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승(警僧). 말 그대로 경찰불자들의 신행을 돕고 나아가 경찰 포교 전반을 담당하는 스님을 가리킨다.
그런데 최근 들어 경승들이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경찰 포교보다는 지역 사회에서 ‘명함’만 내세우는데 관심이 높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종단 차원의 지원이 사실상 전무한 것도 경승들의 활동을 위축시키고 있다.
경승 활동의 현주소를 들여다 보면 ‘경찰포교’의 오늘과 내일이 함께 보인다.
#“주1회 이상 포교 하는 자?”
조계종 법령집에 명시된 ‘경승령’ 제2조에 따르면 경승은 ‘한국불교종단협의회 소속 승려로서 종단의 소정절차에 의해 임용되어 임지에서 주 1회 이상 정기적으로 포교를 담당하는 자’다. 명백하게 경찰 포교 업무를 수행하는 스님을 경승이라고 하는 것이다.
또 제5조에는 경승의 임무를 △경찰 공무원 및 가족에 대한 법회 주관 및 불교 지도 등 포교활동 △대민 사회봉사활동과 대사회범죄예방활동 △경찰 유가족 및 부상자 간병 또는 위로활동 △각급 교정기관의 교정업무 참여 및 각종 법회 주관 등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이와 같이 규정된 경승들은 자신의 역할을 얼마나 수행하고 있을까? 경승을 역임했던 대다수의 스님들이나 관계자들은 “경승의 30%도 제대로 활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사실상 경승들의 활동이 유명무실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 일반행사엔 꼭 참가, 법회는 관심 밖
호남지역에서 십년이 넘도록 경승 활동을 하고 있는 A스님. 과거에도 그랬지만 스님은 요즘 특히 경승활동이 힘겹다. 함께 경승으로 위촉된 다른 3명의 스님들은 경승실에 나오는 경우가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최근 창립된 경찰불교회 회원들과의 만남도 기피하고 있다.
더욱 가슴 아픈 것은 이 스님들이 지역의 중요행사가 있을 때는 빠지지 않고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다보니 A스님은 한 달에 한번 경찰불교회 회원들을 만나 법회를 진행하고 있음에도 경찰 불자들에게는 항상 미안한 마음뿐이다.
스님은 “활동을 하지 않으려면 처음부터 경승 위촉을 거부했어야 했다”고 목소리를 높이며 “이 스님들이 도대체 활동을 하려는 의지나마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다”고 털어놨다.
충북지역의 B스님 역시 혼란을 느끼고 있다. 최근 지역 경찰서에서 경승으로 위촉돼 시간을 쪼개 경찰 불자들과 만나고 있지만 정작 다른 경승 스님들은 누구인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수도권 C경찰서 불자들은 경승들에게 실망감을 느끼고 있다. C경찰서 불자회에 따르면 2005년 열린 총 마흔 한번의 법회 가운데 경승이 주관한 법회는 네차례에 불과했다. 대신 다른 스님과 재가법사, 포교사 등이 나머지 법회를 진행했다. 이름만 ‘경승’인 경우다.
또 서울 D경찰서의 경우 관내에 40여개가 넘는 사찰이 있지만 법회를 열겠다고 하는 스님은 단 한명도 없어 경찰불자들의 실망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경찰불자들은 “전국적으로 이와 같은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며 안타까워하고 있다.
물론 활발한 활동으로 ‘모범’을 보이고 있는 곳도 있다. 충남경승지단(지단장 장곡)의 경우다. 지역 경찰불교회와의 적극적인 교류로 지난해 8월 충남경찰청 산하 19개 경찰불교회 창립을 도운 충남경승지단은 관내 대전서부경찰서, 부여경찰서, 논산경찰서 등에 경승실을 개설하기도 했다.
# ‘이름만 경승’도 많아
지난해 조계종이 발표한 ‘2004년 종단 통계 자료집’에 따르면 전체 경승은 808명이다. 이 중 조계종 소속 경승은 574명. 조계종 경승의 경우 경기도(126명)와 서울(78명), 경북(70명), 경남(63)명, 기타 지역 237명이 경승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0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진 개신교 경목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숫자지만, 2001년 3월의 721명에서 87명 정도 증가한 수치다.
그러나 앞의 예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적지 않은 경승들이 ‘개점 휴업’ 상태를 지속하고 있어서 관련 대책을 시급하게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도 범종단 차원의 경승 포교기구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조계종 스님 외에도 태고종과 법화종 등의 종단 소속 스님들이 실질적으로 경승 활동을 펼치고 있는 만큼 체계적으로 경승을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지적은 지난 1987년 창립됐지만 실질적인 활동을 전개하지 못하고 있는 조계종 대한불교경승단(단장 도영, 조계종 포교원장 당연직)의 활동이 지지부진하면서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 2005년 3월이후 지금까지 회의가 열리지 않을 정도로 활동이 미약하다.
태고종 사회부장 법현 스님은 “군 포교기구도 마찬가지지만 경찰 포교기구도 범종단차원에서 함께 활동할 수 있는 조직으로 거듭나야 한다”며 “경찰 포교에 필요한 조직과 인력, 재정 등을 공동으로 조사해 이를 토대로 새로운 기구를 구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종단 차원의 재정 지원도 절실하다. 조계종의 경우 2006년 포교원 전체예산 20여억원 중 경승 관련 예산은 2700여만원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경승 개개인에 대한 지원이 아닌 경승단 운영비가 대부분이어서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경승에 대한 지원은 사실상 전무한 실정이다.
다른 종단들도 조계종의 사정과 별반 다르지 않다. 대부분의 종단들이 경승 활동 자체를 개인 차원의 문제로 보고 있는 경우가 많아 지원을 따로 하지 않는다. 태고종의 경우 최근에야 경승 지원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 상황이다.
강원지방경찰청 경승실장 원행 스님(원주 구룡사 주지)은 “스님들이 자비를 들여 경승 활동을 하기에는 현실적으로 무리가 있는 것 아니냐?”며 “스님 개인의 원력으로 경승 활동을 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 위·해촉 권한없는 불교계
종단이 경승 활동을 하고 있는 스님들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것도 활동을 촉진할 수 있는 요소다. 일정기간 이상 경승 활동을 한 스님들에게 주지 인사시 가산점을 주거나 각종 소임을 맡을 때도 경승 활동이 하나의 경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충남경승지단장 장곡 스님은 “지역에서 경승 활동을 하는 스님 중에는 주지 등 여러 가지 소임을 함께 하는 경우가 많다”며 “경승스님이 교단 내에서 활동하는데 유리한 시스템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활동이 부진한 스님들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해촉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앞의 예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잿밥’에만 관심을 표명하는 스님들은 포교는 차치하고 불교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경찰 불자들에게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승의 위·해촉 권한은 경찰에 있다. 경승단은 지난해 5월 경찰청에 경찰청 예규 제267호 ‘경찰위촉 목사·승려·신부 운영규칙’중 경승 위촉·해촉시 경승단을 경유하도록 내용 개정을 요청했으나 경찰청이 이를 사실상 거부했다. 이로 인해 경승 위촉은 아직까지 각 경찰서 ‘자율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조계종 포교원 경승 담당 실무자는 “경승 위촉과 해촉을 각 경찰서별로 실시하다보니 전체적인 경승 활동 현황파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토로했다.
# ‘경불회’와의 관계 개선도 과제
대한불교경승단과 대한민국경찰불교회와의 관계 개선도 빠뜨릴 수 없다. 경승 활동의 토대가 바로 경찰불교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경승단과 경찰불교회의 관계는 사실상 단절 상태다. 경승단 회의에 경찰불교회 관계자들이 참석하지 않은지 이미 오래다. 두 단체가 이렇게 된 이유는 ‘관계 설정’문제로 알려지고 있다.
경승단은 경찰불교회가 조계종 신도단체로 등록해주기를 바라고 있지만 경찰불교회는 경찰 내 동호회 모임이 특정 단체에 가입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또 조계종을 제외한 다른 종단 신도들이 있기 때문에 등록은 여의치 않다고 밝히고 있다.
경찰불교회 김진홍 상임법사는 “경찰불자들은 경승단이 불교회에 대한 간섭보다는 신행지도를 원하고 있다”며 “경승단이 종단을 초월해 구성되고 경승 활동이 좀 더 활발해지면 경찰 불자들의 생각도 긍정적으로 바뀔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군과 함께 ‘전략적 포교 대상’으로 꼽히는 경찰을 대상으로 활동하는 경승들의 분발이 더 요구되는 시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