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 87주년을 맞은 현재까지 불교계 인사의 항일활동에 대한 고증 작업이 구체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또 독립유공자 명단에 포함돼 있지 않은 불교계 항일운동 인사가 어느정도 되는지 가늠조차 못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1931년 만해 스님에 의해 결성된 항일비밀결사단체 ‘만당(卍黨)’의 핵심당원으로 경상도 일대에서 군자금 모금 등의 임무를 수행하다 1938년 진주형무소에 8개월 간 옥고를 치렀던 일화 스님(1897~1956). 그러나 한국전쟁으로 인해 범죄인 명부가 소실되는 바람에 일화 스님은 독립유공자로 등록되지 못하고 있다.
일화 스님의 유족 정모씨(58ㆍ경기도 부천시)는 “유족들이 보훈혜택을 받고 받지 않고를 떠나 종단과 불교계 학자들이 조국의 독립을 위해 죽어간 이들의 행적을 발굴해 명예를 찾아주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독립운동가로서 많은 활동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유족이 없어 제대로 조명되지 않고 있는 조하규 스님 역시 마찬가지다.
만해기념관 전보삼 관장은 “문도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업적을 명확히 고증하고 독립유공자로 추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독립유공자예우에 관한 법률 규정에 의하면, 독립유공자(순국선열, 애국지사)로 등록될 수 있는 자격은 ‘일제의 국권침탈 전후로부터 1945년 8월 14일까지 국내외에서 일제의 국권침탈을 반대하거나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항거한 사실이 있는 자로서 그 공로로 건국훈장, 건국포장 또는 대통령 표창을 받은 자’로 명시돼 있다.
또 독립유공자로 등록되기 위해서는 제반의 서류를 갖춰 국가보훈처에 독립유공자 포장 신청을 해야 하며, 공적심사위원회에서 심의를 거친 후 독립유공자로 등록을 할 것인지를 판단하게 된다. 종단과 학계의 철저한 자료조사와 연구 작업이 선행돼 역사적 고증자료를 확보해야 가능하다.
부천대 김광식 교수를 비롯한 관련 학자들은 “광복이 된지 반세기가 지나도록 불교계 독립열사들의 활동과 업적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지 않고 있는 것은 종단과 학자들의 책임이 크다”며 “그동안 역사의 그늘에 묻혔던 불교계 독립열사들의 업적을 오늘에 되살리고 동시에 불교계 발전을 위해서도 적극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사실 유족들이 역사적 고증과 사료 수집 등을 하며 행적을 밝혀낸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종단과 불교계 학자들이 본격적으로 자료를 발굴하고 수집해 철저한 역사적 고증과 검증 작업을 벌여야 하지만 이 역시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일제치하 당시 스님들의 기록을 추적해 온 혜봉 스님(이천 지족암 주지)은 “국가보훈처에 등록된 279명의 독립유공자 중 불교계 인사는 36명인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불교계 인사의 항일활동 규명작업이 전무한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지낸 태허 스님(운암 김성숙, 1898~1969)의 업적을 기리고 불교계 독립열사들의 활동과 업적 연구를 위해 지난 1월 23일 ‘운암 김성숙 기념사업회(회장 이수성)가 창립됐다. 그러나 열악한 재정과 전문 인력 등의 부족으로 실질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운암 김성숙 기념사업회 민성진 사무국장은 “종단과 불교학계에서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이 일에 동참한다면 많은 무명의 불교계 항일 독립열사를 세상에 알릴 수 있음은 물론 불교계의 위상도 함께 높아질 것이며 보다 많은 유족들도 보훈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무명 독립활동가들의 조명은 친일논란을 규명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불교역사바로세우기의 중요 과제라는 점에서 이에 대한 범불교적 접근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종단 차원에서 전문 연구단이 구성되어 정부문서 추적·탐문, 각 사찰의 미공개 자료 수집 등 관련 연구 활동을 추진해야 한다”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