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 천태종 전운덕 총무원장 스님(사진)이 3월1일 원장직에서 물러났다.
운덕 스님은 1980년 군부독재에 의해 사찰이 유린된 10·27법난 이후인 1981년 7대 총무원장에 취임해 현 13대에 이르기까지 26년간 종단 행정의 수반 역할을 해왔다.
26년이란 결코 짧지 않은 세월동안 운덕 스님이 천태종을 위해 남긴 업적은 너무나 많다. 가장 우선 순위로 종단 관계자들이 꼽는 것이 종도수의 현저한 증가. 천태종 관계자에 따르면 80년대 초 110만명이던 천태종도가 현재는 230만명으로 늘어났다고 한다. 교세가 두 배로 확장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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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은 교세확장과 더불어 교리 및 신행체계 확립 등에 힘써왔다. 이는 종조인 상월원각대조사의 생활불교, 대중불교, 애국불교의 종지를 충실히 종도들에게 전하고 실천에 옮긴 결과라고 종단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또한 최근까지도 운덕 스님이 개성 영통사 복원에 이어 개성 국청사를 복원하려는 야심찬 계획을 추진했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대각국사가 출가하고, 천태교학을 설한 개성의 절을 복원하는 것은 천태종으로서는 ‘뿌리찾기’이자 ‘불맥 잇기’로 종도들에게 자부심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다.
상월 대조사의 유지를 받들려는 운덕 스님의 열정은 95년부터 본격화됐다. 천태종의 시발점인 중국 절강성 국청사에 한중 천태조사 기념당을 건립하고 수차례의 세미나와 기념 학술대회를 개최하며 천태사상을 널리 알렸다. 이러한 노력은 재창건한지 40년밖에 안돼 신흥종교로 인식되던 천태종의 정통성을 회복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신행체계를 현대적으로 재정비해 불교계에 새바람을 일으킨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운덕 스님은 우선 기도법을 단일화시켜 관음정진을 종단의 대표적인 수행법으로 정착시켰다. 관음정진은 상월 원각 대조사가 <묘법연화경>을 비롯해 여러 대승경전을 바탕으로 증명한 것으로써 복잡하고 바쁜 현대인들이 행주좌와를 가리지 않고 닦을 수 있는 수행법이다.
또한 본말사의 기도실을 24시간 개방해 신도들이 언제든지 와서 기도할 수 있도록 개방했다. 이는 주로 대도시에 사찰이 밀집해 있는 천태종의 특성상 도심포교에 큰 몫을 했다는 평이다.
운덕 스님은 신도들의 체계적인 불교 교리 교육을 위해 서울 부산 대구 춘천 울산 등에 5개의 금강불교대학을 설립했다. 교양대학 성격인 금강불교대학은 등록금 전액을 종단에서 지원하며, 수많은 포교사를 배출해 냈다.
2002년, 교육과 불교인재양성에 대한 끝없는 원력은 논산에 4년제 정규대인 금강대학교를 설립하는 것으로 다시한번 대내외에 천명이 되었다.
천태종 사찰을 재가불자 중심의 운영체제로 자리잡게 한 것도 운덕 스님이 밀어부친 일이다. 천태종은 모든 사찰의 운영 특히 재정부분을 재가신도들이 맡고있다. 이것은 사찰 재정의 투명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21년간 스님을 곁에서 모셔왔다는 한기선 금강불교신문 부장은 “천태종이 오늘날처럼 교세가 확장된 것은 교리, 신행 등 다방면에 걸쳐 항상 신도들의 입장에서 제도를 합리적으로 정비한 운덕 스님의 탁월한 지도력이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라고 스님의 업적을 높이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