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승랍 20년차 스님들을 대상으로 한 제5회 불교지도자 연수가 시작됐다. 3월 8일 아산 한국증권연수원에서 열린 입재식에는 1987년 수계를 받은 비구ㆍ비구니 스님 중 희망자와 87년 이전 수계를 받은 비구ㆍ비구니 스님 중 입교에 결격사유가 없는 스님 40명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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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재식에서 교육원장 청화 스님은 교육부장 법장 스님이 대독한 인사말을 통해 연수 의미를 되새겼다.
“출가해 승랍 20년이 넘으면 이제 한 사람의 수행자뿐만 아니라 교단의 지도자 반열에 들게 됩니다. 지도자는 자신에 대한 책임뿐만 아니라 종단과 대중에 대한 책임성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책임성을 다하는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사회변화에 조응하는 대안을 제시해 대중과 함께 활동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교육원장스님의 당부에 연수생들은 서원문으로 답했다.
“불교지도자로서 올바른 불교관과 종단관을 확립하고 시대변화를 통찰하는 예지력과 탁견으로 대중과 함께 종단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용맹정진 하겠나이다.”
▧“행자때 교육받은것 아닙니까”
“불교지도자는 불법을 수행하고 가르치는 스승을 말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불교가, 스승의 위치에 있어야 할 교단이, 그 역할을 상당부분 상실했는데 과연 우리가 지도자라고 할 수 있습니까?”
달라이 라마 방한 운동으로 유명한 진옥 스님(사회복지법인 보문복지회 이사장)이 연수 첫 테이프를 끊었다. 진옥 스님은 ‘불교 지도자의 사명과 자세’를 주제로 강의하며 한국불교 현실을 질타하기도 했다.
“개인토굴이 등록된 절보다 많다고 합니다. 그러한 개인 축재가 고급승용차 경쟁을 시키고, 골프를 치게 하고, 선거비용으로 사용하게 만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비판을 가할 수 없는 현실이 돼 있습니다.”
스님은 불교지도자의 역할을 하기 위해선 무소유 등 무엇보다 ‘기본’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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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한 비구니스님은 “20년차 연수 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를 또 들어야 합니까. 우리 모두 행자 때 교육받은 것 아닙니까. 너무 부끄럽고 화가납니다”라고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한 비구스님도 “삼귀의를 비롯해 다 알고 있지만 제대로 지키지 않는 것이 문제”라며 “기본을 지키지 않으면 30~40년 수행하더라도 사상누각에 불과할 것”이라고 말했다.
▧ “나는 왜 중이 됐을까?”
“얼마 전 젊었을 때 긁적거렸던 노트를 꺼내들었습니다. 거기에 ‘나는 왜 중이 됐을까’란 질문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에 대한 답은 ‘부처님 시봉하는 것이 좋아서’였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도량청소조차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 기회에 제 자신을 바꾸고자 연수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도반과의 시간’이 되자 스님들은 다과를 앞에 놓고 둥글게 둘러앉아 자신의 출가본사와 법명, 연수 참여 동기 등을 밝히기 시작했다.
“지난해까지 걸망을 짊어지고 여기저기 떠돌아 다녔습니다. 수행자는 그렇게 해야 된다고 배웠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출가한 뒤 20여 년 동안 시야를 너무 좁게 가지고 살았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다른 스님들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배우기 위해 왔습니다.”
스님들의 말 여기저기에 고민의 흔적들이 묻어 나왔다. 출가한 지 20년, 사회도 변하고 나도 변했다. 초발심 또한 점점 멀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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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랍 10년차가 되기 전까진 승랍이 많아지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10년이 지나자 승랍에 대한 부담감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승랍에 비해 수행력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일반 사회로 보면 20살은 청년인데, 저는 게으름에 빠져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여러분의 모습에서 저의 나태함을 발견하고 질책하고 싶습니다.”
이번 연수를 통해 자신을 점검하고 재발심하는 계기로 삼고 싶다는 스님들이 대부분이었다. 또 종단 중진으로서의 위의를 갖추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도 보였다.
“지금 교육을 받고 있는 30기 행자들의 경우 세속 나이가 30대, 전문대 출신 이상이 3분의 2를 넘어섰습니다. 이전에는 아랫사람에게 무조건 엄하게 대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나이도 들고 배울 만큼 배운 사람들에게 이러한 방법은 더 이상 먹혀들지 않을 것 같습니다. 엄하지 않으면서도 올바른 스승의 모습을 보이기 위해 연수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 똑게형? 똑부형?
“여러분은 ‘똑게’형입니까, 아니면 ‘똑부’형입니까. 혹시 ‘멍부’ ‘멍게’형은 아닙니까?”
정웅기 불교아카데미 사찰경영연구소 부소장이 ‘지식정보시대의 불교리더십’을 주제로 강의하다 스님들을 향해 질문을 던지자 잠시 어색한 웃음이 흘렀다. 정웅기 부소장이 리더를 ‘똑게(똑똑하고 게으른)’형, ‘똑부(똑똑하고 부지런한)’형, ‘멍부(멍청하고 부지런한)’형, ‘멍게(멍청하고 게으른)’형으로 구분하고, “스님들은 어떤 유형인가”라고 물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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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부형이 가장 이상적인 리더일 것 같죠. 아닙니다. 리더가 똑똑하고 부지런하면 일을 하나에서 열까지 모두 챙겨 아랫사람들이 창의적으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리더는 똑게형이 돼 일의 큰 방향만 잡아줘야지 일일이 간섭해서는 안 됩니다.”
정웅기 부소장이 주요 분야별 인물들의 리더십을 탐구한 뒤 비전형 리더십, 커뮤니케이션형 리더십, 자기관리형 리더십으로 분류하고 어떠한 리더십이 필요한지 물었다.
“첫째 자리관리형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자기관리가 철저해야 올바른 수행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 커뮤니케이션형 리더십을 발휘해 신도들을 비롯해 주변과 관계형성을 맺은 후, 비전형 리더십을 보여줘야 합니다.”
▧ 다양한 정보제공 기회로…
조계종의 불교지도자 연수는 승랍 20년차, 25년차를 대상으로 2002년 개설됐다. 이는 2001년 교육관계법 개정을 통해 확립하게 된 ‘수행 및 교육을 통한 지도자상 확립’이라는 교육목표를 현실화하기 위해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함양하고, 교육 참가자간 상호 탁마의 기회를 부여하며, 변화하는 시대에 조응하기 위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종단적 차원에서 개발한 것이다.
3월8일부터 10일까지 열린 승랍 20년차 스님들 연수는 ‘리더십과 조직관리’ ‘지식정보시대의 불교리더십’ 등 기존의 프로그램에 ‘지역사회 지도자의 역할’ 등이 새롭게 추가돼 눈길을 끌었다.
수년째 불교지도자 연수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이영철 불교아카데미 NGO미래경영연구소장은 “해를 거듭할수록 체감온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밝혔다. 즉 연수 첫 번째 해나 두 번째 해에는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하는 스님들도 있었으나, 이제는 하나라도 더 배우기 위한 모습이 보인다는 것이다. 글ㆍ사진/아산= 남동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