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각 스님(화계사 국제선원장) 자신은 ‘항일 독립군’이었다고 믿는다. 스승인 숭산 스님이 분명하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3월 1일 안성 도피안사(주지 송암)가 마련한 ‘제87주년 3·1국경절, 스님의 날 기념법회’에 초청된 현각 스님은 300여명의 불자들 앞에서 애국가에 얽힌 경험담을 풀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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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2월이었습니다. 재가자의 몸으로 계룡산 신원사에서 결제를 마친 뒤의 어느 날이었어요. 어는 스님의 방에서 음악이 나오는데 그 음악이 무엇인지는 몰랐지만 하염없이 눈물이 났어요. 억제할 수 없이 많이. 그리고 5년이 지난 어느 날 그러니까 출가한 후 서울에서 동국대학교 학생들에게 영어지도를 하며 지낼 때였어요. 학교 식당에서 TV를 봤는데 광복 50주년을 맞아 국립중앙박물관(조선총독부 건물)을 해체하는 날이었습니다. 다른 외국인들은 한국에 오면 국립박물관을 반드시 가는데 나는 그 건물에 들어갈 기회도 없었고 가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방송에서 또 음악이 나오는데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 내렸습니다. 학생들이 놀려서 화장실에 가서 눈물을 펑펑 흘렸는데 그 노래가 어떤 곡인지 왜 눈물이 나는지도 몰랐습니다.
그 후 경주 남산의 어느 작은 마을에서 100일 정진을 했는데 식사는 근처 농가에서 해결했습니다. 밥을 해 주시던 할머니는 내가 점심을 먹는 동안 건넌방에서 TV를 보곤 했는데 가끔 TV에서 또 그 노래가 나오는 겁니다. 밥을 먹다말고 저는 흐르는 눈물을 닦아야 했지요. 그래서 나중에 스승이신 숭산 스님께 그 노래가 어떤 노래인지 나는 왜 그 노래만 들으면 눈물이 나는지 여쭈었습니다. 스승께서는 ‘너는 항일독립군이었는데 일본인들에게 총을 맞으면서 부강한 나라에 태어나 한국을 돕길 발원했던 것 같다’며 ‘그래서 처음 일본인이 운영하는 선 센터에 들어갈 수 없었고 조선총독부였던 국립중앙박물관에도 들어가기 싫었던 것’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