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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수는 한 걸로 하지요”라며 하 회장이 먼저 말을 건내자 박 후보는 “장애인들이 정치에 많이 참여해야 권익 보호가 되지 않겠습니까?” 라며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자 하 회장은 “장애인들을 위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도와드리겠습니다”라며 연신 웃음을 짓는다.
하반신 마비로 전동휠체어가 없으면 전혀 움직일 수 없는 하 회장과 중증 장애인인 박 후보의 만남. 비록 스스로의 힘으로 악수조차 할 수 없었지만 두 사람은 말 보다는 웃음으로 서로의 마음을 헤아리고 있었다.
1949년 경북 달성의 농촌 마을에서 3남 1녀의 장남으로 태어난 하 회장. 3살 때 소아마비로 장애가 되었지만 열심히 노력하면 비록 신체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못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움직일 수 없어 초등학교 문턱조차 밟지 못했지만 친구의 도움으로 한글을 깨쳤고 17살이 되던 해에 가족들에게 짐이 되기 싫어 동네 친구와 함께 독립을 하기 위해 무작정 전라도 목포로 갔다.
목포에서 처음 한 일은 동네 가게를 돌며 볼펜 등 사무용품을 파는 일. 억지로 죽지도 못하고 이 세상을 살아간다면 뭔가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하 회장은 문구용품을 파는 일조차 행복이라 여겼다. 이후 경기도 송탄에서 악세사리 장사도 해 보았고 심지어는 전철이 개통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작정 서울로 상경해 구걸까지 하는 등 안 해 본 일이 없었다. 하 회장은 “정말 억척같이 살았다”고 회고한다.
“29살 때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렸는데 그때부터 더 책임감이 생기더라구요. 그래서 일반인들보다 두배, 세배 노력했습니다. 지금은 아들, 딸 모두 대학을 졸업시켰으니 가족을 위해서는 할만큼 한 것 같습니다.”
평생을 하반신 불구로 살아온 하 회장은 수많은 사회적 편견과 소외를 경험했다. 그래서 다른 장애인들에게 자신이 겪었던 아픔을 그대로 겪게 하고 싶지 않았다. 장애인를 위해 가장 시급한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던 차에 신체 장애를 가진 장애인들의 발이 되는 휠체어를 보급하는 일이 가장 우선이라는 생각을 했다.
가족들에게 동의를 구한 하 회장은 1995년 사재를 털고 주위로부터 희사를 받아 휠체어 80대를 무상으로 나누어주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장애인들에게는 휠체어를 갖는 것이 평생 소원이었기 때문이다. 당시만해도 복지 정책이 지금과 달리 열악했기에 정부에서 조차 하지 못하는 일이었기에 주위에서 한번 하고 말겠지 하는 반응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하 회장은 올해까지 400여대의 휠체어를 장애인에게 무상으로 보급했다.
처음에는 사재를 털었고 매년 후원을 받았지만 그것만으로는 휠체어 구매 자금을 마련하기에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아이디어를 낸 것이 바로 후원을 장려하는 텔레마케팅. 자원봉사자들로 구성된 텔레마케터들이 후원자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그동안 모연된 후원금이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를 알리고 후원을 독려한 결과 매년 꾸준한 후원금을 확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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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매년 개인택시 교통봉사대의 후원을 받아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들의 야외 나들이를 주관하고 있다. 올해는 6월 7일 300여명이 경기도 양평으로 나들이를 갈 계획이다.
설과 추석에는 서울시내 독거노인, 소년소녀가장, 중증 장애인들에게 쌀과 고기 등 위문품을 전달하는 것도 하 회장이 빠뜨리지 않는 ‘행사’다.
장애인들 사이에서 하 회장은 ‘대변인’으로 통한다. 말이 통하지 않거나 어려운 일을 당했을때 하 회장에게 연락만 하면 어디든지 달려가 문제를 해결해 주기 때문이다. 지난 5월 24일에도 하 회장은 강원도 횡성을 다녀왔다. 중증 장애인이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말을 잘 못해 어려움에 처해 있다는 전화를 받고 현장에 가보니 진술서가 엉망으로 되어 있었다. 하 회장은 담당 경찰에게 장애인의 의사를 정확하게 전달하고 사건을 원만하게 처리했다.
“장애인들에 대한 편견은 아직도 큽니다. 보이는 그대로 순박하고 거짓말조차도 잘 못하는 장애인들이 많습니다. 단지 신체가 일반인들과 다르다는 것 뿐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장애인들이 항상 뭔가 잘못했고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데도요. 앞으로 그같은 인식이 사라졌으면 좋겠어요.”
집안 대대로 불교를 믿어 왔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하 회장. 그러나 사찰에 가겠다는 생각은 포기한지 오래다. 휠체어가 법당까지 올라갈수 있는 사찰이 드물기 때문이다. 하 회장은 “스님들과 불자들에게 장애인에 대한 더 큰 관심과 배려를 부탁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