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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우 축구계의 '히딩크' 전진호씨
18년째 지도…"축구로 용기와 희망 줘"
부산 감전 2동 ‘한마음꽃집’. 오늘도 그 꽃집엔 주인이 없다. 꽃을 사러온 사람은 문 앞에 적힌 전화번호로 전화를 건다. ‘꽃을 사러왔으니 어서 와 달라’는 요청의 전화다. 주객이 전도된 이 풍경이 한마음꽃집에선 그리 낯설지 않다.

손님이 주인을 찾는 이 꽃집의 주인장은 전진호(41·법성) 부산불교보현청년회 회장이다. 동네 사람치고 모르는 사람이 별로 없다. 스무 살을 갓 넘길 때부터 봉사활동과의 연애에 빠져 사는 총각으로 통한다.

전진호 회장(가운데)은 성우원 축구단원들에게 축구를 통해 용기와 희망을 선사한다.


봉사활동과의 열애에 너무 몰두하다 보니 한마음꽃집의 주인은 너무 자주 자리를 비운다. 아침 8시부터 밤 12시까지 문이 열려 있긴 하지만 불만 켜져 있는 때가 태반이다. “배달을 가야 하니까 그렇지요” 이렇게 짐짓 핑계를 대 보지만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전 회장이 맨 처음 봉사와 인연을 맺은 곳은 소년의 집. 8살 이하의 고아들이 생활하던 이 시설을 군 입대 전 친구들과 우연히 찾았다. 불교청년회에 가입해 활동 중이던 그는 ‘하얀비둘기’라는 봉사모임과 함께 이곳을 다시 찾았다. 풍선을 만들어 함께 놀아주고 크리스마스가 되면 일일 산타가 되기도 했다.

전지호 회장은 18년째 주말마다 장애우들에게 축구를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아이들을 두고 돌아올 때가 문제였다. 소년의 집은 그들의 일행이 떠나려할 때면 건물 전체가 울음바다가 되기 일쑤였다. ‘가지 말라’고 울어대는 아이들이 눈에 밟혀서 자꾸만 그곳으로 향하다 보니 주말은 언제나 아이들과 함께였다. 천마재활원, 성우원, 성프란치스코 등 종교와 무관하게 외로운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발길이 자꾸 옮겨갔고 차츰 시설의 화장실, 보일러가 고장 나 아이들이 고생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면 새벽이라도 달려갔다.

생일 때면 커다란 케이크를 사들고 어김없이 아이들을 찾았갔다. 촛불을 밝히고 축하 노래를 함께 불렀다. 가족을 갖지 못한 아이들에겐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추억을 만들어주기 위한 그만의 이벤트였다. 선물도 잊지 않았다. 그런 그가 정작 자기 생일 케이크를 잘라 본 것은 28살의 생일 날이 처음이었다. 그날 친구들이 마련한 케이크 앞에서 많이 울었다고 했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아버지 정을 모르고 자랐어요. 어머니 혼자 4남매를 키우다 보니 생일 케이크는 생각조차 못해봤고요. 길가다 나자들이 생일케이크 사들고 가는 것만 봐도 부러웠고, 큰아버지한테 용돈 받은 기억이 참 오래갔어요.”

자신이 누리지 못한 것을 세상의 외로운 아이들한테 해주고 싶었다. 추석이나 설날 모든 원생들에게 한명도 빼놓지 않고 용돈 1000원씩을 쥐어 준 것도 그 때문이었다. 서너 곳 시설에 있는 300여 명 아이들에게 일일이 용돈을 주는 일, 결코 많지 않은 그의 수입에선 쉬운 일은 아니다.

전진호 회장.


봉사 활동에 월 50만 원 이상을 쏟아 붓다 보니 정작 자신을 위해서는 돈 쓸 줄을 모른다. 그는 늘 운동복에 운동화 차림이다. 모두 장애인축구단 운동복을 마련할 때 저렴하게 구입한 것이다.

그의 봉사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유난히 축구를 좋아했던 그가 우연이 천마재활원 아이들과 축구를 하면서 축구 지도자(?)의 길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18년째 주말마다 장애인 축구단을 지도하면서 ‘축구아저씨’라는 별칭도 얻었다. 그의 축구 지도 덕분에 천마재활원 축구팀은 세계 대회에 참가하는 한국대표로 성장해 95년 특수올림픽 준우승을 거두고 2001년에는 아시아 정신지체인 축구대회에서 3위를 차지했다.

장애의 벽을 허물고 세상을 향해 쏘아 올린 천마재활원 축구팀의 슛은 장애인 시설 축구단 결성의 시발점이 됐다. 1990년 천마재활원 축구단 창단에 이어 4년 전 성우원 축구단이 생겼고 9개월 전에는 평화의 집 축구단이 결성되기에 이르렀다. 첫째 주 일요일엔 평화의 집 축구단, 첫째 주, 셋째 주 토요일엔 성우원, 둘째 일요일엔 천마재활원 축구지도까지 그의 주말이 더욱 바빠졌다.

생일 맞은 단원이 있으면 케이크를 사들고 찾아가 함께 파티를 벌인다.


“축구를 하면 아이들의 표정이 환해진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즐거움을 알게 되면서 아이들이 참 많이 변했죠. 그래서 축구단에 들어오려는 아이들이 점점 늘어나 천마재활원의 경우 1군, 2군 합해서 선수만도 45명이나 됩니다.”

이제 천마재활원 축구단의 몇몇 선수들은 다른 장애인 축구단의 지도를 도울 정도로 실력이다. 전 회장도 못 가본 미국, 일본 대회에 참가하는 멋진 선수들로 성장한 것이다. 성우원 축구단 지도를 돕고 있는 천마재활원 축구단 안흥수(39) 주장은 “형님은 축구 자체를 모르는 우리들에게 공을 차는 것이 즐겁다는 것을 처음으로 가르쳐 준 사람”이라며 “축구를 가르쳤다기보다는 ‘할 수 있다’는 용기와 희망을 줘서 너무 고맙다”며 전 회장에 대한 감사함을 전했다.

전 회장은 앞으로 2개의 장애인축구단을 더 만들고 장애인축구단을 사단법인화 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축구단 하나를 결성하려면 축구화, 단복, 장비 등에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찮아 늘 자비를 털고 후원에 의존해왔던 터라 사단법인화를 통해 안정적인 후원자와 재정 확보, 대외적인 위상을 높이기 위해서다.

전진호씨는 아이들 사이에서 축구아저씨로 통한다.


외로운 아이들 만나러 가는 일이 법당 부처님 뵈러 가는 일보다 더 급해서 그의 신행은 늘 게을러 보인다. 그러나 매주 금요일 부산불교보현회 정기 법회에는 빠지지 않는다. 그리고 절에 갈 기회가 생길 때면 늘 부처님 전에 7배의 절을 올린다.

“다른 사람들은 자주 가니까 3배만 해도 되지만 전 자주 못가니 7배를 하고 있어요. 왜 7배냐구요? 이유는 없어요. 부처님과 도움을 주셨던 분들에게 고마운 마음에 보답하려면 그렇게라도 해야지 싶어서요.”

전 회장은 늘 이렇다. 그러나 그가 아는 한 가지는 있다. 사람 마음은 다 같다는 것. 장애가 있든 없든, 모두 행복으로 충만했으면 하는 것이 유일한 바람이다. 나눔과 사랑의 향기 가득한 한마음꽃집은 오늘도 주인 없이 문을 활짝 열어놓고 나눔에 함께 할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부산/글=천미희 기자·사진=박재완 기자 |
2006-03-23 오후 5: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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