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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차별 없는 세상' 꿈꾸며 금강산에 오르다
[시방세계]조계종사회복지재단 주최 ‘장애인 세상 나들이’
유엔이 제정한 제26회 세계 장애인의 날을 맞아 불자 장애인들이 금강산에 오르는 특별한 나들이를 다녀왔다. 조계종사회복지재단이 주최한 ‘장애인 세상 나들이’에 참가한 불자 장애인과 가족 40명은 4월 18~20일 북한 신계사와 금강산 구룡연, 만물상 등을 밟으며 남북한이 하나 되기를 발원하듯 장애와 비장애가 차별 없이 공존할 수 있는 세상을 꿈꿨다.


#장애인, 세상 밖으로 나서다

“너무 설레요. 이렇게 멀리 나들이 가는 것은 난생 처음이거든요. 버스타고 가다가 화장실 가고 싶어질까봐 어젯밤부터 물도 안마셨어요.”

만물상에 올라 기쁨을 만끽하고 있는 참가자들


4월 18일 아침 9시 서울 조계사 앞에 모인 불자 장애인들은 가족의 손을 잡고 버스를 오르며 흥분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조계종사회복지재단 산하 경주, 영주, 제천, 강릉 등지의 장애인종합복지관과 구로, 옥수, 신길 종합사회복지관 등 12개 복지관의 1~3급 장애인들과 그 가족들이 이날의 주인공이었다.

북한 금강산 만물상. 전날 내린 눈으로 뒤덮여 있다.


2000년 장애인실태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무려 50만 명의 장애인이 대중교통 이용 시의 불편함 때문에 집밖으로 외출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 달에 5번 이상 외출하지 못하는 장애인이 전체 장애인의 90%이상을 차지하는 현실에서, 이 날의 외출은 더욱 달디 달지 않았을까. 전날 밤잠을 설쳤을 것이 분명한 얼굴들이었지만, 군사분계선을 향하는 7시간 동안 버스 안에서 잠을 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대신 참가자들은 함께 여행에 나선 어머니, 부인, 남편, 자식의 손을 잡고 오래도록 이야기를 나눴다. 임동균씨(간질장애4급ㆍ경주시 황성동)는 “정말로 꿈은 이뤄지는 모양”이라며 “다음번에는 가족 모두와 함께 꼭 다시 오자고 하고 싶다”며 아버지의 손을 꼭 붙잡았다.

19일 금강산 구룡연을 오르는 참가자들


마침내 버스가 군사분계선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4시.

“우와. 여기가 DMZ예요?”

영화로만 봤던 공동경비구역이 눈앞에 펼쳐지자 참가자들 중 막내인 12살 재형이(정신지체2급ㆍ서울시 구로구)가 버스 안에서 외쳤다. 남북한의 허리를 나누고 있는 비무장지대를 통과하는데 걸린 시간은 십 여분 남짓에 불과했다. 하지만 북방한계선을 통과하자 인민군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북한에 왔음을 실감한 참가자들은 신기하고 설레는 표정을 지었다. 첫날을 꼬박 북한으로 넘어가는데 보낸 참가자들은 해금강호텔에서 여정을 풀고 내일을 기약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금강산 신계사에 빈자일등(貧者一燈) 밝혀

20일 오전, 드디어 금강산을 본격적으로 관광하는 첫 날이 밝았다. 참가자들은 첫 일정으로 복원 불사가 한창인 신계사부터 찾았다. 아직 단청으로 장엄되진 않았지만 요사채와 대웅전이 들어서서 사격을 갖추기 시작한 역사적인 현장을 두 눈으로 본 참가자들은 연신 “관세음보살”을 불렀다.

금강산 구룡연을 보고싶어 휠체어에 의지해 이동하고 있는 참가자


조계종사회복지재단 상임 이사 지현 스님도 휠체어를 손수 미는 등 참가자들과 2박3일간 동고동락하며 추억을 나누었다


19일날 비오는 금강산 구룡연을 오르고 있는 휠체어 장애인


참가자들이 일반인의 보폭으로는 스무 걸음 남짓한 거리를 걸어 대웅전에 오르기까지는 30분이 족히 걸렸다. 휠체어가 진입하지 못하는 계단 아래에서부터 장애인을 업고, 안고, 들어 올린 가족과 자원봉사자들의 목덜미에 땀방울이 맺혔다. 목발을 짚고, 다른 사람의 손과 어깨에 의지해 오른 대웅전.

편마비로 인해 좀처럼 모아지지 않는 두 손으로 힘겹게 합장 삼배를 올린 전용언씨(뇌병변 2급ㆍ충북 제천시)는 “드디어 신계사 부처님을 뵙게 되니 너무 좋아요”라며 감격했다.

금강산 신계사 앞에서 참가자 전원이 기념촬영을 했다


힘겹게 대웅전을 올랐지만 부처님을 뵙고 돌아나오는 기분은 뿌듯하다며 웃고 있는 참가자


발원을 담은 연등을 신계사 도감 제정 스님(사진 오른쪽)에게 전달하고 있는 참가자


참가자들은 이어 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아 ‘가족화목’ ‘남북통일’ ‘언제나 건강하게’ 등의 기원과 가족이름을 적은 꼬리표를 연등에 걸며 발원했다. 앞이 보이지 않지만 부인의 도움으로 연등을 밝힌 이계돈씨(시각장애1급ㆍ서울시 구로구)는 “비록 몸은 떠나도 신계사에 올린 등불은 꺼지지 않고 타올라 북녘의 부처님오신날을 밝혔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세상 위에 우뚝 서다

셋째 날, 금강산 만물상에 오르기 위해 숙소를 나선 참가자들이 탄성을 질렀다. 전날 밤부터 내린 비가 밤새 눈으로 변해 금강산의 일만 이천 봉우리마다 내려앉아있었기 때문이다.

한 가족이 몸이 불편한 장애우를 대신해 가족사항과 발원내용을 대신 적어주고 있다.


“잎이 떨어져 바위가 드러난 금강산을 개골산(皆骨山), 눈을 이고 있는 금강산을 상악산(霜岳山)이라고 부른다는데, 저는 한번만 오고도 두 가지 모습을 다 봤으니 행운아인가 봅니다.” 장애인의 몸으로 눈 덮인 산길을 오르기 쉽지 않을 텐데, 김용철씨(지체장애3급ㆍ서울시 구로구)는 긍정적으로 답하며 목발을 짚은 손에 힘을 주었다.

비록 앞은 보이지 않지만 합장한채 예불을 올리고 있는 시각장애인


직접 금강산에 오르고 싶었던 노옥선씨(뇌병변2급ㆍ서울시 성북구)도 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등산길에 올랐다. 뇌졸중으로 쓰러지기 전까지는 누구보다 사찰도 많이 찾고 산에도 자주 올랐다는 노씨는 “이곳까지 와서 금강산을 구경하지 못하면 평생 후회할 것 같다”며 딸을 간곡하게 설득했다. 어머니가 다칠까봐 반대하던 딸은 이윽고 그 손을 꼬옥 잡고 좁디 좁은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어느 때는 앞에서 끌고, 어느 때는 뒤에서 밀며 마침내 만물상에 오른 모녀는 서로를 끌어안고 환히 웃었다. “이제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겨요.”

행사 일정 내내 참가자 옆을 떠나지 않고 동고동락했던 지현 스님(조계종사회복지재단 상임 이사)은 참가자들의 이런 변화에 대해 누구보다도 기뻐했다. “세상과 만나는 기회는 장애인에게 무엇과도 바꾸기 힘든 소중한 것이지요. 그 때문에 용기와 희망을 주고 재활의지를 북돋고자 매년 이 행사를 준비해왔습니다. 내년에는 모금을 해서라도 더 많은 분들이 함께 동참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3일간의 여정을 마치고 북한을 나서는 참가자들은 저마다의 가슴 속에 희망과 용기를 심고 있었다. 장애인의 날도 어느덧 지났지만, 이들의 마음속에 켜진 희망의 등불이 언제까지나 꺼지지 않고 타오르길 기원해본다.
금강산=사진·글/이은비 기자 | renvy@buddhapia.com
2006-04-21 오후 5: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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