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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내가 태어나기 이전에도 사셨고 지금도 사시고 계시고 그 전에도 사셨고, 그렇기 때문에 이 마음이라는 자체는 살아나가는 그 방식에 의해서 관습이 되어서 영 놓을래야 놓을 수가 없이 찌들고 겹겹이 늘어붙은 거와 같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어떻게 하면 그 늘어붙은 거를 다 제거할 수가 있을까 하는 것을 말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바로는, 여러분이 찾아올 때마다 가슴이 메어지는 거와 같고 어떤 땐 나도 짜증이 날 정도로 화가 일어나요. 가슴에서 화가 진짜 일어나는 게 아니라 슬픔으로 인해서요. 나와 더불어 너무 가엾다는 생각이 들고요. 왜냐하면 때에 따라서 어떤 집은 이 병 저 병, 이 애고 저 애고를 다 가지고 있으니, 다섯 식구가 사는데 네 식구가 다 그러니 한 식구가 배겨날 수가 있어야죠. 그런 것도 그렇지마는 어떤 사람은, 전자에 돌아가시기 전에 엄마가 무당이었는데, 돌아가시고 난 뒤에 자기가 무당 노릇을 안 하면 식구가 다 병이 들어서 죽게 되고 그러니까 할 수 없이 한다는 얘길 들었습니다.
그 원인이 어디 있을까요? 어머니로부터 그 습과 착과 타신을 믿는 그런 의식이 남아 있기 때문에 자식들까지도 못 살게 만들어 놓는 것입니다. 그러니 줄창 얘기해 드리지만, 그런 유전성이나 영계성으로 인한 애고라든가 이런 것이 심각한 겁니다, 이게. 직접적인 살림살이, 가정, 내 삶, 여기에 다 있으니까요. 원주에 있을 때, 아까 얘기하던 무당 노릇을 안 하면 식구가 다 입원을 하게 되고 아프고 그러니까 도저히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어 이렇게 하노라고 그래서 그것을 처단해 준 적이 있는데, 그 분은 주인공을 진실히 믿고 거기다 다 맡겨 놨기 때문에 그게 해당이 됐습니다. 그게 해당이 되어서 그런 걸 다 없애고 보니까 자식들이 그때서야 시집 장가를 가는 데 걸림이 없었답니다. 그게 좀처럼 있을 수 있는 일입니까? 이 영계성이란 게 얼마나 기가 막힌 문제이고, 유전성이란 게 얼마나 기가 막힌 일입니까?
부모 뿌리와 자기 뿌리가 동일하게 엮어져 간다는 거는, 전기가 가설이 되어 있는 데는 다 불이 들어올 수 있다고 하는 그런 말을 내가 항상 해왔습니다. 즉, 어머니다 아버지다 자식이다 형제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연결이 되는 겁니다. 그 연결이 되는 자체가 바로 가설이라고 할 수 있는 거죠. 좋은 인과를 가졌다면 선덕이 그렇게 연결이 될 거고, 악행을 했다면 악행대로 악행이 연결이 될 겁니다. 즉 말하자면 지금 사시다가 돌아가시잖습니까? 그러면 돌아가시고 난 뒤에 본다면 지금은 과거죠? 그래서 현실로 무명을 쓰고 다시 이 세상에 나올 때는 미래이자 현실입니다. 아시겠어요? 그러니 삼독이 삼독 속에서 벗어날 줄 모른다 이 소립니다.
그러니 이 가정 살림살이를 하면서 그 삼독을 제거하려면 여기에서 관법을 가르치는 대로 열심히 해야 하고, 그 다음 이차적으로는 관법을 하시되 묘하게 해야 된다 이 소립니다. 진짜로 믿는다면 죽고 사는 걸 개의치 말고 해라 이겁니다. 잘되고 못되는 걸 개의치 말고 해라. 예를 들어서 부모가 자식을 믿는데 잘되든지 안되든지 내 자식이지, 잘되면 내 자식이고 못되면 내 자식이 아닙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또 자식이 부모를 생각할 때 부모가 잘났든지 못났든지 내 부모지, 잘나면 내 부모고 못나면 내 부모가 아닙니까?
그와 같이 내 주인공이라는 것은 수억겁 광년으로부터 바로 진화시켜 가면서 온 바로 선장이며 선장의 근본입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은 잘되면 ‘아이고! 주인공 감사하다.’ 그러고, 안되는 거는 ‘아이고! 내가 주인공을 찾았는데 왜 이렇게 안돼?’ 이러고 등한시하게 되죠. 그게 등한시할 일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죽고 사는 것을 개의치 않고 믿어라 이러는 겁니다. 사람은 한 번 죽지 두 번 죽지 않아요. 믿는 거를 잘되면 믿고 안되면 안 믿는 거는 그건 믿는 게 아니에요. ‘딴 사람들은 믿으면 잘된다는데 왜 나는 안되나. 안되니깐 그까짓 건 믿으면 뭘 해?’ 이거는 도대체 말이 안되는 소립니다. 안되든 되든 가난하든 부자든 간에 자기를 이끌고 가는, 진화시키면서 화해서 돌아가는 그 장본인의 근본이 바로 자기한테 있는데 그것을 안 믿으면 어떡합니까? 그게 자부처자 부처님입니다.
‘부처 가운데 중생이 있다.’ 하는 것은, 이 내 몸속에 수십억의 의식들이 있죠? 내 마음이 부처라면 그 육신 속에 들어 있는 의식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게 다 딴 사람입니까, 어디? 그 한 사람의 작용을 하기 위해서, 살리기 위해서, 끌고 다니기 위해서 모든 의식들이 작용을 해 줘야 다닙니다. 그러니 아주 심사숙고해서 진짜로 믿어야 한다 이겁니다.
첫째, 믿어야 한다. 둘째는 믿는 대신에 안되는 거는 잘 생각을 해서 ‘너만이 할 수 있는 거다. 과거로부터 이렇게 끌고 가는 당신만이 할 수 있는 거다.’ 이렇게 생각을 해서 거기다가 맡겨 놓고 진짜로 믿는 겁니다. 잘되는 건 감사하게, 진정으로 감사하게 거기 맡겨 놓고 말입니다. 셋째는, 자식들이나 형제들이나 부모자식지간이나 부부지간이나 모든 것이 상대가 잘못해서 아주 원망스럽고 그렇더라도 상대를 원망하지 마라 이겁니다. 상대를 원망하지 말고, 상대를 증오하지 말고, 내 탓으로 돌려라 이겁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받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당하는 사람이나 똑같은 깡통이기 때문에, 똑같은 넝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니 제가끔 자기 탓이지 누구 탓이 아닙니다. 그러니 ‘선행을 해라. 악행을 하지 말아라.’ 이러는 것은 악행을 하면 악행이 오고 선행을 하면 선덕이 오기 때문입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느니라.’ 하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그와 같이 그렇게 자기네들이 지어놨기 때문에, 콩은 콩끼리 만나고 팥은 팥끼리 만났기 때문입니다. 당하는 놈과 그렇게 하는 놈이 없으면 당하지를 않게요? 그럼 고통이 없게요?
이 세상 천지를 다 보세요. 넓게 보세요. 항상 내가 얘기하죠? 상점에 가도 끼리끼리 놔져 있고, 사람들을 봐도 끼리끼리 살고 있고, 산은 산대로 있고 물은 물대로 있단 말입니다. 천차만별이 다 끼리끼리들 놓여 있습니다. 사람은 다섯 식구가 살든 세 식구가 살든 인연이 돼서 이렇게 살아도 자기가 왜 이렇게 가난한지, 왜 이렇게 업보가 많은지, 그거를 모르고 있어요. 왜 저놈이 저렇게 속만 썩이고, 저 애가 왜 저렇게 나를 잡아 먹지 못해서 애를 쓰나 이렇게만 생각하지 과거에 그런 인연으로 인해서 같이 만난 거를 모르거든요. 그래서 박씨에서는 꼭 박이 나오고, 호박은 호박씨가 호박을 이루죠?
그와 마찬가지로 이 세상 돌아가는 게 전체가 다 팔만대장경입니다. 천차만별로 그렇게 돌아가는 것이 다 누구의 탓입니까. 자기가 벌여 놓고 자기가 거둬야 하고…. 선행을 하면 선덕이 오는데, 선덕을 하고 가다가 보면 악행도 할 수 있게끔 되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다 가르친 뒤에 끄트머리에 가서 “악과 선을 다 놔라.” 이랬습니다. 선덕을 하게 되면 악행도 하게 되고 악행을 하게 되면 선덕도 하게 되니까, 이 양면을 다 놔야 그 굴레에서 벗어나느니라. 이 길로 가기만 하는 게 아니라 갔다가 되돌아 오는 길이 있으니까, 돌아오는 길과 가는 길을 다 놔라 이 소립니다.
그래서 끄트머리 셋째에 모든 걸 자기 탓으로 돌려라 했는데, 그것도 모든 걸 묘미 있게 지혜 있게 해야 됩니다. 왜냐하면 이거를 감사하게 놓고 돌려서 놓고 이러란다고 그냥 그것만 또 그러지 말고 내 스스로 마음을 발전을 시켜라 이겁니다. 한생각 내란다고 그냥 좋게 생각을 해서 놓는 거는 놓는데, 내 마음이 스스로 발전을 이룩한다 하는 것은, 때에 따라서는 그냥 그 시기가 익어지면 그대로 아주 생각이 넉넉하고 상쾌하게 그냥 저절로 여기서 나오게 됩니다.
그런데 사람이 살아나가는 데는 마음들이 관습에 젖어 가지고 요것도 걸리고 조것도 걸리고 죄 걸립니다. 그 왜 걸리는 줄 아십니까? 모두 그 습들을 떼지 못해서 그럽니다. 이사를 가려면 날을 봐야 된다는데, 날짜를 봐야만 산도 만진다더라, 또 날짜를 봐야만 장을 담근다더라 하는 요런 관습이 많죠. 그저 그냥 자기가 좋은 날, 노는 날, 하는 일이 없고, 그러면 되는데, 벌써 뭘 하려면 그 생각부터 떠오르는 겁니다. 이게 관습입니다. 사람이 살아오는 동안에 나쁘고 좋은 걸 따지면서, 자기가 따지지 않아도 될 거를 따져 가지고 생각을 내 가지고 긁어서 부스럼을 만들어 가지고 하기 때문에 일이 그렇게 벌어지는 겁니다. 자기 생각이 그렇게 만들어 벌여 놓고선 ‘아이고! 그냥 하니까 일이 생기더라.’
이러는 겁니다, 이제. ‘예방을 안 하고 날짜를 보지 않고 그냥 했더니 일이 생기더라.’ 이런 거는 자기 생각이 먼저 그렇게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이 생각이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그래서 내가 지난번에도 얘기했죠. 한생각을 잘하면 모든 거를 다 얻게 되고, 한생각을 아주 몽땅 쉬게 되면 역대의, 과거 현재 미래 삼세의 모든 삼독을 그냥 제거시킨다 이겁니다.
어떤 때는 여러분이 그냥 용건만 얘기하고 돌아갔으면 좋겠는데 아무리 얘기를 해도 그 도리를 모르니까, 갈팡질팡하면서 얘기를 내놓는데 “이것도 그렇고, 이것도 그렇고, 이것도 그렇고.” 이러는 겁니다. 그걸 보면 “응, 공부한 지 몇 달 안되었구나.” 하고 그러기는 해요. 하지만 아무리 몇 달이 안되었다 하더라도, 그렇게 목도 아프고 나 피곤한 거 다 비켜 놓고, 여러분이 애처롭게 그렇게 하는 것이 너무나 아파서, 앉으나 서나 생각하고 앉으나 서나 얘기해주고 앉으나 서나 행을 하고 있는데, 어쩌면 태평하기가 그렇게 만사 태평일 수가 있습니까? 그리고 나를 위해서 하는 게 아닌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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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깁니다. 짧은 거는 이 무명이 짧다 이 소립니다. 이 고통 속에서 모두 허덕대는 것을 보는 그것도 죄입니다. 아무리 벗어났다 하더라도 보는 놈과 당하는 놈이 마찬가지입니다. 나만이 혼자 돌아가는 게 아니거든요. 전체가 더불어 같이 돌아가기 때문에 역시 나도 마찬가집니다. 그러니 처음 오신 분이 있건 줄창 오시던 분이 있건 자꾸자꾸 지혜를 넓혀서 마음을 개발하고 마음의 발전을 위해서 나아간다면 바로 현실의 생활 속에서 나옵니다. 그 발전하는 마음이 현실 속에서 나옵니다. 삼라만상 대천세계에 이 일체 만물만생이 다 어디서 나온 겁니까? 마음으로부터 나온 겁니다.
옛날에 이런 예도 있었습니다. 신라 때 어떤 젊은 화랑 둘이 아주 의형제를 맺어 가지고 절친하게 지냈답니다. 그런데 그 두 사람은 지식과 학식을 풍부하게 쌓아서 아주 내로라 하는 사람들이었답니다. 그런데 둘이서 앉아서 이렇게 생각들을 했답니다. ‘우리가 지식과 학식은 충분하지만 정신계의 발전을 못했으니까, 우리가 이 정신계의 발전을 시키지 못해서 방향을 모르니 나라를 위해서 결사적으로 하려고 했던 것을 우리가 할 수가 없고 그 소원을 이룰 수가 없다. 그러니까 산으로 다니면서 들로 다니면서 아주 모든 걸 능가할 수 있는 스님을 만나 뵙도록 하자.’ 해서 나섰습니다. 나서서 돌아다니다가 돌아다니다가 보니까 어느 노스님 한 분이 밥을 바가지에다가 얻어다가 자시고 계시더랍니다.
그래서 “스님, 그 목도 마르실 것이고 물도 없는데 어떻게 여기서 이렇게 노인네가 잡수십니까?” 하니까 “젊은 자네들이 올 때를 기다리고 있었네. 물 떠다주길 바라고….” 허허허, 그러더랍니다. 그래 한참 내려가서 물 한 그릇을 떠다가 드리니까 “잘 먹었다” 하면서 다섯 가지 말씀을 해 주더랍니다. “지금은 세월이 세월이니 만큼 다섯 가지 계법을 너희한테 내가 일러줄 테니 그대로 진행하면 되느니라. 이 마음 속에, 이 지금 내면 속에 선을 세워 놓고 나라에 충성하는 마음을 딱 담고 너 아닌 너한테 맡겨라. 부모한테 효도하는 마음도 또 맡겨라. 니 몸뚱이가 그 집 아들이 아니라 진짜 너가 그 집 아들이니라. 또 셋째는, 친구들을 만나되 도의, 의리, 진정한 마음으로써 사귀라. 진정한 마음으로 사귈 수가 없다면 한데 뭉칠 수가 없다.
그리고 넷째는 모든 일들을 하되 딴 사람을 탓하지 말고, 화랑이니까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고 할 때 사람들이 잘못하는 일도 있고 그럴 때에 너그럽게, 모른다 할지라도 네 탓으로 생각하고, 몰랐을 때 네 모습으로 생각하고 진정으로 사랑하면서 이끌어 가거라. 다섯째, 너희들이 먹을 수가 없으면 싸울 수도 없고 살 수도 없고 그러니까 짐승들을 죽이되, 말이나 돼지나 개나 닭이나 이런, 인간들 가깝게 있는 것들은 죽이지 마라.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죽일 때는 너희가 먹을 만치만 죽여라. 그리고 살생을 하되 봄, 여름은 지나서 살생을 해도 해라.” 그렇게 다섯 가지를 줬답니다.
그래서 그 두 화랑은 다시 나중에 여쭤봤더랍니다. “네 가지는 다 알아듣겠는데, 어째서 다섯째 살생을 하되 먹을 만치만 하고 여름과 봄은 제해 놓고 하라 하십니까?” 이러고 물었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말씀하시기를 “여름과 봄은 새끼들을 낳아서 모두 기르는 때가 아니냐? 그러니 살생을 하되 새끼를 가지지 않았을 때 하고 또 먹을 만치만 하라는 것이다.”
이렇게 다섯 가지의 계를 주면서 하시는 말씀이 “시대에 따라서 시대의 환경에 따라서 너희들 그릇을 봐서 계를 주는 거지 이거는 계가 고정돼 있는 게 아니니라. 시대에 맞춰서 너희들이 어떠한 일을 할 줄 알고 내가 너희들한테 계를 주느니라.” 이렇게 말씀하셨답니다. 그 두 화랑은 거기에서 조금도 그 스님의 말씀을 헛되이 듣지 않고 실천을 하면서 그 모든 사람들을 모으고 또 훈련을 가르치고 이렇게 해서 나가면서 그 삼국을 통일하는 데 아주 여러 모로 다양하게 기여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 마음을 아주 진실하고 정직하게 써야 합니다. 근데 정직하라고 했다고 끼었다 뺐다만 하는 게 아니라 좀 넓게 지혜롭고 이익하게 거짓말하는 거는 이익한 지혜지 그건 거짓말이 아닙니다. 그러니 여러분네 가정에 모든 지혜와 그 진실된 믿음, 그리고 요량, 그리고 남을 증오 안 하는 그 마음, 그 마음이 제일 중요합니다. 그래야만이 모르는 사람도 내 모습으로 알고, 악한 사람도 내가 전자에 살 때 악했던 그 모습으로 본다면, 가정이 화목하고 형제가 화목하고 아마 다 화목을 가져올 겁니다. 이렇게 해 나간다면 국가 질서도 그렇고 사회 질서도 그렇고 아마 세계도 그렇게 평등하게 나갈 겁니다. 그렇게만 하신다면 자녀들도 남한테 가서 폭력을 쓰래야 쓰지도 않을 거고 나쁜 일을 하래야 하지도 않을 거고 나쁜 일도 당하지도 않을 거고 폭력을 당하지도 않을 겁니다.
보이지 않는 데서부터 보이는 데로 일체 천차만별이 다 나오는 겁니다. 안 보이는 데서 나오기 때문에 막을 수가 없는 거죠. 여러분이 내일 일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있다가 있을 일도 모르지 않습니까. 근데 모르는 길을 가면서도 내가 여기를 진짜로 믿는다면, 나를 이끌어 가는 나 자체의 주인공을 진짜로 믿는다면, 선의 주인공을 진짜로 믿는다면, 자기가 죽을 데로 끌고 가질 않습니다. 또 그렇게 죽기를 원하는 사람은 죽을 데로 또 끌고 갑니다. 그러니까 자연적으로 그대로 믿어야지 되겠죠.
진짜로 믿어야 마음의 발전도 이룩할 수 있고, 내 가정도 이룩할 수 있고, 세세생생에 다 이룩할 수 있어서 항상 마음이 밝아서 자식들의 뿌리도 밝게 불을 켜 줄 수가 있고, 부모 조상들에게도 불을 켤 수가 있어서 이 세상에 다시 천도가 돼서 나올 때도 조금도 어김없이 선행과 그 모든 보살행을 그대로 적절히 해 나갈 수 있는 그런 사람으로 이 세상에 탄생할 것이며, 더 나아가서는 여러분이 공부를 진짜로 해서 돌아가신 부모들도 둘 아니게끔 생각을 하신다면 바로 정신계의 어버이로서 이 세상에 출현할 겁니다,
아마. 이 삼독을 면하면 말입니다, 삼세의 부처님의 마음이 한마음이 됩니다. 한마음으로 모아서 됩니다. 그러니 한마음인데 어찌 여러분의 마음이 하나라고 하겠습니까? 모두가 같이 마음이 찰나찰나 전달을 하며 돌아가는데 어찌 이게 불가사의한 법이 아니라고 볼 수 있으며 묘법이 아니라고 볼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어떠한 말이라도 아주 생생히 진짜로 믿고 얘기할 데는 거깁니다, 거기! 아, 얼마나 좋습니까? 빽이 여기 있고, 항상 부처님 마음에다가 진짜로 얘기할 수 있는 거는 바로 자기 선 주인공입니다. 거기다가 그렇게 얘기를 해놓으면 일체제불의 그 한마음이 동시에 나투어 주신다 이겁니다.
‘동시에 천백억화신으로서 나투어 주신다’ 하는 뜻은 뭐냐 하면, 그 하나의 보살이 하는 게 아니라 하나의 마음이 보살로 화해서, 아픈 사람에게는 약사가 돼서 한마음이 돼 주고 또 무슨 일이 벌어졌다 하면 독성이나 산신이 그냥 한마음으로 돼 주고, 또 죽어서 좋은 데로 못 가서 거기다가 고하고 그냥 ‘너밖에는 할 수 없다’하는 그 마음으로 진실히 믿는다면, 진실하게 믿고 그렇게 행해야 되겠죠? 그렇게 하는 사람은 삼독이 다 없어지는 거니까. 그렇게 해서 거기다 놓으면 지장의 마음이 거기 한마음이 돼 주고 그러는 겁니다. 이러니깐 뭐 궁색할 데가 하나도 없어요. 모두가 궁색할 새가 하나도 없죠.
그래서 그렇게 한다 해도 죽는 것은 받아들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과거에 자기가 태어날 때 벌써 그렇게 태어났으니까. 그거는 법에서 10년 징역을 받았든 20년 징역을 받았든 일단 받은 거는 채워야 되는 그런 거와 똑같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다가도 진실하게 참, 어디에도 모범적이고 어디에도 잘할 수 있다면 징역 20년 받았던 게 15년으로도 될 수 있고 10년으로도 될 수 있는 거죠. 그러니까 앞으로 또 다가올 수 있는 문제들을 해소하려면 전자의 묵은 빚을 다 갚아야 된다 이겁니다. 유전성을 다 없애고 영계성, 세균성, 업보성 이 모두를 다 그냥, 삼독을 몽땅 다 제거해야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살아생전에 죽은 세상 산 세상을 마음으로다가 오고 감이 없이 오고 가면서 작용을 하는 것이 바로 자유인이다 이 소립니다. 그러니 그 어떠한 고통이 있다 하더라도 진실히 믿고 ‘저 스님이 저거 거짓말 아니야?’ 이렇게 생각하지 마시고 ‘내가 스님을 꼭 만나서 얘길 안 해도 스님의 마음, 일체제불의 마음이 다 내 한마음으로 응해 주시니까, 될 수 있다.’라는 것을 신임하고 믿고 그냥 밀고 나가는 그 힘이 바로 여러분을 자유스럽게 만드는 겁니다. 여러분이 힘을 기르려면 그렇게 실험을 해 봐야 되는 거다 이 소립니다. 육신은 있다가도 없어질 수 있고 그런 거니깐 길지가 못해요. 그러니까 여러분의 육신이나 내 육신이나 없어지기 전에 열심히 해서 그렇게 하십시다, 우리.
이 하늘이 깨지고 지붕이 갈라지고 온통 자식이 그냥 죽고 남편이 급사를 하고 그런다 해도 능히 눈 깜짝 안 한다면 그거는 다 헛것이에요. 그런데 그런 마음이라면 그렇게 될 수도 없죠. 허허, 그렇게 믿을 수 있는 마음이라면 항상 밝아서 걸림이 없이 물들지 않을 겁니다, 아마.
▲신도1(여) : 스님, 이 사람이 결혼한다고 인사 왔습니다.
▲스님: 그래요. 아주 행복하게 살아요. 이게 결혼도 그래요. 그저 만났을 때만 좋아서 이러지 말고 꾸준히, 네가 잘못했으면 내가 돌보고 당신이 잘못했으면 내가 돌보고 싸고, 서로 말을 해서 의가 상할 것 같으면 저 말을 했다고 하고 이렇게 좋게만 연결하고, 그저 못났던 내 모습으로 보고서 감싸고 이익을 보지 않는 사랑을 할 수 있다면 정말이지 잘 살 수 있는 겁니다. 그리고 행복할 겁니다. 그런데 이건 부부지간에도 이익을 생각한단 말입니다. ‘니가 잘하면 내가 잘하지만 니가 못하는데 내가 잘할 줄 알고?’ 이러거든요. 그러니 그런 생각일랑 아예 마시고, 우리가 이 무명을 쓰고 살면 얼마나 산다고 그렇게 독하게 삽니까. 독하게 살지 맙시다, 이 세상에.
그러니 나는 모르니까, 처음 왔으니깐 뭐 어쩌고 저쩌고 이유가 붙지 않고 그 관법을 그대로 밀고 나가서 해 보신다면 뭐 이렇든 저렇든 알 바가 있을 것입니다. 내 거짓말 안 합니다!
※위 법문은 1994년 4월 2일 법회에서 설법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한마음선원 홈페이지(www.hanmaum.org나 한마음선원)에서도 같은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