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우리를 초대해 주시고 이렇게 대화의 장을 열어주시니 너무 반갑고 고맙습니다.”(상하마상가번영회 김광화 회장)
2월 27일 오후 7시 30분. 어둑해진 범어사 휴휴정사에 범어사 부주지 계전스님을 비롯한 소임자 스님과 사하촌 주민들이 함께 자리했다.
오랫동안 등을 보이던 이웃사촌의 따뜻한 해후였다. 범어사가 상하마부락, 청룡동 등 인근 주민들을 초청, 공식적으로 사하촌 주민들을 위해 템플스테이를 전국에서 처음으로 개최하면서 가능해진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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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오전 10시부터 ‘사하촌 주민을 위한 템플스테이’에 참석한 상마부락, 하마부락 주민 20명이 사찰 안내, 발우공양, 저녁예불, 108배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도 가장 기다려온 시간이 바로 스님들과의 대화시간. 마주 앉고 보니 할 말이 많으면서도 막상 말문을 여는 것은 쉽지 않았다.
“어렵게 생각지 말고 이웃에 놀러가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듯 살면서 힘든 일, 기쁜 일을 서로 나누는 시간이 되도록 합시다.”
부주지 계전 스님이 떡과 차를 권하자 상가번영회 김광화 회장을 비롯 사하촌 주민들은 그동안의 궁금증이나 생각들을 털어 내놓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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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9월에 범어사 소유 토지에서 영업하는 집을 철거한다는 게 사실입니까? 사람들이 어떻게 될지 몰라 불안해서 집수리도 못하고 있는 지경입니다.”
“세계선문화타운을 조성 중이라는데 그 센터가 조성되면 상하마부락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주민들은 삶의 터전을 잃을까 염려하고 있었다.
“범어사의 존재 이유는 범어사, 범어사 사하촌 나아가서는 부산 시민 전체가 행복하게 잘 살도록 하는데 있습니다. 그러니 다함께 공존할 수 있는 길을 대화로써 찾아나가는 것이지 일방적으로 피해를 주는 일은 없습니다. 그동안 공식적인 통로가 없어 이런 저런 소문들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지만 이제부터는 열린 마음으로 대화를 하면서 지혜를 모아간다면 두루 두루 원만한 해결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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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어사 스님들이 명확하게 입장을 표명하자 사하촌 주민들의 불안했던 마음은 안도로, 가로저었던 고개는 수긍의 끄덕거림으로 바뀌었다.
2시간 동안 이어진 주민들의 질문에 소임자스님들이 허심탄회하면서도 원칙에 준한 대답으로 궁금증을 풀어줬다. 때론 종무소의 소임자들까지 보충설명을 해주자 시간이 갈수록 주민들의 마음속 응어리가 풀려나갔다.
간혹 웃음이 터졌고 때론 박수로 서로의 열린 마음이 방안을 넘어 어두워진 산사에 울려 퍼졌다.
‘오해’를 ‘이해’로, ‘단절’을 ‘통합’으로 변화시킨 두 시간 동안의 대화로 인해 범어사와 사하촌 주민들은 공존와 화합이라는 결론에 가 닿고 있었다.
범어사는 앞으로 이 같은 대화의 장을 종종 열겠다고 약속했고 주민들도 범어사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적극 협조하겠다고 했다. 또한 범어사가 주민자치위원회에 함께 활동하며 실질적인 이웃사촌이 돼 달라는 요청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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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를 마친 최환근 청룡노포 주민자치위원회 위원장은 “오늘 대화를 통해 범어사가 잘 되는 것이 곧 사하촌이 잘되는 길이라는 것을 믿게 되었다”며 “앞으로도 이런 자리가 자주 열려 마음을 터놓고 어려움을 나누는 이웃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부주지 계전 스님은 “40년전 어두운 밤길을 걸어 범어사로 올라오면 손전등을 주던 사하촌 어르신들이 생각난다”며 “서로 조그마한 것이라도 나누고 함께 했던 이웃의 끈끈한 정을 되찾는 계기가 된 값진 대화였다”며 앞으로 이런 대화의 시간을 정례화하는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대화의 시간은 끝이 났다. 그러나 범어사와 사하촌 주민들의 마음과 마음으로 이어진 ‘신뢰’라는 한줄기 물줄기가 돼, 그 흐름을 시작하고 있었다.
대화로 마음을 풀어낸 사하촌 주민들은 다음날 새벽 예불, 범어사 주지 대성 스님의 법문, 원효암 순례, 불무도, 108 염주 만들기 등 전통문화의 멋을 체험하는 등 1박 2일간의 템플스테이 일정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