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순례의 막바지에 로마에 도착했다. 지칠 줄 모르는 일행들의 의견에 휴식은 뒤로 하고 로마 시내로 나섰다. 로마에 오면 상식으로라도 알아두어야 할 몇 군데 명소를 둘러보며 긴 순례 길에 겹친 피로를 잠시 잊었다. 그 유명한 아이스크림을 서로 한 입씩 베어 물며 마음에 먹구름처럼 드리워졌던 찌꺼기를 웃음으로 날려 보내고 어깨동무하며 걸었던 시간을 우리는 로마의 휴일이라 이름 붙였다.
아시시로 향하는 차 안에서 부처님 성지에서 그렇게도 품을 보이지 못했던 사람이 프란치스꼬 성인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긴 설명을 하는 동안 다시 갈등이 수위를 높였다. 뭔가 터질 것 같은 기운이 감돌았다. 내가하면 로맨스요, 남이하면 스캔들이란다. 자신의 독선과 아집과 편견을 살피지 못하고 장광설을 푸는 쪽이나 그런 모습 또한 품지 못하는 쪽이 다 피차일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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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치 않던 일행의 기운은 프란치스꼬 성인의 성소에서 그의 정신과 가르침에서 다 녹아 내렸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성지를 순례하는지도 모른다. 동물과 자연에게까지도 경계 없는 사랑을 나누었고, 철저히 무소유를 실천하셨던 성인이다. 비에 젖어 촉촉한 아시시 거리, 산을 의지해 자리한 위치 때문일까 권리와 이익추구에 목을 매고 사는 세상과는 조금 거리가 먼 평화로움이 느껴졌다.
아시시에서 돌아와 순례 여정 마지막 밤이 이슥하도록 우리는 울고 웃고 투닥거리며 걸어 온 길을 되돌아보며 반성하고 뉘우치며 마음자리를 넓히는 시간을 가졌다.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의 길을 따라 걸을 때 이런 성경구절을 되새겼다.
“눈이 손더러 ‘너는 나에게 소용없다’ 고 말 할 수 없고, 머리가 발더러 ‘너는 나에게 소용없다’고 말 할 수 없습니다. 한 지체가 고통을 당하면 모든 지체가 고통을 당합니다. 한 지체가 영광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기뻐합니다.” (고린토 전서 12. 21. 26)
이 구절은 그저 성경에만 있는 것인가. 이런 가르침을 매일 읽고 또 읽으면서 어찌하여 상대를 이해하고 품을 수 있는 마음 한자락 남겨 놓지 못하는 팍팍한 삶을 살고 있을까 싶었다. 성경이나 불경에서 가르치는 말씀들을 머리와 눈으로 읽고 해박하게 이해한다 할지라도 육근으로 부딪히는 매 순간 그 경계의 시비에 걸려서 실천하지 못한다면 백년을 읽고 외운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소중하고 귀한 가르침을 바르게 따르고 실천하는 그 순간에 사람 마음을 변하게 하는 생명있는 향기가 될 것이고 영혼이 가난한 사람에게 영혼을 살찌우는 튼실한 열매가 될 것이다.
이렇듯 이번 삼소회 세계 성지순례 여정은 생생한 공부의 현장이었으며 종교화합을 위해 우리 종교인들이 무엇이 부족하며 어떤 것을 공부해야 할 것인가를 확인하는 자리였다. 크고 작게 부딪혔던 갈등이 오히려 부처님 제자로 살아가는 나의 수행에 좋은 거울이 되어주었다. 종교는 아집과 편견, 갈등과 독선으로 무장된 무기가 아니라 인류 사회에 이해와 용서 자비와 사랑을 펼쳐가는 든든한 도구임을 거듭 확인하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