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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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다름 인정하니 화해와 평화 넘치네
진명 스님의 삼소회 성지순례기①
불교·원불교·가톨릭·개신교 등 4개 종교 여성 성직자들의 모임인 삼소회가 19일간의 세계 성지순례를 마치고 지난달 23일 귀국했다. 비구니 스님 5명, 원불교 교무 6명, 가톨릭 수녀 3명, 성공회 수녀 2명이 동행한 이번 순례는 2월 5일 원불교의 발상지인 전남 영광을 출발해 인도와 영국·이스라엘·이탈리아를 도는 짧지 않은 여정이었다. 서로 다른 종교적 신념과 생활 습관을 가진 성직자들이 성지순례라고 하는 ‘구도의 길’을 함께 했다는 것만으로도 그것이 갖는 종교화합의 상징적 의미는 매우 크다. 그런 만큼 직접 그 순례에 참가한 이들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꼈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본지는 이번 순례를 이끌었던 조계종 소불선원장 진명 스님에게 삼소회의 성지순례 이야기를 청했다. (편집자주)



"방생" 외치며 물고기 팔던 청년

삼소회 일원으로 성현들의 본의로 돌아가 세계 성지를 순례하며 종교화합과 세계평화를 위해 한 톨의 씨앗이 되자고 염원하며 기도한지 어언 5년. 준비할 시간은 넉넉지 않았지만 시절인연이 도래했는지 염원하던 성지순례 일정을 계획하며 동안거 내내 바쁜 시간을 보냈다. 항공 스케줄과 숙소를 정하는 일 만으로도 바쁜 시간을 보내며 떠나기 전 며칠은 깊은 잠에 들 수조차 없었다. 일이 바쁘기도 했지만, 타종교의 성지를 순례한다는 설렘과 일정을 계획하고 추진하는 사람으로서 모든 회원들이 큰 장애 없이 돌아 올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마음을 더 무겁게 했기 때문이다.

인도 녹야원에서 평화명상에 든 삼소회 일행. 이들은 세계 성지순례를 통해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마음자리를 넓히며 하나가 됐다.
한국에서 발생한 원불교의 성지인 영광 영산성지를 순례 하는 일정을 시작으로 삼소회 일행은 짧지 않은 성지순례 길에 올랐다. 인천공항에 도착해 인도 수자타 아카데미 불가촉천민 학생들을 위해 준비한 문구와 약품 상자를 정리해 화물을 부치고 나니 피로가 겹쳐왔다. 이번 성지순례를 위해 함께 의논했던 수녀님, 교무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비행기에 오를 때 ‘아! 이것이 꿈이 아니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깊은 잠은 비행여정에 내어주고 새벽 2시반경 인도 뭄바이 공항에 도착했다. 매캐한 인도 향신료 냄새와 희미한 불빛, 타블라 같은 악기 소리에 실려 쉴 새 없이 흘러나오는 특유한 가락의 노랫소리는 밤새 멀리 날아와 있음을 느끼게 했다. 공항대합실에서 다섯 시간을 넘게 기다린 후 바라나시행 비행기로 환승하고 다시 다섯 시간이 넘게 걸려서야 바라나시 공항에 도착하게 되었다. 첫 순례지 일정에서부터 이번 순례 여정이 고행 중에 고행임을 실감하게 했다.

순례 일행은 인도 바라나시 싸르나트, 부처님 초전법륜지 근처에 위치한 한국 사찰 녹야원에 여장을 풀었다. 전날 밤부터 이틀에 걸쳐 이동 여정에 시달려서 인지 모두 피곤해보였다. 만공스님이 주지로 계신 한국 사찰 녹야원에는 후원에서 도와주시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선재스님을 중심으로 수녀님과 교무님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공양을 준비하고 뒷정리를 하는 시간은 어떤 이견도 없고 화합 그 자체였다.

이번 함께 떠난 세계 성지순례는 그런 시간이었다. 늘 머리로 생각하던 이념적인 종교화합과 세계 평화가 아닌, 다름을 인정하고 타종교를 존중하고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생생한 공부의 현장이었다. 언제 또 다시 수녀의 신분으로 부처님의 성지를 순례할 것이며, 또한 부처님의 제자로 예수님의 성지를 순례할 수 있을까. 다시 얻기 어려운 기회라고 생각한 일행들은 조심스럽고 진지했다. 다음날부터 불교 성지를 순례할 일행들을 대표해서 각 대표들은 밤이 이슥하도록 좀더 효과적인 성지순례를 위해서 의견을 모으는 사이 인도의 밤은 깊어가고 있었다.

이른 새벽 날이 밝기 전, 우리의 발자국 소리에 깨어난 개 짖는 소리를 뒤로하고 하늘에 총총한 별을 바라보며 마을을 빠져나갔다. 힌두교도들이 붐비는 거리에서 앞 사람의 뒤통수를 놓칠세라 걸음을 재촉하며 갠지스강가에 도착했지만 자욱한 안개는 한치 앞도 허락하지 않았다. 배를 빌려 타고 갠지스 강물을 성수로 여겨 이곳에서 목욕을 하면 면죄를 할 수 있다는 힌두교도와 같은 믿음은 없지만 물살을 가르는 노 젓는 소리에 조용히 귀를 맡겼다.

이른 새벽부터 꽃으로 장식된 초를 팔기위해 순례자들 곁을 떠나지 않는 어린이의 손에서 샀던 초에 각자 불을 밝혀 갠지스 강물에 띄우며 인류의 평화를 기원하는 순간은 숭고한 의식과도 같았다. 희미하게 시야가 밝아오고 우리들의 기원을 담은 촛불은 물결에 실려 멀어져만 갔다. 조용히 뱃머리를 돌려 물의 흐름을 따라 내려갔다. 빨래하는 가트(Ghat)에서 빨랫감을 두들기는 사람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목욕하는 사람들이 뒤섞인 가트를 바라보며 화장터로 향하는데 계속 작은 쪽배를 타고 따라오며 또렷한 발음으로 “방생! 방생!”이라 외치며 작은 봉지에 담긴 물고기를 내미는 젊은이에게 내 옆에 앉아 생소하게 바라보던 수녀님이 너무나 진지하게 영어로 “정말 미안해요. 우리가 그 생선을 요리할 시간이 없어서 사줄 수가 없어요.” 하는 것이다.

이게 무슨 소린가 고요하게 화장터로 향하던 우리 일행은 파안대소 할 수밖에 없었다. 갠지스강가에 흩어지는 웃음소리와 함께 안개도 걷히고 우리는 배에서 내려 화장터로 이동했다. 시신이 한 구 갠지스강물에 적셔지고 화장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종교의 다름을 떠나 너나 할 것 없이 숙연해졌다. 쌓여있는 장작더미 위에 점잖게 안경을 끼고 누워있는 그 영혼은 그래도 가볍게 이생을 떠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적어도 장작이 부족해 신체 일부를 남기는 일은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우리 일행은 잠시 그 영혼을 위해 합장하고 기도한 후 화장터를 빠져나왔다. 숙소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웃음으로 넘긴 수녀님의 말이 화제가 되어 이견이 오고갔다. 수녀님이 불교에서 살생계에 대한 적극적인 실천행으로 조류나 어류, 축생을 방생한다는 사실을 몰라서 그랬냐고 따져 묻기도 했고, 평소 그 수녀님의 천진함으로 봐서 정말 몰라서 그럴 수 있었을 것이라는 다수의 의견에 공격의 화살은 날이 무디어져갔다.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부처님 초전법륜지 대탑 앞에서 칠정례에 이어 반야심경을 봉독하고 탑돌이를 하는 동안 등 뒤로 느껴지는 분위기가 진지하긴 했지만 대열 선두에 선 나는 참으로 궁금했다. 중간 중간에서 손을 다소곳이 모으고 스님과 교무님들의 발걸음을 따르는 수녀님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파란 잔디 위로 석가모니불 정근을 하며 한걸음 한걸음 보폭을 맞춰 큰 나무아래에 자리했다. 품이 넓은 나무 그늘 아래 자리해 깊은 침묵명상에 들어있는 우리의 모습을 본 외국인 순례자들은 평화롭고 아름다운 풍경이라고 찬탄했다.



진명 스님 | 前 불교방송 차한잔의 선율 진행자
2006-03-03 오후 6:15:00
 
한마디
사진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안기부가 뺏어갔던 신학철의 모내기 그림의 하단이랑 너무 흡사하네. 신기하다.
(2006-03-12 오전 8: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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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스님의 글을 일고 99년도 처음 인도를 방문하였을 때가 생각납니다. 스님의 글을 읽으면서 눈에 선합니다. 저는 (사) 한국JTS에서 일하는 최대원심입니다. 스님은 전부터 알고 있지만 지난번 사무실로 전화했을 시 몇번 통화를 한적이 있지요. 더욱 이번 순례시 수자타아카데미를 벙뮨해 많이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따스함에 힘입어 더욱 열심히 하겠습니다. 남쪽 지방에 계신 스님으로 부터 매화꽃이 피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강추위를 견디어 피어난 매화 꽃을 모든이에게 드리고 싶습니다.
(2006-03-08 오전 10: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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