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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작품에 내가 의도하는 복선은 전혀 없습니다. 그냥 나오는 겁니다. 주인공이 움직이는 것에 따라서요. 주인공이 웅크리고 있으면 저도 하릴없이 기다립니다.”
글을 쓸 때 캐릭터를 중시한다는 문 작가는 어느 순간 가슴 속에 똬리를 틀고 들어앉은 주인공이 활개를 펼 때까지 생각에 생각을 더하는 작업만 한다고 밝힌다. “내가 없어져도 내가 만든 주인공들은 영원히 살아남기를 바란다”고 할 만큼 문 작가가 주인공에게 가지는 애착은 크다.
“이번 소설은 구운몽에서 주인공이 하늘에서 죄를 짓고 내려오는 모티브만 따왔다”는 문 작가는 “인간세상으로 쫓겨나기 싫어서 도망 다니고 뇌물을 쓰고 8도사와 싸우는 등 비열하기까지 한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인간 내면의 전형적인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고 소설의 속살을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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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혁명의 전쟁 한 가운데로 아기의 모습도 아닌 20살 성인의 모습으로 벌거숭이가 되어 떨어지는 성진은 인간세상에서 양소유 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게 된다. 천상의 일을 그대로 기억한 채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 전쟁의 한복판에 버림받은 것에 대해 하늘을 원망하는 주인공. 그가 살아가는 세상은 현재 세상의 축소판이다.
소설 <연적>은 동학혁명이라는 이름 하에 죽어간 30만, 아니 비공식적으로 100만 명에 달한다는 이름모를 민초들을 위한 진혼곡이기도 하다. “정면으로 위로하기보다 정반대로 해학적이고 우스꽝스럽게 접근해 위로하고 싶었다”는 것이 문 작가의 고백이다.
<연적>에는 역사적 인물들도 나온다. 녹두장군 전봉준을 비롯해 대원군 등이 이야기의 커다란 걸개를 구성한다면 주인공 성진ㆍ양소유를 통해 인간 내면에 자리한 야비하고 비열한 인물상을 겉으로 드러내 근본적인 구원의 문제를 다루고자 했다.
이번 작품은 2004년 2월부터 쓰기 시작했다. 구상은 소설을 절필했던 10여 년간 꾸준히 계속해 왔다. 작업에 몰두하고자 중국 북경에서 2달간 머물기도 했다. “단 한 줄도 못 썼어요. 매일 하루 2시간씩 중국어 배우고 하루 종일 중국어의 홍수 속에 살다 보니 생각이 나질 않더군요. 역시 작가는 모국어 문화권에서 모국어로 말하고 모국어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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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적>을 쓰는 동안 10kg이 넘게 빠졌다. 뭔가에 집중하고 있으면 물만 먹게 된다는 문 작가가 물로 연명하며 글을 써내려갔다.
“문학 예술 수행 일상생활에 이르기까지 궁극의 문제는 구원입니다. 이 자리에서 어떤 형식 어떤 모습으로 구원이 올 것인가. 여기에 존재하며 동시에 없고 세상 어디에나 있는 그 구원을 찾고 싶었습니다.”
전형적인 인간의 내면의 모습과 사랑 그리고 구원을 다룬 소설 <연적>에 대해 “가장 불교적인 내 생각을 담은 작품으로 사랑 그 자체를 통해 깨달음을 얻는 것”이라고 설명한 문형렬 작가는 198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소설로 등단해 신춘문예 4관왕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며 시 소설 등을 넘나드는 작품세계를 펼쳐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