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생" 외치며 물고기 팔던 청년
삼소회 일원으로 성현들의 본의로 돌아가 세계 성지를 순례하며 종교화합과 세계평화를 위해 한 톨의 씨앗이 되자고 염원하며 기도한지 어언 5년. 준비할 시간은 넉넉지 않았지만 시절인연이 도래했는지 염원하던 성지순례 일정을 계획하며 동안거 내내 바쁜 시간을 보냈다. 항공 스케줄과 숙소를 정하는 일 만으로도 바쁜 시간을 보내며 떠나기 전 며칠은 깊은 잠에 들 수조차 없었다. 일이 바쁘기도 했지만, 타종교의 성지를 순례한다는 설렘과 일정을 계획하고 추진하는 사람으로서 모든 회원들이 큰 장애 없이 돌아 올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마음을 더 무겁게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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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 일행은 인도 바라나시 싸르나트, 부처님 초전법륜지 근처에 위치한 한국 사찰 녹야원에 여장을 풀었다. 전날 밤부터 이틀에 걸쳐 이동 여정에 시달려서 인지 모두 피곤해보였다. 만공스님이 주지로 계신 한국 사찰 녹야원에는 후원에서 도와주시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선재스님을 중심으로 수녀님과 교무님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공양을 준비하고 뒷정리를 하는 시간은 어떤 이견도 없고 화합 그 자체였다.
이번 함께 떠난 세계 성지순례는 그런 시간이었다. 늘 머리로 생각하던 이념적인 종교화합과 세계 평화가 아닌, 다름을 인정하고 타종교를 존중하고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생생한 공부의 현장이었다. 언제 또 다시 수녀의 신분으로 부처님의 성지를 순례할 것이며, 또한 부처님의 제자로 예수님의 성지를 순례할 수 있을까. 다시 얻기 어려운 기회라고 생각한 일행들은 조심스럽고 진지했다. 다음날부터 불교 성지를 순례할 일행들을 대표해서 각 대표들은 밤이 이슥하도록 좀더 효과적인 성지순례를 위해서 의견을 모으는 사이 인도의 밤은 깊어가고 있었다.
이른 새벽 날이 밝기 전, 우리의 발자국 소리에 깨어난 개 짖는 소리를 뒤로하고 하늘에 총총한 별을 바라보며 마을을 빠져나갔다. 힌두교도들이 붐비는 거리에서 앞 사람의 뒤통수를 놓칠세라 걸음을 재촉하며 갠지스강가에 도착했지만 자욱한 안개는 한치 앞도 허락하지 않았다. 배를 빌려 타고 갠지스 강물을 성수로 여겨 이곳에서 목욕을 하면 면죄를 할 수 있다는 힌두교도와 같은 믿음은 없지만 물살을 가르는 노 젓는 소리에 조용히 귀를 맡겼다.
이른 새벽부터 꽃으로 장식된 초를 팔기위해 순례자들 곁을 떠나지 않는 어린이의 손에서 샀던 초에 각자 불을 밝혀 갠지스 강물에 띄우며 인류의 평화를 기원하는 순간은 숭고한 의식과도 같았다. 희미하게 시야가 밝아오고 우리들의 기원을 담은 촛불은 물결에 실려 멀어져만 갔다. 조용히 뱃머리를 돌려 물의 흐름을 따라 내려갔다. 빨래하는 가트(Ghat)에서 빨랫감을 두들기는 사람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목욕하는 사람들이 뒤섞인 가트를 바라보며 화장터로 향하는데 계속 작은 쪽배를 타고 따라오며 또렷한 발음으로 “방생! 방생!”이라 외치며 작은 봉지에 담긴 물고기를 내미는 젊은이에게 내 옆에 앉아 생소하게 바라보던 수녀님이 너무나 진지하게 영어로 “정말 미안해요. 우리가 그 생선을 요리할 시간이 없어서 사줄 수가 없어요.” 하는 것이다.
이게 무슨 소린가 고요하게 화장터로 향하던 우리 일행은 파안대소 할 수밖에 없었다. 갠지스강가에 흩어지는 웃음소리와 함께 안개도 걷히고 우리는 배에서 내려 화장터로 이동했다. 시신이 한 구 갠지스강물에 적셔지고 화장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종교의 다름을 떠나 너나 할 것 없이 숙연해졌다. 쌓여있는 장작더미 위에 점잖게 안경을 끼고 누워있는 그 영혼은 그래도 가볍게 이생을 떠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적어도 장작이 부족해 신체 일부를 남기는 일은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우리 일행은 잠시 그 영혼을 위해 합장하고 기도한 후 화장터를 빠져나왔다. 숙소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웃음으로 넘긴 수녀님의 말이 화제가 되어 이견이 오고갔다. 수녀님이 불교에서 살생계에 대한 적극적인 실천행으로 조류나 어류, 축생을 방생한다는 사실을 몰라서 그랬냐고 따져 묻기도 했고, 평소 그 수녀님의 천진함으로 봐서 정말 몰라서 그럴 수 있었을 것이라는 다수의 의견에 공격의 화살은 날이 무디어져갔다.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부처님 초전법륜지 대탑 앞에서 칠정례에 이어 반야심경을 봉독하고 탑돌이를 하는 동안 등 뒤로 느껴지는 분위기가 진지하긴 했지만 대열 선두에 선 나는 참으로 궁금했다. 중간 중간에서 손을 다소곳이 모으고 스님과 교무님들의 발걸음을 따르는 수녀님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파란 잔디 위로 석가모니불 정근을 하며 한걸음 한걸음 보폭을 맞춰 큰 나무아래에 자리했다. 품이 넓은 나무 그늘 아래 자리해 깊은 침묵명상에 들어있는 우리의 모습을 본 외국인 순례자들은 평화롭고 아름다운 풍경이라고 찬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