고 그 안에 미소만 듬뿍 담아가시면 됩니다.”고 말했다. 절말 그랬다. 다시 속세로 되돌아가는 새터민의 굵은 주름살 패인 얼굴들에도, 부처님의 미소와 같은 온화한 웃음이 퍼지고 있었다. 그들의 뒷모습에는 오직 자유와 희망에 가득찬 자신감만이 흐를 뿐 사선을 넘어온 고단한 삶의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