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7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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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 각 총림 병술년 하안거 결제법어
"오늘 수염 붉은 호인을 내가 보았다"
불기 2550년 5월 12일(음력 4월 15일) 병술년 하안거 결제일을 맞아 전국 조계종 총림 방장 스님들이 법어를 내렸다.


조계총림 송광사 방장 보성 스님

송광사 방장 보성 스님.


오직 일대사를 위해 시방에서 오신 수행납자들이여.
각자 큰 뜻을 가슴에 품고 모였으니 이제부터 한바탕 호쾌하게 지어가 봅시다.
내 일은 내가 해결해야 합니다. 그 누구 있어 나를 대신하겠습니까.

‘호인은 수염이 붉다고 하더라.
오늘 수염 붉은 호인을 내가 보았다.’

이 한마디를 잘 살펴 주세요.
예나 지금이나 공부법은 한가지 밖에 없습니다.
그저 정진, 정진으로 밀고 나가는 것입니다. 다른 방편 없습니다.
제가 모신 효봉 스님은 참 우직하게 공부하신 분입니다.
그 분 스스로도 나는 미련하게 그저 밀고 나가는 법 밖에 모르니 너희들은 좀 슬기롭게 공부를 지으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러나 나중 겪어보고 나니 그 분의 공부법이야말로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편이었다는 걸 알게 되더군요.

중국 황룡선사 회상에 어느 날 낯선 이가 와서 도청을 하다가 들켰답니다.
알고 보니 그 이는 당대 도교의 종장인 여동비였어요.
황룡 스님이 그 이더러 묻기를
‘당신은 몇 만세를 사는 도인이라고 하는데 천지가 생기기 전에 당신은 어디에 있었소?’ 하니 여동비가 그만 말문을 막혀 대답을 못했어요.
황룡스님이 이어, ‘물이 다하고 땅이 다하니 황룡이 출현했도다’
하고 이르자, 그 언하에 여동비가 알아차리고 조복을 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같은 기상과 지혜를 갖추었으면 한 판 멋지게 해치울 수 있다고 나는 믿습니다.
머리에 붙은 불을 끄듯 오직 간절하고 철저하게 파고들어 한판 멋지게 해치웁시다.
산승은 미력을 다해 시봉을 할 테니 출격 대장부들이여, 이번 철에 아름다운 소식을 이루기 바랍니다.



덕숭총림 수덕사 방장 원담 스님

수덕사 방장 원담 스님.


눈 앞에는 차별된 어떤 법도 없으니, 형상과 마음이 있고 없음의 차별심을 가지고 보면, 어디에 있어도 눈앞의 법을 보지 못하느니라.

안리고산봉연련 (眼裏高山峰連連) 눈앞에 높은 산봉우리 첩첩하고
유수부세아장한 (流水不洗我長恨) 흐르는 물은 나의 긴 한을 씻지 못하네
홀연춘래고고목 (忽然春來故槁木) 홀연히 옛 마른나무에 봄이 오니
화탄홍지성차신 (花綻紅枝省此身) 분홍 가지에 꽃망울 터질 때 이 몸을 발견했네

한 납자가 만공노사를 찾아뵙고 여쭙기를 "불법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니, 노사께서 이르시기를 "다 못 네 눈앞에 있느니라" 하셨다.
납자는 다시 "눈앞에 있다면 저에게는 어찌 보이지 않습니까?" 하고 여쭈니, 노사께서는 "너에게는 너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보이지 않느니라" 하시니, 납자는 여쭙기를 "스님께서는 보셨습니까?" 하니, 노사는께서는 "너만 있어도 안 보이는데 나까지 있다면 더욱 보지 못하느니라" 하셨다.
납자가 다시 여쭙기를 "나도 없고, 스님도 없으면 볼 수 있겠습니까?" 하니, 노사께서는 "나도 없고 너도 없는데 보려고 하는 자가 누구냐?" 하셨느니라.
오늘 이 자리에 모인 대중들은 이 때를 당하여 무어라 말하겠는가?

양구(良久ㆍ꽤 오래) 하신 후,
눈앞에 법이 없고 뜻이 눈앞에 있으니, 눈앞의 법이 아니기에 귀와 눈이 미칠 바가 아니니라.
다만, 모든 것은 자신에 의해 가리어졌을 뿐 분별심에서 벗어나면 어디에서나 눈앞에 법을 볼 수 있느니라.

대중들이여!
눈앞에서 드러난 일을 단번에 알아 차려야 하느니라.
만일 알았다면 한 겨울에 눈과 서리 어찌 두렵겠는가?
알아차리지 못했다면 평생 동안 행각(行脚)했던 안목이 어디에 있는가?
천길 벼랑 끝에 선 납자는 모름지기 진일보하여 정진하도록 하라.

수지일기무사력 (須知一氣無私力) 한 가닥 사심 없는 힘이
능령고목갱추지 (能令枯木更抽枝) 마른 나무 다시 돋아 싹트게 하니라



고불총림 백양사 방장 수산 스님 결제법어

백양사 방장 수산 스님.


약욕수행 (若欲修行) 만약 수행을 하고자 할진댄
선수돈오 (先須頓悟) 모름지기 돈오가 우선이니
수본진심 (守本眞心) 본래 참마음을 지켜야 한다
미심수도 (迷心修道) 미혹되게 마음을 닦는 것은
단조무명 (但助無明) 단지 무명을 따를 뿐이다
병진약제 (病盡藥除) 병과 약이 다할 때에 이르러
환시본인 (還是本人) 이를 참사람이라 한다.

백장선사(百丈禪師) 밑에 신찬선사(神贊禪師) 라는 제자가 있었다. 계현(戒賢) 강백 상좌이다. 신찬선사가 스승인 계현 스님이 참선은 하지 않고 문자에만 매달려 있는 것을 보고 백장선사를 찾아서 공부를 하고 돌아와 그의 스승인 계현 스님의 등을 밀면서 대화한 내용이다.

호호법당 (好好法堂) 어허, 좋고 좋은 법당이로구나
불무영엄 (佛無靈嚴) 그런데 법당은 좋지만 부처님이 영험하지 못하구나
불무영엄 (佛無靈嚴) 부처가 영험은 없으나
시시방광 (時時放光) 방광은 하는구나.

벌이 방으로 들어와서 열려있는 문으로 나가지 않고 봉창만 두드리는 광경을 보고 신찬선사가 읊었다.
공문부긍출 (空門不肯出) 열린 문으로 나가려 하지 않고
투창야대치 (投窓也大痴) 봉창을 두드리니 참으로 어리석다
백년찬고지 (百年鑽古紙 백 년 동안 경책을 들여다본들
하일출두일 (何日出頭日) 어느 날에나 나갈 수 있겠는가.

이 게송을 계현 스님이 듣고 산중의 모든 대중을 모아 놓고 상좌에게 절을 하고 법문을 청하였습니다. 그러자 신찬 스님은 서슴지 않고 상당하여 설법하였다.
영광독로(靈光獨露) 신령한 광명이 홀로 드러나서
향탈근진(逈脫根塵) 육근육진의 모든 분별을 벗어났네.
체로진상(體露眞常) 그 자체가 항상 참됨을 드러내어
불구문자(不拘文字) 언어문자에 걸리지 않는다.
진성무염(眞性無染) 진성은 더럽혀지지 않고
본자원성(本自圓成) 본래부터 원만히 성취되어 있네.
단리망연(但離妄緣) 다만 허망한 인연만 떨쳐 버려라.
즉여여불(卽如如佛) 곧 그대가 부처이니라.
그리고서 주장자를 굴리자, 계현 스님은 크게 발심하여 다시 절을 하고 눈물을 흘리며 말하였다. "내 이렇게 늙어서 상좌에게 극치법문을 들을 줄 기대나 했겠는가? 모두 부처님의 은혜이로구나"


조용수 기자 |
2006-05-12 오전 11: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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