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합병 이후인 1913년 데라우치 조선총독에 의해 동경대로 강제 반출됐던 조선왕조실록 사고본 47책이 6주후 서울대 규장각으로 반환된다.
그러나 동경대 측으로부터 실록을 돌려받는 방식을 놓고 불교계와 서울대가 대립ㆍ갈등의 양상을 보이고 있어 귀추기 주목된다.
동경대가 “실록을 서울대로 기증하겠다”는 입장을 취하게 된 것은 올 3월 불교계를 중심으로 창단된 조선왕조실록환수추진위원회(이하 환수위, 공동대표 정념ㆍ철안)의 노력이 크게 작용했다. 환수위는 그동안 실록에 대하 자료조사 및 실록의 유출 경위를 비롯해 실록환수를 위한 주일대사관측에 대한 입장표명과 동경대와 3차에 걸친 반환 협상 등의 활동을 벌여왔다.
특히 동경대가 실록을 반환하기로 한 결정적 이유는 환수위측의 ‘일본의 조선왕조실록 불법유출에 대한 법적 소송’에 대한 강한 압력 때문.
고민을 거듭하던 동경대측은 올해 규장각 창립 230주년과 개교 60주년을 맞은 서울대와의 학술교류 형식을 빌어 실록을 서울대 규장각으로 ‘기증’하기로 결정함으로써 강제 반출됐던 실록이 93년만에 국내에 되돌아오게 됐다.
이에 대해 환수위는 성명서를 통해 “우리 민족의 빛나는 문화유산인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이 동경대로부터 우리 민족의 품으로 돌아오게 된 것은 진심으로 환영할 만 한 일”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환수위는 “빼앗긴 우리 문화재를 빼앗아간 자들에게 기증받는 것은 웃지 못 할 해프닝이다”며 “서울대는 동경대의 제안을 역사의식 없이 전격 수용함으로써 국민적 지지와 연대를 통해 얻을 수 있었던 ‘승리의 영광’을 퇴색시켰다”며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환수위 간사 혜문 스님도 “오대산 사고본은 원래 월정사가 관리를 맡았으며 문화재는 제 자리에 있을 때 그 가치가 있는 만큼 실록은 서울대가 아닌 월정사로 돌아와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서울대 측은 실록이 국내로 반환되면 당연히 서울대 규장각에서 보관함을 원칙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처럼 서울대 측이 원래 실록이 보관돼 있었던 월정사 사고로의 귀속을 거부하고 있는 이유는 대한제국 말 실록이 오대산 사고에 보관돼 있었지만 1908년 순종의 칙령에 의해 이에 대한 관리권이 모두 규장각에 귀속됐다는 근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문화재청 관계자는 “6주후 실록이 국내로 돌아오면 법적 절차를 거쳐 문화재로 지정될 예정이며 실록의 관리 주체는 문화재위원회 등 전문가들의 검토를 거쳐 결정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