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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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가 본 내금강…"부처님 숨결 생생"
묘길상, 표훈사, 장안사터 등 불교문화유적 풍부
내금강 지역에는 어떤 불교유적지가 있을까. 외금강이 남성적인 산악적 풍미를 자랑한다면 내금강은 유명 사찰과 불교문화유적을 포함한 수려한 계곡으로 알려져 있다.

올 가을 내금강 관광코스 개발을 목적으로 현대아산측이 마련한 5월 27일 답사는 표훈사에서 묘길상까지 약4km 구간에 걸쳐 이뤄졌다.

다른 체제, 다른 이념이 지배하는 공간이었지만, 부처님의 숨결은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 숨쉬고 있어 답사팀을 기쁘게 했다.


△묘길상(妙吉祥)

묘길상


강원도 금강군 내강리 만폭동에 있는 고려시대의 마애불. 북한 국보 제46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마하연묘길상이라고도 한다. 고려 말기에 묘길상암을 중창한 나옹(懶翁)이 직접 새겼다는 좌불상으로 묘길상은 문수보살(文殊菩薩)의 다른 이름이다. 불상 높이는 15m, 너비는 9.4m이며 얼굴 높이는 3.1m, 너비는 2.6m이다.

안정감 있는 연화좌(蓮華座) 위에 결가부좌한 모습으로 앉아 있으며 오른손은 위로 쳐들어 시무외인(施無畏印), 왼손은 아래로 내려 여원인(與願印)을 취하였다. 부처의 손가락 하나가 보통사람의 몸체보다 굵으며 두 다리의 높이는 사람의 키를 훨씬 넘는다. 웃는 얼굴, 긴 눈썹, 가늘게 째진 실눈, 이마의 백호(白毫)와 길게 늘어진 큰 귀, 통통한 볼, 앞가슴을 드러내고 두 어깨에 걸친 옷의 주름 등 조각의 기법상 고려시대 아미타여래 조각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을 지녔다. 벼랑에 새긴 다른 부처들보다 크기가 훨씬 크지만 앉은 모습의 높이와 넓이 비례를 잘 맞추었다.

얼굴은 섬세하고 부드러운 반면에 아래의 옷 부분은 굵고 굳세며 야외광선을 이용하여 시각적 효과를 잘 나타냈다. 높이 40m의 벼랑에 새겨졌으며 마애불 옆 바위에는 윤사국(尹師國)이 쓴 ''묘길상''이라는 음각(陰刻) 글씨가 새겨져 있다. 또 마애불 앞에는 북한 국보 제47호인 높이 3.66m의 묘길상암석등이 있고 뒤쪽 평지에 묘길상암터가 남아 있다.


△보덕암

보덕암


강원도 금강군 내강리(內剛里) 내금강 만폭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암자. 고구려 때에 보덕화상이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며 현재의 건물은 1675년 재건한 것이다. 만폭동 분설담의 오른쪽 절벽에 매달리듯 서있는데 그 모습이 참으로 기묘하여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원래 2채의 건물이었는데 하나는 너비 1.6m, 높이 2m, 깊이 5.3m의 자연굴인 보덕굴 앞을 막아 절벽에 지은 본전이고 다른 하나는 굴 위에 지었던 판도방이다.

본전은 20m가 넘는 절벽 중간에 7.3m의 구리기둥 하나로 받쳐 세운 것으로 지붕을 3겹으로 이었으며 정면 1칸(3.35m), 측면 1칸(0.86m)의 단칸집이다. 1511년에 설치한 구리기둥은 나무기둥에 19마디의 동판을 감은 것이다. 이 암자 위의 평탄한 곳에는 정면 3칸(6.49m), 측면 1칸(3.47m)의 판도방과 돌탑이 있었으나 지금은 보덕굴로 내려가는 층대가 남아 있을 뿐이다.

보덕굴이란 이름은 옛날 이곳에서 마음씨 착한 보덕각시가 홀아버지를 모시고 살았다고 하여 붙여진 것이다. 보덕굴 절벽 아래 만폭동 계곡의 바위에는 보덕각시가 머리를 감았다는 세두분이라는 지름 40㎝, 깊이 40㎝의 동그란 샘구멍이 있고 이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보덕각시가 세수를 하고 수건을 걸었다는 수건바위가 있다.


△표훈사

표훈사


강원도 금강군 내강리 내금강 만폭동 어귀에 있는 조선시대 사찰. 670년에 처음 세워 신림사라 부르다 1778년 완전히 새로 지었다. 표훈사는 원래 20여채의 건물로 이뤄져 있었으나, 그 화려한 시절은 가 버리고 지금은 반야보전 영상전 명부전 등 일부만 남아있다.

표훈사는 신라 문무왕 10년(670) 표훈선사가 창건했다고 하지만, 실은 신라 진평왕 20년(598) 관륵과 융운 등이 창건하였다. 원래 20여 채의 건물로 이루어졌던 표훈사는 한국전쟁 때 상당 부분 소실되었고 현재 북한측에 의해 반야보전과 영산전이 복원되어 있다.

그밖에 명부전, 칠성각, 어실각, 능파루, 판도방 등이 있다.
표훈사를 들어가기 직전에 있는 다리는 주변의 기암들이 개울물에 비쳐 아름답기로 유명한 함영교(含影橋 : 그림자를 머금고 있는 다리)가 있기도 하다. 표훈사는 내금강에서도 깊숙한 곳에 위치한 관계로 금강산 4대 사찰 중 유일하게 전쟁의 화를 피하여 살아남은 유일한 사찰이다.


△장안사 터

장안사 터


강원도 회양군 내금강면(內金剛面) 금강산 장경봉(長慶峰) 아래에 있는 사찰로 신라 법흥왕 때, 또는 551년(양원왕 12) 고구려의 승려 혜량(惠亮)이 신라에 귀화하면서 창건하였다고 한다. 773년(혜공왕 9) 율사 진표(眞表)가 중수하였고, 970년(광종 21) 불탄 뒤 폐허상태이다가 982년(성종 2) 회정(懷正)이 중건하였다. 1343년(충혜왕 복위 4) 원나라 순제(順帝)의 왕후인 고구려인 기씨(奇氏)가 돈과 공인(工人)들을 보내와 퇴락한 당우를 중건하고 새 누각을 짓게 하였다.

1458년(세조 4) 세조가 거둥하여 대웅전을 중수하도록 명하고 토지를 하사하였는데, 1477년(성종 8) 소실되어 일청(一淸)이 중건하였다. 1537년(중종 32) 다시 불타 1545년(인종 1) 일청이 또 중건하고, 1728년(영조 40)과 1791년(정조 15) 중창·중건된 뒤 1842년 부원군(府院君) 조만영(趙萬永)의 보시로 300여 칸의 대찰로 증축되었는데, 1863년 호조판서 김병기(金炳冀)가 주상하여 공명첩(空名帖) 500장을 내리게 하고, 자신이 1,200냥을 보시하여 중수하였다.

6·25전쟁 직전까지도 6전(殿)·7각(閣)·2루(樓)·2문(門) 외에 10여 채의 부속건물이 있었는데, 전화로 소실되고 축대·비석 등만 남았다.


△삼불암

삼불암


북한 보물급 41호로 높이 8m, 길이 9m인 마애불. 강원도 금강군 내강리 봉래동에 소재하고 있다. 삼각형의 바위 앞면에 각각 높이 3.7m, 가슴 너비 1.3m의 부처 셋을 새겼다. 또 세 부처를 새긴 바위 뒷면에는 앞면과 같은 넓이에 60 개의 작은 부처를 새겼다. (사진 왼쪽부터 아미타불, 석가모니불, 미륵불)

글=노병철 기자, 사진=조계종총무원 | sasiman@buddhapia.com |
2006-05-30 오후 5: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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쪼아쪼아쪼아
(2006-05-30 오후 10:2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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