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7 (음)
> 문화
송광 한지의 시원, 완주 송광사
[생활 속의 불교문화]완주 송광마을 한지
최근 한옥, 한복과 함께 한지(韓紙, Korean paper)가 전통 웰빙 문화로 뜨고 있다.

닥나무를 원료로 하는 한지는 수명이 천년을 간다고 하는 ‘신비의 종이’이기도 하다. 한지는 책, 창호지에서 옷, 생활용품, 한지공예에 이르기까지 일상생활에서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불가에서는 경전, 불화, 불상 등 한지와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 큰 사찰에서는 매년 대량의 한지가 소요됐고, 스님들이 한지를 직접 생산했다. 따라서 한지는 사찰을 중심으로 발전, 보급되어왔던 것이다.

완주 송광사 사하촌 송광마을은 대대로 송광한지를 생산해 왔다


수백 년간 명성을 이어온 전주한지도 완주 송광사가 자리한 송광한지를 으뜸으로 친다. 특히 송광마을에서 생산하는 한지장판은 아직까지도 전국 최고의 품질을 자랑한다.

송광사는 평지가람이지만 인근에 위봉산, 진안 고원 등 커다란 산이 에워싸고 있다. 토양이 척박해 흙보다 자갈이 많다. 다행히 인근의 산에서 내려오는 맑은 물은 한지를 생산하는 천혜의 자원이 되었다. 그래서 고려 때부터 송광마을 자갈밭은 닥나무로 무성했다.

송광천을 사이에 두고 송광사와 사하촌 송광마을이 자리해있다. 100여세대가 거주하는 송광마을은 15년 전만해도 한지 제조로 북적거렸다. 마을사람들이 직접 닥나무를 채취하고 송광천에서 찌고 껍질을 벗겼다. 그리고 물에 찧어 풀어헤쳐진 닥나무 껍질을 마을사람들이 손수 한 장 한 장 떴다. 저녁 무렵이면 마을 여기저기서 장판지를 두들겨 부드러움과 탄력을 갖도록 하는 도침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대로가 한지마을이었고 모두가 종이 전문가였다.

송광사 아랫마을에 자리한 천양제지에서 한지를 뜨는 초지장인


마을회관에서 만난 주민들은 “그때는 살맛났다”며 “밥 먹고 화장실 가는 시간 이외에는 종이만 만들었다”고 이구동성으로 전한다.

송광 한지의 시원은 송광사에 두고 있다.

송광마을 이장 이행교(56)씨는 “예전부터 마을 어른들이 척박한 땅에서 먹고살기 어려울 때 송광사 스님들이 종이 만드는 기술을 가르쳐 줬다”며 송광 한지의 유래를 설명한다. 병자호란 때 팔도도총섭으로 승군을 이끌며 남한산성을 쌓은 벽암대사가 송광사 주지로 있으면서 마을사람들에게 종이제조법을 전수했던 것이다.

전국 최고를 자랑하던 송광 한지도 비닐장판과 현대문물에 밀려나기 시작했다. 엎친데 겹친 격으로 환경오염 규제로 송광천에서 더 이상 닥나무를 찔 수 없게 되었다. 밭에 있던 닥나무는 베어졌고, 마을사람들도 하나둘 떠났다.

송광천을 사이에 두고 왼편에 송광사와 오른편 송광마을이 함께하고있다


최근 들어 새집 증후군이 사회문제화 되면서 다시 한지장판이 각광을 받고 있다. 예전만은 안되지만 2인1팀으로 구성된 한지장판 제조장이 4-5곳으로 늘어 명맥을 잇고 있다. 그것도 양지를 가져다가 돌가루로 잰 풀로 3장씩 붙여 말리는 단순작업이다.

송광마을 아래에는 국내 최대규모의 한지제조공장(천양제지)이 들어섰다. 이곳에서는 물에서 한지를 뜨는 초지장인 7명을 보유하고 전통한지, 기계한지 등 다양한 한지를 생산하고 있다. “중국산에 밀려 전량 외국에 수출한다”는 천양제지 최영재 사장은 “송광마을 밭에 닥나무를 심어 전통 송광한지를 복원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이준엽 기자 | maha@buddhapia.com
2006-03-07 오전 6:23:00
 
한마디
닉네임  
보안문자   보안문자입력   
  (보안문자를 입력하셔야 댓글 입력이 가능합니다.)  
내용입력
  0Byte / 200Byte (한글100자, 영문 200자)  

 
   
   
   
2024. 11.27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원통스님관세음보살보문품16하
 
   
 
오감으로 체험하는 꽃 작품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