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산시성 시안(西安)은 수당 시대 중국에서 구동역정의 뜻을 품은 구법승들의 주 무대였다. 시안은 고대 중국 13개 왕조의 도읍지로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은 물론 ‘불교문화 전파의 터미널’과도 같은 곳 이었다. 4~14세기 말까지 중국에서 활동한 구법승은 수 천에 이르며 고증된 구법승만도 300여명에 달한다.
시안 및 종남산 일대에서 활동한 구법승은 약 60여명 정도로 추정되며 대표적인 고승으로는 혜초, 균여, 원광, 원측, 자장, 혜통 등이 있다. 이들 구법승들의 관련 유적으로는 흥교사, 화엄사, 자은사, 천복사 등과 미확인 사찰 및 유적지를 포함해 10여 곳에 이를 것으로 학자들은 내다보고 있다. 때문에 이곳은 가는 곳마다는 한국 구법승들의 고귀한 발자국이 아직도 역력하게 느껴진다.
시내 동남쪽 24㎞ 지점의 교외 야산 기슭에 있는 흥교사(興敎寺). ‘호국흥국사’라고 씌어진 벽돌 정문을 들어서면 고색 짙은 대웅전이 나타난다. 안에는 금동와불상을 비롯해 중국 특유의 불상들이 눈길을 끈다. 눈길 끄는 것은 미얀마에서 보내온 높이 30㎝ 가량의 백옥좌불상이다. 금칠한 가사를 입힌 작은 체구의 불상. 한국의 그것과 비교해 비교적 통통한 얼굴이지만 청아하기 이를 데 없는 불상이다.
대웅전을 나서면 오른쪽 벽돌담장 너머 숲에 싸인 고탑 3기가 모습을 드러낸다. 가운데 우뚝 솟은 탑이 높이 23m의 현장탑(일명 삼장탑)이고 오른쪽은 규기탑(窺基塔), 왼쪽은 원측탑(圓測塔)이다. 원측탑은 5층 현장탑 보다 훨씬 낮은 3층 전탑이며 그 주인공은 신라 왕손 출신으로 불학에 일가견을 이룬 원측(613~696) 법사다. 1층 탑신 안에는 법사의 상이 모셔져 있다. 원측은 15세 때 중국에 들어가 서안에서 고승들로부터 수학한 다음 현장법사를 도와 많은 경전을 번역함으로써, 법상종 비조의 한 사람이 되어 불교의 동방전파에 기여했다. 또 원측은 <유식논서십권> 같은 명저들을 남긴 유식학 대가로도 잘 알려져 있다.
구역시대 대표적 역경승 구마라집의 사리탑이 있는 초당사(草堂寺). 한국 출신 구법승으로는 신라의 범수가 초당사에서 <신역화엄경찬소>를 저술했다고 전해진다. 범수는 청량징관과 규봉종밀이 활동하던 시대에 입법구당했던 인물로 <후분화엄경> <관사의소>를 신라에 유포했다. 이외에도 신라의 증관이 이곳에 주석했다고 한다.
서안 시내에 위치한 자은사와 천복사도 구법승 유적지로 빼놓을 수 없는 명찰이다. 이 사찰은 각각 높이가 40m가 넘는 대안탑과 소안탑이 있어 현재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자은사와 천복사는 현장의 문하였던 승장, 신방, 지인, 순경 등이 주석했고, 원측 또한 상당 기간 이곳에 머물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 의정은 측천무후의 지원을 받아 천복사에서 <대당서역구법고승전>을 저술하기도 했다. <삼국유사> <승전촉루조>의 기록에 의하면 원측의 제자였던 승장이 천복사에서 역경에 종사했고 혜초도 인도 여행을 마치고 이곳에 머물었다고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