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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3~14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는 열리는 ‘한국 신무용 80년 사(史)와 김백봉 예(藝)의 삶-맥(脈)’. 김백봉 교수를 조명한 영상을 시작으로 ‘화관무’ ‘녹음방초’ ‘타의 예’ ‘선의 유동’ ‘김영임 명창의 회심곡’ ‘광란의 제단’ ‘굴레’ ‘부채춤’ ‘만다라(영상)’ ‘태권무’ 등 김백봉 교수를 사사한 제자들이 무대를 화려하게 장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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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무대에서는 김 교수의 딸인 김백봉무용단 단장 안병주 교수(경희대 무용학부)와 애제자 김말애무용단 김말애 단장(경희대 무용학부장) 등이 70여명의 무용수들과 함께 공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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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백봉 무용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화관무’는 88서울올림픽 개막식에서 2천명이 출연하는 대형 군무로 재창돼 한국의 얼이 담긴 장대한 작품이라고 평가받았다. 김 교수가 “자신의 고향은 작품 속에서도 늘 밑그림처럼 생명의 근원처럼 살아나는 곳”이라 했던 고향의 소박한 정서와 자연친화적 색채가 깊게 묻어나는 ‘녹음방초’, 공들여 가르친 제자들이 때가 되면 하나 둘씩 떠나가는 허탈감을 아름다운 눈의 결정체가 지상에 닿는 순간 물방울로 사라지는 것에 비유한 서정적인 작품 ‘선의 유동’ 등이 눈길을 끈다. 김백봉 교수의 대표작 외에도 김말애 예술총감독의 창작 ‘굴레’와 화려하게 재구성된 태권무, 명창 김영임의 회심곡 공연도 마련돼 무대를 풍성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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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공연에서 눈길을 사로잡는 작품은 부처와 보살이 그려내는 천상극락을 표현한 ‘만다라’이다. 김백봉 교수가 직접 추는 ‘만다라’는 영상으로 무대를 사로잡는다. 최승희의 보살춤을 기반으로 불심에 몰입하면서 느끼게 된 마음가짐과 선한 삶의 자세를 군무로 대형화한 ‘만다라’는 불심의 세계를 보다 구체적으로 표현한 김백봉표 창작춤이다.
영상으로 펼쳐지는 보살춤 ‘만다라’는 우주를 감싸고 있는 진리의 뜻이 모든 중생들에게 태양의 빛처럼 넓혀가며 퍼져가는 느낌이 들도록 입체적 환영을 유도하는 형식을 취했다. (02)399-1114~7
-김백봉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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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평양에서 트럭운전사의 딸로 태어난 김백봉은 평양의 명윤여학교에 다니던 시절, 최승희 무용공연 포스터를 보고 무용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13세 때 아버지와 함께 진남포의 최승희 무용공연장을 찾아가 제자가 됐고, 그해 6월 18일 최승희를 찾아 일본 도쿄(東京)로 갔다. 1943년 최승희무용단 단원이 되어 일본ㆍ만주ㆍ중국ㆍ동남아시아 각국을 순회 공연하면서 최승희의 춤맥을 이었다. 1946년 평양에 있던 최승희무용연구소 부소장 겸 상임안무가로, 1949년 최승희무용단 제1무용수로 활약했다. 스승으로부터 ‘화관무’ ‘부채춤’을 전수받았다.
최승희의 남편 안막(안필승)과 김백봉의 남편 안제승은 형제이라 스승과 제자인 그들의 관계는 동서지간이기도 했다. 이들 최승희ㆍ안막, 김백봉ㆍ안제승 부부는 1946년 6월 함께 월북했다가 김백봉 부부는 탈출해 서울로 돌아왔다. 그 뒤 김백봉은 박기홍에게서 승무를, 이동안에게서 태평무와 승무를 전수받았다.
1953년 서울에 김백봉무용연구소를 설립하고 1965∼1992년 경희대학교 무용과 교수로 재직했다. 1981∼1985년, 1987년 예술원 회원이 됐다. 1992년 경희대학교 무용과 교수를 정년퇴임한 뒤 명예교수가 됐다. 1995년 김백봉춤보존회가 결성됐고, 1996년에는 예악당에서 최승희의 춤을 재현하는 대공연을 열어, 최승희가 추었던 ‘초립동’ ‘격(格)’ ‘연인도’ ‘보살춤’ ‘낙천(樂天)’ 등을 재조명했다.
1953년 서울시 문화상, 캄보디아 문화훈장, 대한민국예술원상, 1981년 보관문화훈장 등을 수상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 식전행사 공로로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1999년에는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에서 뽑은 ‘20세기를 빛낸 예술인’으로 선정됐다.
‘화관무’를 비롯해 ‘무당춤’ ‘청명심수’ 등이 유명하며, 특히 일명 ‘보살춤’이라고도 불리는 그의 창작품 ‘만다라’는 최승희가 추었던 보살춤의 재연이다. 주요작품에 무용극 ‘우리 마을의 이야기’ ‘바라’ ‘종이여 울려라’ ‘종의 정’ ‘심정’ 등과 무당춤 ‘광란의 제단’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