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를 성취한 후 전국에서 찾아온 선승들을 지도하며 선풍을 크게 떨친 경봉 스님. 한국 근현대사에 큰 획을 그은 선지식인 경봉 스님의 생애와 사상을 본격적으로 담아낸 최초의 장편소설 <야반삼경에 촛불춤을 추어라>가 발간됐다.
<야반삼경에 촛불춤을 추어라>는 수행자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거침없이 도를 굴린 대자유인 으로 언제나 청렴하고 검소한 생활로 일관한 경봉 스님에 대한 제반지식이 담겨 있다. 또 선이 무엇인지, 멋들어지게 사는 삶이 무엇인지, 인생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준다.
이 소설은 경봉 스님이 선방에서 수행하는 것부터 깨달음을 이룬후 대중들에게 선풍을 크게 떨친 이야기로 전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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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살에 통도사에서 출가한 경봉 스님은 스승몰래 도망쳐 해인사 선방에 찾아간다. 그는 졸음과 망상이 들때마다 허벅지에 피가 나도록 못으로 찍고 계곡에서 얼음을 가져와 입에 물었다. 그리고 기둥에 머리를 박아 이마에 피가 철철 흘러내리기도 했다. 그래도 집중이 안될 때는 뒷산에 올라가 엉엉 소리내 울었다. 처절한 싸움이었다.
경봉 스님은 82세부터 매주 일요일마다 세수 91세로 열반에 들기 전까지 매주 일요일이면 정기법회를 열어 법상에 올랐다. 스님의 법문을 듣는 청법자는 언제나 1000여명을 밑도는 일이 없었고, 대다수의 선사들이 중국의 조사어록이나 염송등에서 차용해 설하는 것이 관례화되어 있던 현실에서 법문이나 게송을 내림에 있어 언제나 ‘자기 목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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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중 통도사 극락암에서 열린 법회에서는 왜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는지 조차 모르던 국군과 공비가 법당에서 법문을 함께 경청하며 서로 눈물을 흘리는 일도 있었다.
또 스님은 절밖에서도 법문을 마다하지 않았다. 장터에서 울긋불긋한 그림을 그려 주장자에 달고 요령을 흔들면 구경꾼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스님은 구수하게 법문을 하다가도 대중들이 지루할만 하면 창을 했던 대 자유인이었다.
이 소설의 저자 정찬주씨는 “경봉 스님은 지혜를 구하려는 사람들에게는 문수보살 같은 분이셨고, 희망을 가지려는 사람에게는 관세음보살 같은 분이셨고, 편안을 얻으려는 사람에게는 관세음보살 같은 분이셨으며, 극락암을 찾는 누구에게나 차별없이 맑고 향기로운 차 한 잔을 권하시던 사람냄새 풍기는 스님이었다”고 말했다. 김원우 기자
야반삼경에 촛불춤을 추어라
정찬주 지음
김영사|각권 9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