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도 되기전 소설가 한승원과 춘원 이광수의 소설 <원효대사>의 재출간을 준비중이던 화남 출판사의 이승철 편집주간은 왕복 5회에 걸쳐 이메일 논쟁을 벌였다.
논쟁은 친일문학 논쟁과 출판의 자유문제까지 거론됐다.
2005년 12월부터 시작된 이같은 논쟁은 한승원씨가 먼저 시작했다.
한씨는 춘원 이광수의 친일행적을 거론한다.
그는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때 작가활동을 했던 이광수는 <원효대사>를 한반도 식민통치 지휘소인 조선총독부의 기관지인 <매일신보>에 연재했다. 조선총독부는 이광수의 소설을 통해 식민지 조선의 젊은이들을 전쟁에 기꺼이 참여하라고 충동질하려는 것은 아니었을까”라는 물음을 제기한다.
한씨는 “이광수의 <원효대사>를 보면 원효가 도술로 도적을 제압하고, 신라 젊은이들에게 삼국통일 전쟁에 기꺼이 몸을 던지라고 부르짖는 사람으로 묘사되고 있다”고 말한다.
한씨는 “불안정한 시국에 여자 생각이 동하여 과부 요석공주와 동침하고 도술을 부려 삼국통일에 협조한 인물로 원효를 기록한 것은 오독”이라고 말한다.
이에 대해 화남출판사 이승철 주간은 “문학작품이란 친일작가가 쓴 작품이기에 독자가 친일작가의 작품에서 맛본 감동이란 의미없다 한다면 이는 이를 읽는 독자에 대한 모독”이라며 “친일행위는 비판받되 작품은 작품으로서 읽히고 평가되어야 옳다”고 말한다.
이씨는 “‘원효를 한민족으로 보고, 한민족 자체를 인격화한 이 작품은 일제 말살정책에 맞서 우리 말과 글로 쓴 춘원의 대표적 역사소설’이라는 김윤식 서울대 명예교수의 평가도 있는 만큼 오히려 두 소설을 비교하면서 달라진 스팩트럼을 보았으면 한다”고 밝혔다.
이씨는 “한승원 선생이 지난 3년간 공들여 쓴 작품이라면 독자들이 그 작품을 외면할리 없는 만큼 독자들에게 맡기자”고 주장했다.
한승원의 <소설 원효>
중생들에게 지극한 사랑으로 불법을 전하며 온몸으로 어두운 세상의 새벽이 되었던 원효 스님. 그의 삶과 사상을 문학적 상상력으로 빚어낸 한승원의 장편소설 <소설 원효 1, 2, 3>가 출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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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를 올바르게 읽음으로써 잘못 알려진 관념을 바꾸기 위해 한승원 선생이 3년동안 그동안 발간된 저서, 논문, 삼국의 역사, 불교경전등 수많은 책과 자료를 탐독했다. 또 원효의 행적을 좇아 그가 태어난 경산 불등마을을 비롯해 경주 남산과 서라벌, 영축산과 반고사터로 추정되는 곳을 수차례 방문했다.
그래선지 그동안 신화속에 박제되어 있던 원효의 삶은 이 소설속에서 생생한 숨결이 느껴진다. 마치 원효가 아무 걸림없는 무애춤을 추듯 거침없이 활달하며 유려하고 자유자재하는 듯하다.
한승원의 소설에서 원효 스님은 신라의 삼국통일전쟁을 반대한 반전주의자이자 한 나라의 영토와 경계를 뛰어넘는 세계주의자, 일심과 화쟁과 무애를 실천한 불국토주의자로 태어나고 있다.
특히 한씨는 신라의 모든 젊은이들이 전쟁터로 향하던 삼국전쟁의 광기어린 분위기속에 원효는 중생을 도탄에 빠뜨리는 전쟁을 중단해야 한다고 외쳤다고 기술한다. 신라 집권자들이 일으킨 전쟁에 그는 제거 대상이었다는 것. 그래서 원효를 파렴치한 승려로 만들고 전쟁을 치르는 동안 요석궁에 강금시킨 것이라고 서술한다. 소설에서는 말미에 원효와의 가상 인터뷰도 시도한다. 살아있는 듯 육성을 직접듣는 형식을 통해 원효 스님의 요체를 정리한 글로 소설의 압축본 구실을 한다. 또 용어풀이를 수록해 당시 정치문화, 불교관련 용어를 알기쉽게 풀이했다.
한편 한승원씨는 <아제아제 바라아제> <불의 딸> 등 신화적인 작품들을 통해 생명력 넘치는 문학세계를 추구하고 있는 한국 현대문학계의 대표적 작가이다.
이광수의 <원효대사>
장엄하고 넉넉한 신라의 풍경과 대자유한 민족의 부처, 원효의 일생을 소설화한 춘원 이광수의 대표적 장편소설 <원효대사 1, 2>가 재출간됐다.
이 책 <원효대사>는 1942년 춘원 이광수의 나이 51세에 창작한 장편소설로 당시 조선총독부 기관지였던 <매일신보>에 7개월 동안 연재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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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이 발표됐던 시기는 태평양전쟁이 일어난 직후이고 일본 제국주의가 내선일체를 미끼로 황국신민화정책을 책동하던 시기였다.
당시 일제가 춘원에게 <원효대사>의 집필을 허락한 속셈은 원효가 승병을 일으켜 나라에 충성한 것처럼 전시체제를 한인들에게 알려 이른바 ‘국가총동원’의 선전성을 노린 것이었다.
이에대해 춘원 이광수는 이를 역이용하여 한민족의 민족정기를 불러일으키는 천재일우의 기회로 삼았다고 자신의 심경을 소설속에서 고백한다.
춘원의 <원효대사>는 일제강점기에 우리 말과 글로써 어둠을 밝힌점과 더불어 원효를 조선 자체로 보고 미래형으로 그리면서 한민족 자체를 인격화 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한편 이번에 발간된 <원효대사>는 소설 곳곳에 나타나 있는 불교용어와 여러 불경의 인용으로 인해 일반독자들이 이해하기 힘든 부분에 주해를 달았다.
또 조선대 김준태 교수와 이병주 동국대 명예교수의 작품해설로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다.
한편 춘원 이광수는 1892년 평북 정주에서 태어나 1917년 한국 근대 장편소설 <무정>을 발표했다. 19년 도쿄에서 ‘2.8독립선언서’를 기초하였고, 상해임시정부의 독립신문 편집국장과 사장을 지냈다. 37년 도산 안창호 선생과 투옥되기도 했지만, 39년 조선문인협회장 재임시 황국신민화정책에 부응하는 친일행적을 남김으로써 한국 근현대문학사 영욕의 상징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