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3.27 (음)
> 종합 > 사람들 > 도반의향기
“봉사라면 어디든 출동합니다”
[도반의 향기]‘사랑의 119 선생님’ 안시장 소방관
비먼이면 항상 지역 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안시장 소방관은 봉사의 실천이 행복의 보증수표라고 강조한다.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 바닷가마을. ‘119 선생님’이 이집 저집을 돌며 노인들과 인사를 나누고 불편한 것이 없나 살핀다. 구룡포읍 소방파출소 부소장 안시장(55) 소방관은 근무가 없는 날이 더 바쁘다. 그는 20년이 넘도록 사비를 털어 무의탁노인과 노숙자들을 돌보고 있다. 그래서 이 지역에서 ‘119 선생님’으로 통한다.

24시간 교대근무를 하는 안 소방관이 비번일마다 무의탁노인을 찾아가 건강을 챙기는 것은 물론 비가 새는 지붕 수리며 전기 수리, 보일러 수리 및 설치, 이미용 봉사, 민 형사 사건처리 등 궂은일을 도맡아 한다. 게다가 봉사활동을 하기위해 유선 설비, 전자기기, 자동차전기정비, 아로마경락, 스포츠트레이너, 건강관리자격증 등 10여종의 자격증까지 갖췄고, 벌침과 구급교육 등을 수료하기도 했다.

안소방관은 이런 봉사활동으로 최근 코오롱 그룹이 운영하는 비영리 재단 ‘꽃과 어린왕자’가 수여하는 제6회 우정선행상 대상을 받았고, 2002년에는 MBC가 선정하는 좋은 한국인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1983년 소방공무원 공채시험에 합격해 구룡포에 부임해 온 안 소방관은 자전거를 타고 구룡포 읍내를 둘러보던 중 산중턱에서 다 스러져가는 흙집을 발견했다. 지붕이 새고 방안에서는 죽순이 자라는 그런 집에서 허리가 90도로 구부러진 할머니(1915년생)가 아궁이에 군불을 때며 생활하고 있었다.

“아직도 이런 집에 사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할머니는 젊은 시절 뱃사람이었던 남편이 죽은 후 정부보조금으로 겨우 살고 있었는데, 나도 어린 시절을 어렵게 살았기 때문에 모른 척 할 수가 없었습니다.”

무의탁 노인 노숙자의 정보를 10년 동안 기록해온 안 소방관의 수첩
안소방관은 사비를 들여 지붕을 수리하고 보일러도 설치한 후 할머니를 돌보기 시작했다.

“저의 아버지는 나라 땅인 줄 모르고 구입한 땅에 15평 초가집을 짓고 살다가 그대로 쫓겨나 화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15평 초가집에서 어렵게 살면서도 전쟁 통에 불구가 됐던 어려운 이들을 위해 집을 내어주곤 했었는데 말입니다”

돈 없던 시절 아버지의 한 맺힌 죽음과 1973년 공군통신하사관 시절 돈이 없어 자살한 사병의 기억을 떠올린 안 소방관은 더 이상 돈 때문에 생명을 잃는 일이 없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봉사활동에 나섰다.

“정작 어려운 사람들은 우리 주위에 있지 않습니다. 차도 다니지 않는 산중턱에 있어요. 도움을 주려면 발로 찾아다녀야 합니다. 때론 생활보호대상자로 등록조차 되어있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병을 앓고 있는 무의탁 노인의 경우는 당장 진통제나 영양제 같은 것은 보험적용이 되지 않아 고스란히 고통을 받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만일 이들을 방치한다면 비가 새는 냉방에서 고통을 호소하다가 며칠 내 목숨을 잃고 말 겁니다.”

당장 한 사람의 생명을 살려야겠기에 시작한 안소방관의 봉사활동은 여느 봉사자와는 사뭇 다르다. 더욱 절실하고 세심하며 간절함이 녹아 있다. 안소방관의 사람과 생명에 대한 사랑과 자비심은 10년 전부터 기록해온 수첩에 고스란히 배어있다.

수첩에는 100여명이 넘는 무의탁노인과 노숙자들의 신상은 물론 내과 신경외과 등 병원출입기록과 처방약에 대한 성분분석까지 꼼꼼히 기록돼 있다. 노인들의 항생제 중복 과다복용을 막기 위한 배려다. 또, 글도 법도 모르는 노인들이 정부의 복지혜택을 제대로 받을 수 있는 근거로 사용할 수 있도록 잘 정리해 둔 것이다.

안 소방관은 성당이든 절이든 몸만 가지 말고 마음도 함께 가라고 말한다.
안소방관은 요즘 매월 20여명의 무의탁노인들을 병원에 데려가 통원치료를 받도록 돕고 있다. 2004년부터는 사재를 털어 집 한 채를 세 얻어 수리한 쉼터도 운영하고 있다. 알코올중독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노숙인들을 돕기 위해 준비한 쉼터에는 술을 끊고 33년간 앓아 온 탈창 수술을 준비하며 새 인생을 계획하고 있는 노숙자와 대소변을 받아내야 하는 무의탁 노인, 보살핌이 필요한 장애인이 안소방관 가족의 보호를 받으며 생활하고 있다.

해마다 1천 만 원 정도를 봉사활동비로 사용하는 안소방관에게는 아내 이순자씨와 두 남매가 가장 큰 후원자다. 1986년 3살, 5살 어린자식을 두고 뇌졸중으로 쓰러진 알코올중독자 가장을 살리기 위해 안소방관이 20여 만 원 박봉에 1만 5천 원짜리 영양제 주사를 맞춰가며 동분서주할 때, 아내 이순자씨는 오징어고기잡이 폐 그물을 수선하는 막노동 일에 뛰어들어 번 돈으로 봉사활동을 도왔다. 또 대소변을 받아내는 무의탁노인의 냄새나는 방을 기꺼이 청소했고, 반찬을 만들어 주었다. 이제는 무의탁 노인들이 아내 이씨를 더 많이 찾을 정도로 봉사활동에 열심이다. 또, 장학금으로 대학을 졸업한 두 남매도 아버지를 대신해 무의탁 노인들을 병원에 모시고 간다.

안소방관 가족의 불심도 소문이 났다. 안소방관은 부처님 상호가 그려진 작은 탱화를 지갑 속에 소중히 간직하고 있고, 1년에 두 세 차례 지역 신도들과 함께 하는 사찰성지순례를 빠지지 않고 다닌다. 아내 이순자씨는 매월 갓바위 부처님을 참배하고 온다.
마음 깊은 곳에 따스한 자비심을 간직한 까닭일까? 경찰이나 복지사가 안소방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경찰 앞에서 행패를 부리던 불량배나 노숙자, 심지어 정신분열환자까지도 안소방관 앞에서는 얌전해지기 때문이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 안소방관의 대답은 간단하다.

“자신을 진정 위하는 이가 누구인지 잘 알기 때문입니다. 누가 자신을 위하고 자기 가족을 위하는지 잘 알기에 순해지는 거죠.”

삶의 한 귀퉁이로 내몰린 사람들과 나눈 안소방관의 훈훈한 이야기들을 듣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아 요즘 안소방관은 강의에 나서는 일이 잦다. 안소방관의 강의에선 화재 예방법보다는 20여 년간 몸과 마음으로 기록해 온 ‘사람 사는 이야기’가 더 인기다.

“강의를 시작하기 전에 교회든, 성당이든 절이든 몸만 가지 말고 마음도 같이 가라고 말합니다. 마음속에 부처님과 하느님의 마음을 지니고 살라는 뜻이지요. 그리고 가정의 평화를 이야기합니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는 봉사활동만한 것이 없다고 덧붙이죠. 봉사는 행복의 보증 수표 같은 겁니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단돈 1000원이라도 보시하세요. 그러면 행복해질 테니까요.”
글=배지선 기자ㆍ사진=박재완 기자 |
2006-05-23 오전 10:26:00
 
한마디
닉네임  
보안문자   보안문자입력   
  (보안문자를 입력하셔야 댓글 입력이 가능합니다.)  
내용입력
  0Byte / 200Byte (한글100자, 영문 200자)  

 
   
   
   
2024. 5.5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원통스님관세음보살보문품16하
 
   
 
오감으로 체험하는 꽃 작품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