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회복이 예상보다 빠르다고는 해도 아직 혼자서는 일어서지도, 걷지도 못하는 스님이 서둘러 천성산으로 들어가는 이유는 따로 있다. 최근 발표된 환경영향평가서에서 당초 합의에 의해 진행키로 했던 계곡의 유량 조사가 빠졌기 때문이다. 터널 공사로 인해 생길 수 있는 계곡의 유량 변화를 모니터링 할 수 있는 자료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핵심사항이었고 당연히 돼 있을 줄 알았던 유량조사는 스님이 생사를 헤매는 동안, 고의적으로 제외됐다. 이는 마지막 희망을 걸었던 이번의 환경영향평가마저 신뢰할 수 없게 만들었고 대법원 판결을 앞둔 도롱뇽소송에서 결정적 증거가 될 수 있는 자료의 부재를 의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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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단식을 끝내며 ‘투쟁’적 운동이 아닌 ‘공명'의 중요성을 인식한 스님은 터널 공사로 인해 생기는 천성산의 여러 변화를 모니터링하고 그것들을 세상과 공유하고자 했다. 천성산이 개발로 인해 겪게 될 변화가 개발로 인해 파괴되고 있는 국토의 아픔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함께 공유하고자 함이었다. 그것은 천성산을 통해 자연과 생명의 문제를 좀 더 폭넓게, 그리고 정직하게 바라볼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었다.
유량조사가 빠진 것을 안 스님은 그래서 마음이 더 급해졌다. 전문가의 자문을 구해 간천계곡, 안적계곡, 가사암계곡에 유량 측정을 위한 장비를 설치했고 매일 유량의 변화를 기록할 민간유량조사단도 꾸렸다. 사갱공사나 터널 공사로 인해 생기는 유량변화를 수녀, 교사, 스님, 도롱뇽의 친구 등이 돌아가며 매일 방문하고 수치를 기록하고 유량의 변화를 관측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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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는 남들처럼 천성산을 멀리서 바라볼 필요도 있고, 또 천성산이 아닌 다른 것을 볼 수도 있어야 하는데 아직은 새로운 희망의 역사를 쓰는 일이라 믿고 있는 도롱뇽 재판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에 일을 버리지 못합니다.”
아직도 손, 발에 감각이 없는 스님은 감각이 돌아오면서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더 이상 나빠지지 않기 위해 하루 6시간 이상 나름의 운동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스님은 “관심을 천성산이나 나에게 두지 말고 스스로에게 회향할 필요가 있다”며 “우리가 어떤 환경에서 살고 있는지, 또 어떤 환경을 후손들에게 남겨둘 것인지에 관심을 가지면 생명이나 환경문제에 대한 기준점을 찾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왜 극단적인 단식을 택했느냐는 비난이 많다고 하자, “어떤 게 더 극단적이예요?”하는 물음이 되돌아왔다. 13억의 돈을 들여 진행된 환경영향평가서가 공사를 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쪽에만 맞춰져 있다면 그것이 더 극단적인 방법이 아닌가하는 물음이었다. 그것은 5차례의 단식이 진행되게 했던 과정속의 약속 불이행을 포함한 사회적 부도덕성을 지적하는 물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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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식의 과정이나 결과를 얘기하면서도 어느 곳에서도 단식을 왜 했는지 궁금해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지적하면서 “하루를 단식했든 백일을 했든 단식을 시작한 목적은 같으니 그것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데 왜 했는지에 관심이 없어서 이상했다”고 털어놓았다. 또한 스님은 “단식을 하게 만들고 또 여태까지 나를 버티게 한 힘은 나를 도와준 힘이라기 보다는 나를 내몰았던 사회적 관습, 관행, 부조리였고 그것에 저항하는 힘이었다”고 강조했다.
“처음엔 단한방울의 물도 새지 않는다던 환경영향평가서가 물이 새면 공법으로 막을 수 있다에서 조금의 물이 새는 것은 어쩔 수 없다로 변했다”며 “이같은 결론은 단 한번도 제대로 된 영향평가를 받은 적인 없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고 이번 환경영향평가의 한계를 지적했다.
앞으로 지율 스님은 천성산 암자에 머물며 민간조사단과 함께 조사활동을 벌이게 되며 도롱뇽 재판 자료를 준비하게 된다. 아직은 손이 져려 제대로 글씨를 쓸 수 조차 없지만 천성산에서 맞이하는 봄이 희망처럼 피어나고 있기에 스님은 아픈 몸으로 천성산에 들기를 주저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