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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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서로 존댓말 씁니다”
[도반의향기]결혼 60주년 맞은 행원문화재단 이사장 주영운ㆍ장기옥 부부
결혼 60주년을 맞은 주영운 행원문화재단 이사장과 장기옥 보살. 서로 존경하고 남을 도우며 살아온 것이 60년을 행복하게 산 비결이다.
지난해 우리 나라 결혼한 커플은 31만 6375쌍이고 이혼한 커플은 12만 8468쌍이다. 전체 기혼자 중 이혼건수로 보면 매년 100쌍 중 1.06쌍이 이혼하고 있다는 통계는 ‘성공한 결혼’이 그 만큼 어려운 시대임을 보여준다.

이런 상황에서 결혼 60주년 회혼(回婚)을 맞은 행원문화재단 주영운(83세, 법명 행원) 이사장과 장기옥(79세, 법명 보안장) 보살은 부부사랑의 모범이 된다.

옛날부터 인간의 삶에서 가장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다섯가지 복이 말하여 진다. 오복(五福)중 장수하는 수(壽), 물질에 부족함이 없는 부(富), 몸이 건강하고 마음이 편안한 강녕(康寧), 덕을 좋아하는 유호덕(攸好德), 제 명대로 살다가 편히 죽는 고종명(考終命)이 그것인데 이 부부는 이 다섯가지 복을 타고 난 것일까.

18년간 살고있는 청담동 모 아파트 공원에서 만난 주 이사장 부부는 옷을 곱게 차려입은 뒤 화사하게 피어난 벚꽃나무 아래의 벤치에 다정하게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하지만 두손을 꼭 잡고 있는 모습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경전을 독송한 뒤 노부부는 손을 잡고 청담공원을 산책한다. 저녁식사후에도 마찬가지. 그렇게 평생을 살았으니 자연스러울 수 밖에.

“천생연분이지요. 우리집이 워낙 대가족이라 집사람이 시집와서 고생많이 했어요. 한달이 멀다하고 계속되는 제사때 100여명의 친척이 좁은 집을 찾아와도 싫은 내색 않고 자상하게 모든 것을 처리해줘서 이만큼 잘 살아왔어요. 아내가 며느리로 엄마로 어진 아내로 정말 헌신했어요. 나에게는 부처님으로 보입니다.”
주 이사장이 따뜻한 눈으로 아내를 바라보며 이야기한다.

장기옥 보살은 “이 분을 만나 행복하게 살았어요. 내게는 물론 자식들에게도 자상하고 모범이 되어주었지요. 다만 아이들을 너무 많이 낳다보니 임신한 기억이 많아요”라고 얘기한다.

지금은 북한 땅인 경기도 개풍군에서 태어난 주 이사장 부부. 일본군 1기로 징집돼 징병검사를 받았는데 기병(말타는 병사)으로 판정난 주 이사장. 어차피 전쟁에 나가면 죽을 수도 있고 그러면 아내가 생과부 될 것 같아 20세가 넘어도 결혼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대동아전쟁 막바지라 만주벌판의 기병이 사라지면서 징집도 되지 않았다. 해방도 되고 그래서 당시로는 늦은 23세에 19세의 장보살을 만났다.

60년 결혼생활 동안 서로 존경하며 살았다. 지금까지 서로 존댓말을 쓰고 있는 것만 봐도 노부부의 존경과 사랑을 느낄 수 있다.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이지만 한일해운에 입사한 주 이사장은 성실함과 부지런함을 무기로 총무과장을 거쳐 한일시멘트 전무이사, 한일흥업 대표이사까지 승승장구했다.
한일시멘트에 있을 때에는 여섯개의 레미콘 공장을 설립했다.

당시 어려웠던 시절, 사람들에게 가장 좋은 시주는 직장을 마련해 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주 이사장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에 매진했다.

그리고 가정도 행복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장손인 주 이사장에게 아들이 없었던 것.
딸을 여덟 낳자 주변 사람들이 씨받이를 권하고 조카를 양자로 들이라고 해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나에게 오지 않는 것을 억지로 하지는 않겠다’며.

불심이 돈독한 주 이사장 부부의 삶에선 향내음이 난다. 다른 것도 그렇지만 나누며 사는 것에 있어서 평생 뜻을 함께 해왔다.
주 이사장 부부의 나눔은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을 나눠주는 수준이 아니다. 보통 사람들이 하는 것들도 과감하게 자제하며 아껴서 나눠준다. 그래서 노부부의 삶에는 철저하게 근검 절약이 몸에 배여있다.

1946년 결혼식 모습.
60년을 한결같이 이어온 부부사랑의 열쇠도 근검절약이다. 주 이사장 부부는 그동안 매년 돌아오는 생일은 고사하고 회갑과 칠순잔치도 하지 않았다.
형제자매들은 고사하고라도 슬하에 딸 8명을 둬 사위에 손자 손녀 등 직계가족만 31명인 상황에서 기념일을 그냥 넘긴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 이사장 부부는 매년 고집을 부렸다. 그리고는 잔치를 한 셈치고 그 비용을 모두 보육원과 양로원, 승가원, 연꽃마을등 복지시설에 보낸다.
이제는 자식들도 모두 손을 들었다. 손자 손녀들은 그런 외할아버지를 오히려 존경한다.

주 이사장이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하도 자식들이 성화를 해서 며칠전에 작은집 식구들과 중국음식점에서 식사를 했어요.”
결혼 60주년을 맞는다는 것은 굉장한 경사가 아닌가. 남들은 사모관대하고 가마타고 회혼례를 다시 올리는 등 떠들썩하게 축하하는 것이 다반사다.
그런데도 주 이사장 부부는 회혼을 맞아 작은집 식구들과 식사 한번 한 것을 부끄럽게 생각할 정도로 검약이 몸에 배었다.

자신들에게는 이렇게 인색하지만 주 이사장 부부는 밖에서 불자들을 만나는 일과 교단의 필요한 곳에 도움주는 일에는 아낌이 없다. 오히려 없어서 더 못 주는 것을 안타까워 한다.

주 이사장은 매년 4000만~5000만원을 중앙승가대 학인 장학금과 교수연구비및 불교 문화예술인 지원은 물론 소쩍새마을을 운영하는 승가원과 연꽃마을등 불교 복지시설에 보시하고 있다.

“어떤 사람에게 힘이 되어준다는 것은 좋은 일이죠. 저도 살아오면서 알게 모르게 여러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았습니다. 고마운 분들을 일일이 찾아뵙고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은데 많은 분들이 이 세상을 떠났어요. 그래서 사회에 환원하기로 했습니다. 학인스님을 비롯 불교를 위해 힘쓰는 분들과 어려운 이들을 대상으로 했습니다.”

1972년 원찰인 서울 심원사에서 관응 스님(前 직지사 조실)에게 받은 ‘행원(行願)’이란 법명도 생각했다.
‘사회환원’ 결정을 내린 주 이사장은 노후를 보내기 위해 1972년 4만평의 임야를 매입해 힘겹게 조성한 경기도 용인의 밤나무농장을 미련없이 처분했다.

드디어 91년 2억원으로 중앙승가대 학인들의 장학금과 교수들의 연구비를 지원하는 재단법인 행원문화재단을 만들었다. 행원문화재단은 출연금을 매년 늘려와 현재 8억500만원이나 된다.
현재 주 이사장이 운영하는 아산 레미콘, 서전운수, 개풍시멘트 등에서 나온 이익금을 꾸준히 재단 출연금으로 보태고 있다.

주 이사장에게 행복한 결혼생활의 비결을 물었다.
“살다보면 의견이 다를 때도 싸울때도 있지만 그럴수록 상대의 입장에서 이해해야 한다”며 “60년을 살다보니 서로 눈빛만 봐도 이심전심이 된다”고 말했다.

김원우 기자 | wwkim@buddhapia.com
2006-04-26 오전 10: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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