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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의 밑줄 긋기]'바람의 그림자'
0...나는 아직도 아버지가 '잊혀진 책들의 묘지'로 나를 처음 데리고 갔던 그 새벽을 기억한다. 1945년 초여름의 햇살이 잿빛으로 흩어지고 있는 바르셀로나의 새벽 거리를 우리는 걷고 있었다. 아른거리는 태양이 뿌옇게 흐려진 화관 모양으로 산타 모니카 데 람블라 거리를 비추고 있었다.

"다니엘, 오늘 네가 보게 될 것에 대해 아무에게도 얘기해선 안된다." 아버지가 주의를 주었다. "네 친구 토마스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말이다."
"엄마한테도요?" 나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아버지는 평생 당신을 그림자처럼 쫓아다니던 그 슬픈 미소에 숨어 한숨을 쉬었다.
"당연히 되고말고." 아버지는 고개를 떨구며 대답했다.
"우린 엄마하고는 비밀이 없잖니. 엄마에겐 뭐든지 말해도 된단다."

내전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콜레라가 어머니를 데려가 버렸다. 아버지와 나는 내 네번째 생일날 어머니를 몬주익에 묻었다. 나는 다만 그날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는 것과 하늘도 울고 있는 거냐고 물었을 때 아버지가 내게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던 것을 기억한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난 그때에도 어머니는 환영처럼 우리 주변을 떠돌고 있었는데, 그것은 여전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이를테면) 절규하는 침묵이었다. ---<바람의 그림자> 9쪽,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지음, 문학과지성사
김원우 기자 | wwkim@buddhapia.com
2006-03-02 오전 9: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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