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갑산 불갑사(佛甲寺)는 백제불교의 초전법륜지로 알려져 있다. 백제 침류왕 때 인도스님 마라난타가 서해를 건너와 불교를 전하고 한산(지금의 서울)에다 절을 짓고 10명을 출가시켰다. 그 후, 자신이 첫 발을 내디딘 바닷가 가까운 곳에다 절을 세우고 ‘불교 전래 첫 절’이라는 의미로 ‘불갑사를 창건했다고 후인들은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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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불갑사는 중창 불사가 한창이다. 불사는 조선 중기인 1741년에 기록된 사적기를 근거로 5개년 계획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영광군의 불갑산 도립공원 개발공사까지 겹쳐져서 안팎으로 어수선하다.
불갑사 주차장에 내리면 두 그루의 늙은 느티나무가 서 있다. 지금은 사람들의 눈길도 받지 못하는 처지로 전락했지만, 불갑사의 중창주인 각진국사가 심었다고 전해지는 역사 속의 노거수이다. 그 중 큰 나무는 자연석으로 된 널찍한 제상까지 놓고 오랜 동안 마을 당목으로 모셔왔는데, 지금도 금줄이 쳐져 있다. 그러나, 주변이 주차장과 도로로 개발되는 바람에 생육환경이 열악하기 그지 없다. 목신(木神)에 대한 대접이 말이 아니다.
근래 세운 불갑사 일주문은 보기 드문 눈맛을 보여준다. 근래 일주문 불사는 대개 미주산 수입목(홍송)을 쓰지만, 불갑사 일주문은 우리 땅에서 자란 느티나무로 기둥을 세웠다는 점에서 한번 더 바라보게 된다. 자연성을 그대로 살린 Y자형 느티나무 2개는 우람한 몸집도 그렇거니와 표면에 나타난 나무결이 오묘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사천왕상은 국내 제일의 규모를 자랑하는 거상으로, 제작 연대는 조선 중기로 알려져 있고, 재질은 은행나무라고 한다. 은행나무는 ‘화두목’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데, 이것은 ‘불을 먹는 나무’쯤으로 해석할 수 있다. 즉, 은행나무는 불에 강한 성질이 있어서 불이 나면 줄기에서 물을 뿜어 불을 끈다는 이야기가 있다. 물론 살아있는 은행나무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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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380호인 대웅전은 다포를 놓은 팔작집으로, 앞면의 꽃살문이 화려하다. 단청을 칠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고색은 없지만, 까치가 조각했다는 전설은 사뭇 애절하다. 대웅전의 또다른 특징 가운데 하나는 좌우 옆면에 토벽이나 판벽이 아닌, 문창호를 낸 것이다. 삼존불 좌우 기둥에 두 마리 쥐가 조각되어 있다. 밤낮을 상징하는 흰쥐와 검은 쥐는 세월은 유수와 같으니 쉬임없이 정진하라는 의미이다.
불갑산은 우리나라 식물생태에 있어서는 의미가 큰 산이다. 난대림과 온대림이 만나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특히 참식나무와 같은 일부 난대수종이 이 산에 이르러 더 이상 북진하지 못하고 북한계 숲을 만들어 놓고 있다.
경내를 나오면 저수지와 동백골을 지나 해불암으로 가는 산행로가 나 있다. 굳이 산중을 헤집고 다니지 않아도 이 산행로 주변에서 다양한 나무들을 만날 수 있다. 총 52과 186종이나 되는 나무들이 분포되어 있는 걸로 보고서에 나타나고 있다. 그 가운데 참식나무와 비자나무 등이 특징적으로 손꼽힌다.
참식나무 군락은 불갑사 뒷산과 덫고개 계곡에 있다. 불갑산의 참식나무가 특별한 것은 이곳이 북한계이기 때문이다. 즉, 섬을 제외하고는 불갑사 위쪽으로는 자생하는 참식나무가 없다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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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식나무는 녹나무과의 상록활엽수이다. 높이는 보통 10미터까지 자라지만, 북한계 선상에 있어서 불갑산의 참식나무는 키가 작은 편이다. 잎 안쪽에 흰털이 있어서 바람이 불면 잎의 뒷면이 하얗게 드러난다. 늦가을에 황갈색의 작은 꽃이 피고, 이듬해 가을에 열매가 붉게 익는다.
불갑사 참식나무에는 아름다운 전설이 깃들어 있는데-. 신라 때 법명이 경운이란 스님이 인도에 유학하고 있었다. 스님의 출중한 인물과 학덕에 반한 인도 공주가 짝사랑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부왕의 반대로 사랑을 이루지 못하자, 공주는 귀국하는 스님에게 내세의 인연을 기약하는 증표로 참식나무를 주었는데, 스님이 가지고 와서 절 주위에 심은 것이 퍼져 오늘날의 숲이 되었다 한다.
비자나무 역시 따뜻한 해풍을 좋아하는 난대성 나무이다. 절집에서는 백양사 비자나무숲이 유명해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지만, 생태적 가치로는 그곳의 비자나무 숲 못지 않다. 그것은 백양사의 숲이 인공적으로 조성된 데 비해 이곳의 비자나무 숲은 자생숲이기 때문이다.
생태학자들이 불갑산의 비자나무를 주목하는 이유는 씨앗이 떨어져 자연 발아한 어린 비자나무들이 계속 올라오고 있기 때문이다. 낙엽활엽수와 경쟁을 하며 후계림으로 성장해 내륙에서는 보기드문 천연비자림이 생겨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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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환자(無患子)나무는 군락을 이루고 있지는 않지만, 불갑사 주위에 스님들이 심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여러 그루의 무환자나무가 튼튼하게 잘 자라고 있다. 인도에서는 무환자나무의 속껍질에 표면활성제가 들어 있어서 세제(洗劑)로 사용되었고, 중국에서는 도교(道敎) 사람들이 무환자나무 열매에 벽사의 힘이 있다고 즐겨 심었다. 인도-중국을 통해 우리나라로 들어와서는 무환자나무의 까만 열매로 염주를 꿰면서 불교의 나무가 되었다.
불갑사는 바다가 가까워서 같은 위도 상에 있는 내륙의 어느 절보다 봄이 이르다. 봄이 이른 만큼 꽃들도 앞서 핀다. 눈 속에 피는 변산바람꽃, 노루귀, 중의무릇, 복수초 등을 비롯해 보춘화, 남산제비꽃, 꿩의바람꽃, 만주바람꽃, 현호색, 산자고, 고깔제비, 왜제비, 털괭이눈 등이 이른 봄부터 꽃을 피워낸다.
변산바람꽃은 여러해살이풀로, 함부로 해외에 반출할 수 없는 한국특산식물이다. 주로 남부 해안지방에 분포되어 있으며, 낙엽활엽수 숲 주변에서 많이 관찰된다. 미나리아재비과의 여러해살이풀로 유독성 식물이다. 이른 봄에 꽃잎이 5장인 흰 꽃을 피우는데, 청초하기 이를 데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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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루귀는 잎보다 꽃대가 먼저나와 꽃을 피우는 여러해살이풀이다. 햇볕이 잘 들지 않는 숲 속에 주로 자라며, 뿌리와 줄기가 옆으로 비스듬히 누워 자란다. 꽃은 흰색이나 연한 분홍색이며, 긴 털이 나 있다. 강인한 생명력을 갖고 있어서 사찰 조경에도 잘 어울리는 우리 꽃이다.
중의무릇은 백합과 여러해살이풀로, 중국과 일본에도 분포하지만, 우리나라가 원산지이다. 불갑사 산행로 주변에서도 많이 관찰된다. 이른 봄에 여러 줄기의 꽃대가 올라와 노란꽃을 한송이씩 피운다. 꽃잎과은 6개씩 달리며, 해볕 아래에서는 열리고 어두운 곳에서는 오무린다.
보춘화는 남부지방에서만 볼 수 있는 여러해살이 난이다. 봄에 일찍 꽃 피운다고 하여 ‘춘란(春蘭)’이라고도 하고, 산지에서 자란다고 하여 ‘산란(山蘭)’이라고도 한다. 절에서 즐겨 기르기도 하고, 스님들이 시재(詩材)로도 자주 쓰는 난이다. 바람개비같은 꽃받침 안에 분홍색 꽃은 청초함 그대로이다.
산지와는 달리 인간의 간섭지대인 경내에는 광대나물, 흰민들레, 주름치마, 냉이꽃, 꽃다지 등이 주종을 이루며 꽃을 피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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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갑사의 꽃을 이야기하면서 꽃무릇을 빼놓을 수는 없다. 불갑사는 고창 선운사와 함께 꽃무릇으로 소문난 절집이다. 석산이라고도 하는 꽃무릇은 금어(金漁)스님들이 탱화를 그릴 때 뿌리를 찧어서 탱화 겉에 바르면 색깔이 바래지 않는다고 해서 전통적으로 사찰 주변에 많이 심었다고 한다.
꽃무릇은 불갑사 경내외는 물론 정상으로 가는 등산로 주변 곳곳에도 엄청난 면적으로 군락을 이루고 있다. 당국에서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몇 해에 걸쳐 폭력적(?)으로 심은 까닭이다. 그 바람에 불갑사 경내외 숲자락에 다양했던 초본들이 점차 사라져 가고 있다.
특히 진노랑상사화, 붉노랑상사화, 뻐꾹나리, 꿩의바람꽃 등과 같은 우리 특산 희귀식물들이 당국의 폭거를 견디지 못하고 사라져가고 있어서 뜻있는 이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 안타까운 것은 불갑사 관광지 개발 과정에서 절 입구의 자연환경이 많이 파괴되었다는 점이다. 아스콘으로 포장되어 버린 드넓은 주차장과 벽돌 블록으로 바뀐 넓은 진입로, 자연성을 무시하고 인위적으로 돌린 개울물, 그리고 드넓은 잔디와 함부로 심어진 외래수종.... 마치 시민공원처럼 반생태적으로 조성되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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