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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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의 바다 그 무량한 화엄법계
108사찰 생태기행(59)-영주 봉황산 부석사
봉황산(鳳凰山) 부석사(浮石寺)가 자리한 양백지간은 장수왕 이후 한참동안이나 고구려의 지배를 받았던 땅이다. 순흥의 미아령 너머 영춘 땅에는 고구려 온달장군이 신라에게 빼앗긴 땅을 찾기 위해 쌓은 온달성이 있다. 이렇듯 신라 통일 직후까지도 양백지간의 정치적 성향은 반신라적이었다. 따라서 의상대사의 부석사 창건은 다분히 정치적 포석이었다.

부석사는 창건의 러브 스토리가 아름답고, 주위의 풍광이 아름답고, 가람의 모양새가 아름답다.

영주 부석사 안양루 스카이라인


매표소를 지나면 은행나무 너머로 과수원이 넓게 자리하고 있다. 많은 이들은 봄날의 연분홍 사과꽃과 가을날의 빨간 사과 향기를 예찬하지만, 냉철히 들여다보면 이 과수원은 절골 숲을 망가뜨리고 들어선 불청객 같은 존재이다. 이 과수원 때문에 고즈넉하고 그윽해야할 절골 분위기는 멋없이 허벌어져 버렸다. 다행히 과수원 가장자리로 원래의 절골 숲 한 끄트머리가 용케도 살아남아서 옛 숲의 모습을 짐작케 해준다.

절로 오르다보면 오른쪽으로 개울물을 가둔 작은 저수지가 있다. 번식기를 맞은 원앙 한쌍이 밀어를 나누고 있다. 원앙은 물에 사는 오리 종류이지만, 알은 숲속의 나무 둥지에다 낳는다.

조선 헌종 때 나온 <순흥읍지>에 부석사 영지(影池)에 대한 기록이 있다. 일주문 아래쪽에 영지가 있어서 절의 누각 그림자가 거꾸로 비친다는 내용이다. 영지라면 분명 봉황산의 개울물을 담았을 터인데 아무리 둘러봐도 흔적을 찾을 길 없다.

일주문과 천왕문을 지나는 동안 제비꽃과 개별꽃 종류를 비롯하여 몇 종류 들꽃들이 여기저기 제멋대로 흩어져 피고 진다. 이 들꽃의 대부분은 심산유곡이 아닌 인간의 간섭과 왕래로 인해 생태계가 교란된 풀밭에서 자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부석사 석단


개쇠스랑개비는 햇볕이 많은 곳에 사는 들꽃으로, 잎은 어긋나고 잎사귀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다. 봄에 노란 꽃이 가지 끝 잎겨드랑이에서 난다. 예전에는 이른 봄에 어린 줄기와 잎을 식용했다.
광대수염은 습기와 그늘을 좋아하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줄기는 곧게 서고 네모지며, 심장 모양의 잎은 마주나고 잎자루가 있다. 봄에 어린 잎과 줄기를 삶아 나물로 먹거나 말려두고 먹는다.

솜방망이는 이름 그대로 줄기와 잎에 솜털이 많이 나 있다. 잎은 뿌리에서 나며 사방으로 퍼지고, 봄에 꽃대가 올라와 3~6개 정도의 꽃이 모여서 핀다. 어린 순은 나물로 무쳐 먹었다.

부석사 석단들은 크고 작은 막돌로 쌓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것 하나 눌려있거나 삐져나온 느낌을 주지 않는다. 경사면을 깎지 않고 북돋워서 쌓은 석단에는 자연을 거스러지 않는 선조들의 친환경적 의지가 담겨져 있다.

안양루에 오르면 백두대간 태백의 자경(紫景)이 눈부시게 펼쳐진다. 가히 산의 바다라 할 만하다. 눈에 보이는 저 산들이 모두 부석사 경내라는 착각이 그렇게 즐거울 수 없다. 한없이 광활하면서도 장쾌한 태백의 스카이라인! 비로소 막힘없고 걸림없는 극락에 와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그러나, 발밑의 부석사 형국을 보면 안타깝다. 풍수하는 사람들은 부석사가 앉은 형국을 서봉포란형(瑞鳳抱卵形)이라고 한다. 그런데, 봉황의 양쪽 날개인 좌우의 청룡백호가 과수원으로 개간되어 많이 훼손되어 있다. 숲이 망가진 청룡과 백호는 털 뽑힌 봉황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부석사 조경연못


부드럽고 탄력적인 곡선미를 보여주는 무량수전의 배흘림기둥들은 느티나무와 소나무로 세운 것이다. 조선 초기만 하여도 소나무보다 느티나무나 참나무 같은 활엽수종이 대부분의 건축물에 쓰였다. 소나무가 건축물에 주재료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조선 중기부터이다. 그 무렵부터 소나무와 같이 척박한 땅에서 자라는 수종이 차츰 번창하였다는 점도 있지만, 고려 말이나 조선 전기의 기후가 지금보다 더욱 다습하였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말해준다.

부석사의 가람배치는 ‘華’자 모양을 많이 닮아있다. 천왕문에서 무량수전을 잇는 선을 중심축으로 하여 좌우 공간에 석탑과 전각들이 질서정연하게 앉아있다.

그런데,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것은 부석사의 유구한 역사와는 달리 경내에 이렇다할 노거수가 없다는 점이다. 나무들이 아름다운 전각들을 가리기 때문에 일부러 없애버렸는지, 기껏해야 무량수전 마당 한켠의 돌배나무, 첫 석단 앞의 찰피나무(보리수)와 벽오동, 쌍탑 옆의 산수유, 선묘각 앞의 밤나무, 조사당 앞 선비화 등이 고작이다. 선비화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50년생 안팎의 중년 나무들이다.

얼마 전까지 뜬바위[浮石] 옆에 산벚나무가 있어서 봄철이면 꽃을 피워 탐방객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었는데, 언젠가 베어져 보이지 않는다.

돌배나무는 높이 10미터까지 자라는 교목으로, 흑갈색의 나무 껍질이 세로로 잘게 갈라지는 특징이 있다. 같은 장미과인 벚꽃과 복사꽃과 사과꽃 등이 붉은색을 띠는데 반해 돌배나무만은 고결한 하얀 꽃을 피운다. 돌배는 남부지역에, 산돌배는 중부지역에 주로 분포한다. 실록에 태조가 무학대사를 위해 석왕사에다 돌배나무를 심었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산돌배나무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무량수전과 졸참나무 숲


삼층석탑을 지나 조사당-자인당으로 오르는 숲바닥에는 조릿대가 넓게 자리하고 있다. 텃새인 붉은머리오목눈이들이 여기저기서 포르륵 날아다닌다.

온몸이 황갈색에 가까운 붉은색이며, 두 눈이 오목하게 들어가 있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속담에 나오는 ‘뱁새’가 바로 이 새이다. 참새보다 작은 몸집에 꼬리가 긴 편이다. 주로 식물의 씨앗을 먹기 때문에 부리가 짧고 굵으며 구부러져 있다. 20-30여 마리씩 무리를 지어 생활한다.

조사당 처마 밑에 전설의 선비화(仙扉花)가 자라고 있다. 학명으로 골담초라고 한다. 골담초는 중국을 원산지로 하는 목본으로, 반음지에서도 잘 견디고, 토양에 대한 적응성도 높다. 물도 없고 햇볕도 들지 않는 조사당 처마 밑에서 수백년을 연명해 올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골담초는 지상부에서 많은 줄기가 올라와 큰 포기를 형성한다. 뿌리의 맹아에 의해 발생되는 묘목을 분주하거나 새로 자란 가지를 꺾꽂이해서 후계목을 키우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골담초는 생명력이 강하기 때문에 경사지나 절개지의 식재에 적합하고, 생울타리나 차폐용 등으로도 알맞다.

돌배나무꽃


조사당 옆 작은 화단에 꽃들이 만발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모두가 외래원예종 꽃들이다. 전통사찰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 생뚱맞은 꽃밭은 경내 여기저기에 조성이 되어 가는 곳마다 눈에 밟힌다. 전통사찰은 전통적인 식생조경이 전제되어야 비로소 가능하다. 전각과 당우가 아무리 고색창연하다고 해도 주변 식생이 고유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전통 가치가 반감될 수 밖에 없다.

무량수전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졸참나무는 키가 20미터를 웃도는 키다리 나무이다. 나무 껍질은 연한 잿빛이며 세로로 골이 파져 있다. 참나무 종류 가운데 잎이 가장 작고, 잎 가장자리에 갈고리 모양의 톱니가 나 있다.

건축에 쓰이는 ‘못’ 하면 쇠로 만든 못을 쉽게 떠올리지만, 원래 못의 원조는 나무못이었다. 일교차가 심한 산중의 사찰건축에 졸참나무못을 많이 썼고, 바닷물과 풍랑을 견뎌야 하는 군선(軍船)에서는 박달나무못을 썼다고 한다.

지장전 뒤에 샘이 하나 있다. 물 속에 도룡뇽과 개구리가 알을 낳아놓았다. 일부는 새끼들이 부화해 고물거리고 있다. 주위의 다른 물길과 연결되지 않은 샘이라 그들이 살아가기엔 너무 좁고 협소한 환경이다. 특히 도롱뇽은 환경오염과 변화에 대한 내성이 약해서 이곳에서 언제까지 연명해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붉은머리오목눈이


지장전 옆으로 호젓한 산길이 원융국사비와 부도전과 승방까지 이어져 있다. 산길 아래로는 사하촌의 드넓은 과수원이 펼쳐져 있다.

부석사는 아름다운 절임에는 분명하지만, 수행환경이 결코 좋다고는 볼 수 없다. 환경용량을 무시한 채 연중 왁자지껄 모여드는 관광객들의 발걸음도 어수선하거니와 온통 과수원으로 둘러싸인 환경은 수행자들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사과는 다른 과수에 비해 농약 의존도가 유난히 높다. 2006년도 사과시험장 당국에서 제시한 지침서에 따르면, 3월 말경부터 시작해 9월말 수확 전까지 10차례나 각종 살충제와 살균제 등 농약을 치도록 되어 있다. 상승기류를 타고 눈에 보이지 않는 농약의 독성이 수행공간을 매케한 냄새로 뒤덮는다.

부석사 주변의 곤충상이 다른 절에 비해 빈약한 것도 과수원이 주는 반생태적 환경과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지난해 용케 살아남은 산호랑나비 한 마리가 땅바닥에 앉아 낮잠을 즐기고 있다. 산호랑나비는 이름 그대로 산지형 호랑나비이다. 날개의 바탕색은 황갈색이고 바깥가장자리와 시맥은 흑색이다. 뒷날개의 안쪽 가장자리에 붉은 점이 있어서 호랑나비와 쉽게 구별된다. 성충은 1년에 두 차례 봄과 여름에 나타난다.

부석사는 아름다운 절이지만, 반면에 눈에 밟히는 것도 많다. 몇 해 전에 들어선 절 입구의 연못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각종 분수와 휘황찬란한 조명과 갖가지 인공구조물.... 1천 5백년의 유구한 역사를 가진 전통사찰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도시공원이나 아파트촌에나 있을 법한 연못이다. 공무원들의 발상이라지만, 연못을 조성하기 전에 부석사에서 강력한 의사표시만 있었더라도... 하는 아쉬움이 있다. 황당하기 짝이 없는 반환경적인 폭포와 연못을 만드느니 차라리 돈으로 옛 영지를 찾아서 복원하는 것이 우선 순위가 아니었을까... 참으로 답답한 처사들이다.

사찰생태연구소(http://cafe.daum.net/templeeco)
글ㆍ사진=김재일 | 사찰생태연구소장
2006-05-23 오전 10: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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