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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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축특집]한국 고승들의 탄생이야기
‘상징성’ 통해 수행숨결 생생히"
1600여년 한국불교 역사 곳곳에서 ‘깨달음의 기둥’이 됐던 역대 고승들. 이들의 탄생설화는 어떨까? 룸비니 동산에서 당차게 깨달음의 선언을 했던 석가모니 부처님의 탄생이야기처럼, 오늘날을 사는 불자들에게 무슨 의미를 던져줄까?

역대 고승의 탄생이야기에는 어머니의 태몽이 있다. 하지만 그 태몽은 여느 태몽과 다르다. 중생을 제도할 성인의 탄생을 예고하기 때문이다. 불기 2550년 부처님오신날. 우리나라 고승들의 탄생이야기와, 그 상징적 의미를 살펴보자.


▶부모님의 범상치 않은 태몽

한국 고승의 탄생설화에서 가장 큰 특징은 모친의 아들에 대한 깊은 사랑이다. 덕숭문중의 큰 산맥 금오 선사(金烏:1896~1968)의 어머니는 자신의 태몽이 범상치 않음을 예감하고 일찌감치 아들의 출가를 예견했다.

꿈에서 한 노인이 나타나 품고 있던 그릇을 내어주면서 “열지 말고 가지고 가라”고 했다. 이후 돌아와 그릇 뚜껑을 열어보니 하얀 학이 그 속에 들어 있었다. 그런데 그 학이 갑자기 날더니 오색이 반짝이는 영롱한 짐승으로 변해 기어들어 왔다. 그것을 보는 순간, 어머니는 놀라 꿈에서 깨어났고 그 후 금오 선사를 낳았다.

아버지의 사랑도 있다. 자장 율사(慈藏:?~?)의 아버지 무림(茂林)은 늦도록 아들이 없자 천수천안 관세음보살상 앞에 나아가 “만약 아들을 낳으면 바쳐서 진리의 바다로 갈 수 있는 나루 또는 징검다리가 되도록 하겠다”며 자식 낳기를 축원했다. 이후, 별이 품속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 어머니가 임신했고, 부처님오신날 자장을 낳았다.


▶꿈에서 스님 만나 탄생한 고승들

고승들의 탄생설화에서 기인(奇人)이 많이 나온다. 특히 스님들이 주로 등장한다. 진감 국사(眞鑑:774~850)의 탄생 이야기에서는 인도스님이 나온다. 하루는 인도스님이 찾아와 “당신의 자식이 되겠습니다”하며 유리병을 주고 갔다. 그리고 진감 국사를 잉태했다고 전한다.

지증 국사(智證:824~882)의 탄생설화에는 거인이 나온다. 어머니의 꿈에 거인이 와서 “나는 부처님으로서 말법 세상에 스님이 되었는데, 성냄으로 인해 용의 과보에 떨어졌습니다. 이제 과보가 끝나 다시 스님이 되어야 하겠기에 좋은 인연에 의탁, 자비로운 가르침을 크게 펴기를 원합니다”고 말한다. 그 뒤로 아이를 배어 거의 4백 일이 되었는데도 낳지 못하다가 부처님오신 날 아침에야 지증 국사를 출산했다고 한다. 또 독립운동가 용성 선사(龍城:1846~1940)도 어머니 손씨가 어느 한 스님이 방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 용성 스님을 낳았다고 전한다.


▶성스러운 상징물도 등장

탄생설화에 등장하는 상징물에서도 고승이 탄생할 것이라는 암시가 주어진다. 별, 해, 달, 새, 오색 구름 등이 주로 나온다.

먼저 ‘별’의 경우, 원효 스님(元曉:617~686)의 탄생설화가 유명하다. 신라 원효 스님의 어머니는 별이 품으로 들어오는 꿈을 꾼 뒤, 태기를 느꼈고 해산할 무렵 다섯 가지 색의 구름이 땅을 덮는 가운데 아이를 낳았다고 전한다.

‘해’와 ‘달’이 언급되는 사례도 있다. 신라에 불교를 처음 알린 아도 화상(阿度:357~?)의 설화에서는 어머니 고씨가 4월 초파일에 해와 달이 품 안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 아도를 잉태했다고 전한다. 또 태고 왕사(太古:1301~1382)도 어머니 정씨가 둥글고 밝은 달이 품 안으로 날아드는 꿈을 꾸고 태고 왕사를 잉태했다.

황금 빛 또는 푸른 빛 새들도 등장하는 탄생설화도 있다. 나옹 왕사(懶翁:1320~1376)의 어머니는 꿈에 황금빛 새 한 마리가 날아와 머리를 쪼며 알을 떨어뜨렸는데, 그것이 품 안을 들어오는 것을 본 뒤로 태기가 있었다고 전한다. 이외 어머니가 우물 속의 오이를 먹고 태어났다는 도선 국사(道詵:827~898)와, 고향인 전남 불거촌에 3년간 가뭄이 들자, 동네 사람들이 ‘세상에 드문 인물이 탄생했다’는 말을 들으며 태어나 이적을 많이 행한 진묵 조사(震默:1562~1633) 탄생설화도 흥미롭다.



탄생설화, 그 의미는?

고승들의 탄생 이야기는 어떤 의미를 던져줄까? 우선 이들의 탄생설화는 출가 전 가정사, 고승들의 출가 동기, 일생 동안 걸어온 구도역정 등을 짐작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다. 치열한 자기 수행의 첫 출발을 탄생설화를 통해 엿볼 수 있다는 것이다. 즉 탄생설화 자체가 고승의 삶과 사상을 풀이해낼 ‘암호문’이 되는 셈이다.

지난 1980년부터 한국 역대고승 24명의 행장을 소설로 쓴 <고승열전>의 저자 윤청광 작가는 “고승들의 탄생설화는 언뜻 보기에 황당하고 미신적인 부분이 적지 않지만, 설화가 제시하는 상징적인 의미를 잘 짚어내면 한 수행자의 삶을 읽어내는 정보의 보고(寶庫)가 된다”며 “재가불자는 물론 일반인들이 탄생설화를 통해 역대 고승들의 숨겨진 수행의 숨결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동국대 고영섭 불교학과 교수는 “고승 탄생설화는 추상적인 모습의 부처님이 아닌 구체적으로 고승이란 수행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부처님을 대신하는 역할로 고승의 탄생설화가 강조된 만큼, 설화 내용을 단순히 글귀 뜻풀이에 그치지 말라”고 당부한다.

고 교수는 특히 “각박한 현대사회를 사는 재가불자들이 고승들의 탄생설화를 통해 선지식에 대한 ‘살아있는 존경심’을 갖는다는 차원에서 설화의 상징성이 시공을 초월해 현실적으로 다가온다”고 강조한다.



김철우 기자 | in-gan@buddhapia.com
2006-05-03 오전 10: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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