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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간 종무행정의 수장직을 맡아 천태종을 키워 온 운덕 스님의 뒤를 이어 천태종 발전의 새로운 계기를 이룩해야 할 큰 짐이 정산스님의 어깨에 지워진 것이다. 오랜 기간 수장직을 맡아 오던 분이 자신의 세력과 공로를 방패로 하지 않고 새로운 계기를 열어주면서 물러나는 모습을 보이고, 장기 집권 뒤에 오는 교체의 어려움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진통을 겪지 않으면서 새로운 수장을 선출했다.
조계종이 한국불교의 큰 맥을 이어오는 거대 종단으로서 가장 큰 교세를 지니고 부동의 불교 제 1종단의 위치를 지키는 상황은 앞으로도 상당한 기간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그 큰 교세와 함께 긴 역사를 통해 쌓여온 많은 문제점도 함께 지니고 있기에 조계종의 변화는 그만큼 상대적으로 굼뜰 수밖에 없다. 천태종과 같은 새로운 종단은 이에 비해 새로운 조직과 신행방식을 쉽게 도입할 수 있고, 그러한 것이 그 급속한 성장의 힘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고 하겠다.
반면 비교적 짧은 기간의 성장에는 그 이념의 깊이와 사회적 역할의 측면에 피치 못할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는 것도 부정하기 힘든 일이다. 외적인 성장과 위상의 상승에는 그에 비례하여 끊임없는 이념의 심화와 사회적 역할의 증대가 필요하다. 천태종이 사회적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지 못한채 정체되고 있다는 내외의 지적은 한편으로는 천태종의 상승된 위상을 반영하는 것이며 동시에 그에 걸맞는 이념의 심화와 사회적 역할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겠다.
관음정진을 중점적으로 하는 일상의 수행법과 재가신도들이 중심이 되는 투명한 사찰운영, 불교대학 설립을 통한 인재양성 등, 천태종은 건강한 종단을 이루기 위한 기본을 착실히 갖추고 있다. 이제 개인적 기복과 사회적 회향까지가 조화로운 이념아래 통일적으로 체계화되고, 그것이 합리적이면서도 강력한 지도력을 바탕으로 힘있게 추진되어 한국불교에 천태종이 있다는 것을 크게 외쳐야 할 때이다. 새로운 천태종의 수장 정산 스님이, 그 동안 쌓여 온 천태종의 저력을 새로운 비젼으로 이끌어, 이시대의 진정한 대승종단 천태종으로 우뚝 세우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