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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독일 월드컵 개막을 보름여 앞둔 5월 25일, 평화적이고 성공적인 개최를 기원하는 4대 종교인 축구대회가 열린 과천 관문체육공원 운동장. 승복 대신 하늘색 축구 유니폼을 입은 스님들이 하얀색 유니폼을 입은 개신교 목사들과 마주섰다.
“수성이냐, 탈환이냐”
첫 대회 우승팀인 개신교팀과 지난 대회 우승팀인 불교팀의 개막전.
“파이팅!”
“즐겁게 축구합시다.”
페어플레이를 다짐하며 상대팀의 선전을 위해 격려를 아끼지 않는 스님과 목사들. 막상 경기가 시작되자 한 치의 양보가 없다. 공을 빼앗고 빼앗기는 혼전 속에서도 양팀 선수들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하다. 목사의 헛발질에 웃고, 스님의 헤딩을 보고 또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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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영대영의 균형은 오래 가지 못했다. 개신교팀이 멋진 발리슛으로 첫 골을 성공시키며 균형을 깬 것이다. 한 골을 뒤진 스님들이 골을 만회하려는 투지가 곳곳에서 엿보인다. 슬쩍 손으로 잡아당기거나 진로를 방해했다가 심판에게 지적당하는 반칙이 늘어난다.
응원단의 열기도 덩달아 뜨거워진다.
“우리 스님 파이팅! 잘 한다!”
불교팀 공격수로 나선 정범 스님이 주지로 있는 서울 옥천암 신도 20여명과 정경 스님이 선수로뛴다는 소식을 들은 보라매법당 신도 10여명이 응원소리를 높인다. 상대팀의 파인플레이에는 박수로 화답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연출했다.
그러나 게임을 이기겠다는 승부욕은 모처럼만에 조성된 종교간 화해 분위기를 깨지 못했다. 상대선수가 넘어지면 손을 내밀어 일으켜주며 서로를 격려하는 모습은 경기를 지켜보는 모든 이들로부터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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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팀은 후반전 종료 직전 한 골을 더 허용했다. 2:0으로 승리한 개신교팀은 불교응원단에게, 게임에서 진 불교팀은 개신교응원단 앞에서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 이어 진행된 원불교팀과 가톨릭팀의 경기는 일방적으로 몰아친 원불교팀의 2:0 승리로 끝났다.
이날 축구대회는 불교에서 조계종 총무원 사회부, 가톨릭은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 대화위원회, 개신교에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교회일치위원회, 원불교는 중앙총부 문화사회부가 각 종교를 대표해 참가했다. 문화관광부와 대한축구협회는 행사비용과 축구장비, 국제심판 등을 후원해 4대 종교인들의 화합에 힘을 보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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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인 축구대회는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월드컵 성공개최를 기원하며 처음 열렸다. 불교와 개신교가 참가한 첫 대회에 이어 지난해 4대 종교로 확대됐다. 불교팀 선수로 참가한 옥천암 주지 정범 스님은 “4대 종교 축구대회는 서로 다른 종교인들이 한 자리에 모여 살을 맞대고 호흡하면서 서로를 이해하는 의미 있는 자리가 된 것 같다”며 “월드컵의 열기에 의존하지 말고 매년 개최하는 방향으로 정례화 시켰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털어놓았다.
25명으로 구성된 4대 종교 대표팀은 토너먼트 방식으로 각각 두 게임을 뛰었다. 불교팀은 조계종 사회부장 지원 스님을 선수단장, 사회국장 혜용 스님을 감독으로 종앙종무기관 종무원으로 일하고 있는 스님들과 중앙승가대학 학인, 각 사찰에서 선발된 스님들로 선수단을 짰다. 두차례의 연습경기를 개최하며 호흡을 맞췄지만, 개신교팀의 선전에 고배를 마셔야 했다.
희망을 접기에는 일렀다. 가톨릭팀과 준결승을 남겨두고 있었기 때문. 중앙승가대학과 개신교팀의 친선경기에 이어 시작된 준결승전, 불교팀은 경기에서 흘린 땀방울에 평화와 화합을 기원하는 기도를 담았다. 승리는 중요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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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팀과의 경기에서 응원단이 고대하던 골이 터져 나왔다. 수비수를 제치고 멋진 터닝슛을 한 지담 스님(옥천암)이 첫 골의 주인공이었다. 지담 스님은 오른손을 들어 하늘을 가리키고 왼손으로 땅을 가리킨 ‘천상천하유아독존’ 골 세리모니를 선보였다.
이에 질세라 가톨릭팀도 선수교체로 전력을 강화시켜 불교팀의 골망을 흔들었고, 승부는 무승부로 끝났다. 사이좋게 공동 3위를 결정짓는 순간이었다. 가장 뒷번호 25번을 단 중앙승가대 학인 혜복 스님이 불교팀 최우수선수로 뽑혔다. 가장 열심히 뛰면서 팀에 활기를 불어넣은 실력을 인정받은 것.
이어 열린 개신교팀과 원불교팀의 결승전. 팽팽하던 승부는 체력에서 앞선 원불교팀으로 기울었다. 종료직전 결승골이 터져 나왔다. 축구에 대해 잘 모르는 주부들로 구성된 불교 응원단도 환호했다. 수성도 탈환도 아니었다. 더욱이 승패는 중요하지 않았다. 서로 다른 종교인들이 그라운드를 함께 누비며 땀 흘린 것만으로도 이날 대회의 의미는 충분히 나눌 수 있었다.
불교팀 감독 혜용 스님은 “축구 유니폼을 입고 4대 종교인 모두가 한마음을 이룬 것처럼 독일 월드컵에서 각 국의 선수들도 모든 세계인이 하나가 될 수 있는 경기를 해주길 바란다”고 대회를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