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성성불’과 ‘요익중생’, 즉 ‘수행과 중생교화’를 종지로 삼고 있는 조계종은 선종의 기풍을 면면히 이어왔다. 한국 조사선의 법통(法統)을 이어온 조계종에서 선원중심의 총림을 이끌어 나가는 방장의 존재는 절대적이다. 최근 영축총림 통도사 방장 추대문제를 놓고 종단 안팎으로 논란이 많았던 것도 이 때문이다.
영축총림 방장 추대와 관련해 전국선원수좌회가 종법에 따라 20안거 성만 기준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압박하자 통도사 산중총회에서 추대된 초우 스님은 3월 7일 자신의 방장추대를 사실상 고사했다. 이번 논란을 계기로 방장의 역할과 위상은 무엇인지 살펴본다.
총림은 스님들의 참선수행 전문도량인 선원과 강원, 율원, 염불원 등을 모두 갖춘 ‘종합수행도량’을 지칭한다.
이러한 총림을 대표하는 어른을 방장(方丈)이라고 칭한다. 선(禪)·교(敎)·율(律)을 겸비한 명안종사로서 대중들의 수행을 지도하고 기강을 세우는 총림의 상징이다. 또, 각종 행사와 안거해제와 결제 때 법어를 내려 불자들을 이끄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오늘날 조계종이 표방하고 있는 선종(禪宗)의 생명은 수행과 명철한 깨달음에 의한 법통의 수립이다. 수행과 깨달음에 철저한 정법의 안목을 갖춘 명안종사(善知識)야 말로 모든 총림의 안목이자 법도의 바탕이기 때문이다. 조사선 전통에 비추어 볼 때, 총림의 방장은 수선납자의 표상이며 사표로, 위로는 불조의 혜명을 잇고, 아래로 사부대중의 귀의처가 되는 최고의 상징이다.
방장의 어원은 유마거사의 선실(禪室)을 사방일장(四方一丈)이라고 한데서 나온 말로, 중국 선종에서는 주지(住持: 方丈)의 거실을 가리키는 말로 바뀌었다. 이후 당대 선종의 발전으로 백장선사에 의해 선중(禪衆)의 주지임무를 맡은 장로화상을 방장이라 부르게 됐다.
<선림보훈> 권4에서는 ▲도덕이 종문의 사표 ▲언행이 일치 ▲인의 충실 ▲예법을 존중해야 한다라고 방장의 요건을 강조한다.
방장의 역할은 어떠해야 하나? 명나라때의 회산선사는 <선문단련설(禪門鍛鍊說)>에서 ▲서원을 굳게 세우고 고통을 감내하라 ▲근기를 살펴 화두를 일러주어라 ▲선방에 입실하여 다스려라 ▲직접 선방에 나아가 일깨워 주어라 ▲실제 단련법을 제시하라 ▲교묘하게 경책하고, 참구자의 적정을 전환하라 ▲조사관을 부수고 안목을 열어 주어라 ▲선학의 이론 체계를 연구하라 ▲행실을 엄정히 하라 ▲재능이 있는 자를 선발하여 단련하라 ▲신중히 법을 전하라 등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또 <백장청규(百丈淸規)>는 방장의 책임을 ▲대중을 위하여 설법 ▲방장실에 입실하여 각자의 공부를 점검 ▲요사를 순시하여 점검 지도 ▲행자들에게 훈시 ▲깨달음의 상징인 법의를 받음 ▲시주를 청하여 재를 관장 ▲정법을 전해 끊어지지 않게 한다 등 15가지로 정해 놓았다.
근대 한국불교에서 총림은 일본불교를 청산하기 위한 몸부림으로 시작됐다. 불교의 왜색화로 수좌들의 수행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지면서 효봉 스님이 조선불교의 활성화를 위한 모든 조건이 갖춰져 있는 해인사에 1946년 가야총림을 처음 개설했다. 청담·성철 스님 등 전국에서 100여 수좌들이 해인사로 모여들었고, 이후 1967년 해인총림 탄생의 시발점이 됐다.
성철 스님은 “총림운영의 기본방침은 계정혜의 삼학을 바탕으로 엄격한 계율과 일관된 이론 그리고 철저한 참선정진으로 견성성불하는 것”이라며 선납들의 치열한 수행처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해인총림의 초대 방장이었던 성철 스님은 선방에서 참선 수행하는 수좌들을 최우선으로 배려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대신 선방 수좌들에게는 엄격한 수행을 요구했다. 매년 안거중에는 누구도 빠짐없이 7일간의 용맹정진에 참가해야 하고 탈락하면 바로 내쳤다. 이러한 전통은 아직도 해인사에 그대로 남아 있다.
조계종 포교원 신도국장 원철 스님은 “역대 방장스님 가운데 성철 스님에 대한 기억이 가장 강렬하다”며 “지금까지 많은 이들이 성철 스님은 대중을 압도하는 풍모와 따라가기 힘든 수행정진력을 가진 큰스승으로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계종 총림법은?
방장의 권한과 역할을 명시한 조계종의 총림법 제6조는 ‘①방장은 선·교·율을 겸비한 승랍 40년 이상으로 20안거 이상을 성만한 본분종사로 한다 ②방장은 총림을 대표하며, 총림 대중의 수행을 지도 감독한다 ③방장은 산중총회에서 추천하여 중앙종회에서 추대한다 ④방장의 임기는 10년으로 하며, 연임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1967년 처음 제정된 총림법은 종단의 수행중심도량인 총림의 활성화를 바라는 청담 스님의 뜻에 따라 주지 임명권을 방장이 갖게 하는 등 권한을 최대한 보장했다.
그러나 2004년 대체입법으로 마련된 현재의 총림법은 제정 당시부터 “중앙종회가 종단의 정통성을 지켜온 선원의 상징적 존재인 방장의 자격은 강화하면서 권한은 제한하려 한다”는 비난이 끊이지 않았다.
최근 전국선원수좌회(공동대표 혜국 현산)가 통도사 방장 후보의 20안거 성만 규정을 준수 할 것을 촉구하는 성명을 3차례에 걸쳐 발표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수좌들은 중앙종회가 만든 20안거 성만 규정을 종회 스스로 지키지 않는다면 절대 좌시하지 않겠다는 분위기다. 이권만을 쫓는 정치승들의 준동에 방장의 위상이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기본선원장 지환 스님은 “방장은 수선납자들의 실참을 지도하고 총림의 수행기풍을 세우는 매우 중요한 자리”라며 “명안종사를 모시지 못할 경우, 20안거 성만은 최소한의 요건”이라며 단호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인물로 본 조계종 5대 총림
해인총림
1946년 효봉 스님은 조선불교의 중흥을 주장하며 수좌들을 중심으로 해인사에 가야총림을 열었다. 한국전쟁으로 총림이 와해됐지만 선원을 중심으로 총림대중이 수행정진을 이어나갔다. 1967년 성철 스님이 방장을 맡아 조계종의 첫 총림인 해인총림이 시작됐다. 2대 방장은 고암 스님(1970), 3ㆍ4ㆍ5대에 다시 성철 스님(1971)이, 6대 혜암 스님(1993)이 자리를 이었다. 현재는 7대 법전 스님(1996)이 해인총림의 위상을 지켜나가고 있다.
조계총림
효봉 스님의 법맥을 이은 구산 스님이 1969년 정혜결사의 정신을 이어 승보종찰 송광사에서 조계총림을 열었다. 구산 스님은 1ㆍ2대 방장으로 불일회를 창립하고 불일 국제선원을 개원하는 등 간화선의 대중화와 세계화에도 남다른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3ㆍ4대 방장 일각 스님(1984)을 이어, 5대 방장을 맡은 보성 스님(1998~)은 전계대화상을 역임하는 등 특히 계율의 중요성을 강조해 “선정과 지혜에 앞서 참다운 계행을 지녀야 올바른 삼학을 익히는 것”이라 가르치고 있다.
영축총림
1984년 통도사가 총림으로 지정되면서 초대 방장에 추대된 월하 스님은 당대 선지식 구하 스님의 선맥을 이었다. 월하 스님은 1967년부터 통도사 조실에 올라 산문을 나서지 않고 수행과 후참납자들을 지도에만 전념했다. 영축총림은 2003년 12월 월하 스님 원적 후 2대 방장을 추대하지 못하고 공석으로 있다.
덕숭총림
경허ㆍ만공 스님의 덕숭가풍이 계승된 덕숭총림 수덕사는 1985년 혜암 스님이 초대 방장에 추대되면서 총림의 문을 열었다. 독자적인 견성의 체험을 바탕으로 대중들을 지도해 왔다. 100세가 넘도록 운수행각과 참선정진에 매진하는 수행자다운 모습을 보였다. 2대 방장 벽초 스님(1985)은 1배 이상은 받지 않고, 말보다 행동으로 제자들을 가르쳐 ‘보현보살의 화신’이라 불렸다. 3대 방장 원담 스님(1986~)은 만공 스님으로부터 전법계를 받은 선지식으로 덕숭총림의 개설에도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고불총림
만암 스님이 1947년 일제청산을 기치로 백양사에 ‘호남 고불총림’을 결성했으나 한국전쟁으로 맥이 단절됐다. 1996년 문을 연 고불총림의 초대방장으로 추대된 서옹 스님(1996)은 동국대 대학선원장 겸 조실로 천축산무문관 동화사 백양사 봉암사 대흥사 선원 등 제방선원의 조실로 수많은 수선납자들을 지도하며 참사람운동을 펼쳤다. 2대 방장 수산 스님(2004~)은 만암ㆍ서옹 스님을 곁에서 모시며 백양사의 선맥을 이은 백양사의 산 증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