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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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고 웃고 투닥거린 19일
진명 스님의 삼소회 성지순례기③

성지는 잠시 뒤로 하고 불가촉 천민들이 모여 사는 둥게스리 마을 수자타 아카데미를 방문했다. 우리 일행을 맞이할 것이라고 꽃목걸이 손에 들고 서툰 악기를 연주하며 정문 앞에 줄지어 서있는 어린 학생들이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법당에 앉아 눈물을 훔치는 작은 수녀님 등을 토닥이며 왜 우냐고 묻자 “몰라, 그냥 눈물이 나요.” 라고 했다. 여기저기 눈물 훔치는 소리가 들리고 그 수녀님의 한마디가 일행의 마음을 대변했다.

바라보기도 힘든 처참한 어린 삶 앞에 동양의 수도자들이 그들의 천형 같은 가난을 구제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그 사실에 그냥 눈물이 흐를 뿐이었다. 학용품과 약간의 의약품, 그리고 식량지원금과 학교 운영에 도움이 되길 바라며 성금을 전달하는 것도 사치처럼 여겨졌다. 일희일비의 감정의 교차로를 지나며 부처님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성지순례의 여정을 마무리 하고 요란하고 복잡한 가야역에서 델리로 향하는 밤 열차에 몸을 실었다.

침대차라고 하지만 인도 밤열차를 타본 사람만이 그 상황을 알것이다. 거의 타잔처럼 오르내리며 겨우 자리를 잡고 잠을 청하지만 퀴퀴한 냄새와 여기저기서 코고는 소리는 깨어있어도 소음인 지경이다. 일행의 자리가 한 곳에 모여 있기만 해도 조금 편리했으련만 여기저기 떨어져 있는 일행을 찾아다니며 불편한 잠자리를 살폈다. 덜컹거리는 객차 소리에 무관하게 긴긴 열차의 밤은 깊어 갔다. 몇 군데 쉬지 않고 밤새 달려온 기차는 뉴델리 역에 오전 열시가 가까워서 도착했다.

잠시 숙소에서 심신의 피로를 조금 덜고 다시 오후 일정에 나섰다. 힌두교와 무슬림, 자이나교, 씨크교 사원을 두루 방문하며 노란 터번을 쓰고 씨크교도의 예법을 따르기도 해 봤다. 삭발한 수행자가 머리에 수건 하나 쓴다고 해서 부처님 제자의 위치를 떠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모두 흔연하게 응하는 모습이 좋았다.

런던 무슬림 사원서 영국 무슬림 대표격인 두바얀 사무총장과 함께.


밤새 하얗게 쌓인 눈을 밟고 떠나온 한국의 풍경은 기억 저편에 있고 인도 부처님의 성지에서 까맣게 그을린 얼굴로 영국 성공회 성지를 순례하기 위해 런던행 비행기에 올랐다. 긴 순례 여정에 일행 모두에게 장애 없기를 간절히 기도하면서.

버밍험에 위치한 무교회 주의자 퀘이커 공동체를 방문해 그들과 함께 침묵명상에 들기도 했고, 캔터베리 대성당과 런던 중심가에 자리한 웨스트 민스트 사원이며 세인트 폴 성당에서 성공회에 대해 알려고 귀를 열었다. 그 어마어마한 사원 안에 역사 속에 묻힌 무덤들을 돌아보며 부처님 성지나 법당에서 느끼지 못한 무거움을 느꼈고, 리젠트 파크 옆에 크고 웅장함으로 위엄을 떨치는 성공회 성당에 못지않게 당당하게 자리한 무슬림 사원에서 영국에서 무슬림 대표격인 두바얀 사무총장을 만나 무슬림 신자에 대한 편견도 내려놓을 수 있었다.

국제 뉴스를 자주 장식하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미묘한 갈등 때문이었는지 예루살렘을 향하는 동안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워낙 국제적인 정보에서도 분리장벽 주변의 경계가 삼엄하다 하고 우리가 또 다른 종교인들인지라 내심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예루살렘에서 예수님 성지를 순례하는 동안은 전혀 불안한 현실을 느낄 수 없었다.

이스라엘 예루살렘 올리브 동산에서 삼소회 기도문을 읽고 있다.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약 3시간을 달려 성모 마리아가 예수님을 성령으로 잉태한 나자렛 성모영보성당으로 가는 동안 끊어졌다 이어지는 이중 삼중의 분리철책을 보며 땅에다 금 긋고 네것 내것 따지며 다투고 사는 동물은 인간뿐임을 새삼 느꼈다. 나라와 나라간의 영토 분쟁이라고는 하지만 예수님이 태어나고 자라서 제자들에게 성스러운 가르침을 폈던 땅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분쟁과 갈등은 왜일까? 예수님의 성지를 순례하는 동안 내가 나에게 던지는 질문이었다.
진명 스님 | 前 불교방송 차한잔의 선율 진행자
2006-03-04 오전 10:09:00
 
한마디
진실의 힘 스님들도 "웃고 있는 예수"라는 책 좀 보세요. 가톨릭이 왜 그렇게 변신하려 애쓰는지 알듯도 합니다.
(2009-09-28 오후 8:4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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