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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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 라마의 깊고 환한 미소
진명 스님의 삼소회 성지순례기②


우리 순례자 일행이 가장 손꼽아 기다린 2월 9일, 달라이 라마를 친견하는 날이다. 삼개월 전에 미리 친견할 계획을 세우며 예약은 했지만 여러 가지 주변 정황을 들어보니 정말 친견할 수는 있을 것인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비서관을 통해 확인에 확인을 거듭하고 티벳대학 정문 앞에 도착했다. 신분을 확인하고 있으니 큰 스님의 하루 스케줄표를 들고 어떤 분이 나타나서 따라 오란다. 여기저기 공사가 진행 중이라 어수선한 캠퍼스를 따라 들어가니 큰 화면으로 대강당에서 강연을 하고 계신 달라이 라마의 모습이 보였다. 진지한 어조로 말씀을 하시다 때론 파안대소 하시는 목소리가 들려오자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티베트대학에서 달라이라마(가운데) 친견 후 기념촬영. 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가 진명 스님.


그렇게 뵙고 싶었던 달라이 라마의 모습을 뵙게 되는 구나. 아! 우리 삼소회가 달라이 라마를 친견하기는 하는구나 하는 안도의 한숨과 더불어 계속 떨칠 수 없는 걱정은 비서관이 계속 강조했던 말이지만 우리에게 시간을 많이 할애할 수 없을 정도로 일정이 바쁘시다는 말 때문에 신경이 쓰였다. 대중강연이 끝나고 스탭 한 분이 우리 일행은 흩어지지 말고 한쪽에 다 모여 있으라는 당부를 했다. 한 시간을 더 기다려서 우리는 안으로 안내를 받아 들어갔다. 작은 세미나실, 창 밖으로 보이는 건물 앞에 달라이 라마를 생애 한 번이라도 친견하고자 원을 세우고 그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온 티벳 순례자들의 줄이 끝이 없었다. 다시 한 시간 가까이 시간이 흐르고 창밖으로 멀리 보이는 건물 앞에 달라이 라마의 모습이 보였다. 다시 안도의 한숨. 줄지어 선 티벳 순례자의 손을 빠짐없이 잡아주시는 달라이 라마, 그 풍경을 멀리서 바라보며 가슴이 먹먹해져왔다. 길었던 줄이 짧아지고 마지막 한 명의 손을 끝까지 잡아주신 달라이 라마께서 우리 일행이 기다리고 있는 방으로 들어오셨다.

모두 일어나 합장하고 예를 마치고 자리한 우리를 향해 활짝 웃으신다. 깊고 환한 큰 미소에 우리 일행의 얼굴도 다 환해졌다. 서둘러 삼소회와 성지순례에 나선 뜻을 소개하자 달라이 라마께서 서슴없이 말씀을 시작하셨다. “세계평화는 우리에게 창조성을 주는 기회가 됩니다. 평화 없이 전쟁만 있다면 인간 생명은 끝입니다. (중략) 모든 종교인들은 평화를 지키도록 기여해야 한다.” 고 하시면서 종교간의 화합을 위해 1975년경 화합 운동을 시작하셨다고 하시면서 다섯 가지를 말씀해 주셨다. 그 말씀이 머릿속을 시원하게 했다.

첫째는 학문적으로 다른 전통을 가진 사람을 만나고, 같은 점과 다른 점을 서로 교환해야 하며, 둘째는 다른 전통을 가진 수행자들이 만나서 깊고 내면적인 영혼의 체험을 교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는 우리 삼소회처럼 단체로 다른 종교의 성지를 순례하는 것이라고 강조하셨다. 그런 신념을 가지고 당신도 수차례 기독교의 중요한 성지인 예루살렘과 파티마를 방문했을 당시의 일화를 들려주기도 하셨다. 넷째는 과거 아시시에서 열린 종교 지도자 모임처럼 다른 전통의 지도자들이 모여서 같은 입장에서 한 가지(평화)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고 하시면서 삼소회가 당신의 아이디어를 실천하는 것을 보니 고맙다는 말씀도 빼놓지 않으셨다. 다섯째는 다른 사람의 전통과 철학에 대해 공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셨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신념과 존경이라고 하셨다. 신앙은 자신의 것, 전통을 지키는 것이고, 존경은 모든 다른 전통에 대한 것이어야 한다고 그것이 종교적 평화를 가능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하셨다.

그렇다. “신앙은 자신의 것이고 자기 종교 안에 전통은 신념을 가지고 지키는 것이지만 존경은 모든 다른 종교와 전통에 대한 것이어야 한다.” 자기 종교에 빠져 잊기 쉬운 중요한 말씀이다. 깊고 힘찬 목소리로 들려주신 달라이 라마의 말씀은 우리 삼소회가 성지를 순례하는 내내 크고 작은 갈등을 내려놓을 수 있었던 큰 가르침이 되었다. 자기 종교의 교의와 자기 신념에 사로잡혀 단단한 벽을 순례 길에서도 허물지 못하는 몇 몇 일행은 또 다른 동행의 의견을 마치 자기를 상하게 하는 적의 무기처럼 받아들이며 스스로에게 상처를 만들었다.

왜 자기와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는가. 나와 다름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삶을 풍요롭게 하는지를 안다면 다름은 감사함의 대상이다. 순례 길에 오르기 전 내가 가장 강조했던 말이 있다. 삼소회가 종교화합과 세계 평화를 기원하며 성지순례를 떠나는 것은 각기 다른 종교를 뭉쳐서 하나로 만들기 위함도 아니요, 자신이 믿고 따르는 가르침을 다른 수도자에게 강요하거나 가르치는 장이 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상대방의 종교를 존중하고 이해하는 마음자리를 갖는 것이 첫째 조건이라고 했다.

하지만 순례의 여정이 하루하루 더해갈 수록 서로 다른 의식과 생활관습에서 비롯되는 작은 오해들이 쌓여가고 그 작은 감정의 골은 타 종교의 성지를 순례하며 가져야만 될 마음 자세와 예의를 잃어가게 했다. 여여(如如)하게 유지해야할 이성(理性)의 힘보다 자기 종교의 신념으로 무장된 감정의 힘을 앞세워 자기를 작게 만드는 모습은 참으로 안타까웠다. 자신이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망각하며 말이다.

달라이 라마를 만난 그 깊은 영혼의 울림이 채 가시기도 전에 보드가야 대탑을 배경으로 사진 찍기를 거부한 어느 수녀의 모습에서 자기 것 외에 어느 것 하나도 품을 수 없는 좁은 마음자리를 발견하며 내 품은 어느 정도인지 살피지 않을 수 없었다. 떠나기 전 비록 정형화된 이해심과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는 오리엔테이션은 없었지만 이번 순례 길에 기꺼이 동행한 수도자라면 적어도 함께 동행한 타 종교 수도자들에 대한 이해심과 예의는 갖추어졌다고 생각한 것이 큰 착각이었다.
진명 스님 | 前 불교방송 차한잔의 선율 진행자
2006-03-04 오전 10: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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